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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의 적반하장, 피해자 ㄱ씨의 억울한 경력단절은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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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희 기자의 ‘놀람과 빡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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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먹으며 지내요. 정신과 약도 오래 먹으니 입에 맞나 봐요. 양도 늘었어요. 참 웃픈 현실이죠?”

‘어떻게 지내고 있냐’는 안부 문자에 그가 보내온 답이 너무 담담해 가슴이 시렸다. 며칠 전 퇴원해 아직 몸도 추스르지 못했다며, 저녁에 또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 와중에 따뜻한 인사도 잊지 않았다. “물어줘서 고마워요. 제 대신 예쁜 봄을 마음껏 즐겨주세요.”

김기덕 감독을 향해 처음으로 ‘#미투’(ME TOO·나도 폭로한다)를 외쳤던 배우 ㄱ씨와 최근 나눈 대화다. 대중에겐 ‘<뫼비우스>(2013) 촬영 당시 폭행과 강요를 당했다며 2017년 김 감독을 고소했던 여배우’로 알려진 그는 ‘미투 운동’에 막 불이 붙던 지난해 2월, 일간지 중 최초로 <한겨레>의 인터뷰에 응했었다. 이후 ㄱ씨는 문화방송(MBC) <피디수첩>에 출연해 피해 사실을 증언하는 등의 활동을 이어갔고, 덕분에 용기를 얻은 김기덕의 다른 피해자들도 미투 운동에 합류하며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인터뷰 이후 밑바닥에 침잠한 아픈 기억을 자꾸 끄집어낼까봐 나는 그에게 잊히지 않을 정도로만 띄엄띄엄 조심스레 연락을 했다. 최근 ㄱ씨에게 연락을 한 건 ‘영화감독 김기덕 사건 공동대책위’(김기덕 공대위)가 지난 18일 개최한 ‘김기덕 규탄 기자회견’에서 당사자 중 한 명인 그의 입장문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덜컥 걱정부터 됐다. “나는 절대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 좋으라고 그러겠냐”며 당찬 모습을 보였던 ㄱ씨였지만, 최근의 상황은 그를 ‘절망’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피해자 ㄱ씨가 병원을 오가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가해자 김기덕은 국내의 비난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해외 활동을 이어갔다. 신작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이 지난해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되더니 지난 3월엔 이 영화가 일본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이어 김기덕은 이달 개막한 모스크바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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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영화제의 ‘글로벌한 제 식구 감싸기’에 점점 고무되는 것일까? 김기덕은 지난해 베를린에서 성폭력 혐의와 관련한 질문에 “억울함”을 호소하더니 이어 자신에 관한 의혹을 보도한 <피디수첩>과 피해자 ㄱ씨에 대해 무고와 명예훼손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올 1월 패소 판결이 나자 최근엔 이들에게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연쇄적인 역고소’를 통한 ‘2차 가해’인 셈이다.

김기덕의 행태는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들고 주인을 위협하는 형국을 뜻하는 ‘적반하장’이란 사자성어조차 부족할 정도로 기가 막힌다. ‘김기덕 공대위’가 긴급 규탄 기자회견을 연 것도 이런 이유일 터다. “가해자는 활발히 활동하며 영화계에 남고 피해자는 영화계를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제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2차 가해를 멈출 것을 촉구한다. 김기덕 감독이 ‘입증 가능한 법적 책임’만큼 도의적 책임의 무게를 깊이 깨닫길 바란다”는 이날의 회견문은 김기덕 사건뿐 아니라 2차 가해에 시달리고 있는 모든 미투 피해자의 참담한 마음을 대신한다.

김기덕 사례 외에도 최근 영화계에는 미투 운동을 ‘용두사미’로 만들려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미투 가해자인 배우 최일화가 출연한 영화 <어쩌다 결혼>이 지난 2월 끝내 극장에 걸렸고, 또 다른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배우 오달수 역시 새 소속사에 둥지를 틀고 복귀 시점을 저울질하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을 비판하는 기사엔 어김없이 “작품이 무슨 죄냐. 다른 배우와 스태프들은 어쩌라고”, “갖다 붙이지 마라. ○○○ 사건이 어떻게 미투냐”는 댓글이 줄지어 달린다. 미투 운동이 고작 1년을 넘긴 지금,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역행과 퇴행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ㄱ씨와의 짧은 문자 대화의 마지막에 나는 진심을 담아 “꼭 스크린에 복귀할 거라 믿는다”는 인사를 건넸다. “감사해요. 그런데, 복귀가 어디 쉽겠어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몫이어야 할, 이 주객전도의 반문에 나는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누구한테 물어야 할까? 성폭력 사실을 폭로하기까지 4년, 소송에 시달리느라 또 3년, 피해자 ㄱ씨의 ‘억울한 경력단절’은 대체 언제쯤 끝이 나느냐고.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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