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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부자였어도 무시했겠나"…'진주 사고' 유족들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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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피의자 안인득 신상공개… 구속 수감 / 진주 방화살인범 범행 당일 휘발유 구매… ‘계획범죄’ 무게 / 흉기는 범행 2∼3개월 전에 구매 / “우리가 부자였어도 무시했겠나” / 유족들, 경찰 향해 목소리 높여 / 주민들 “트라우마 시달려 잠 못자” / 민갑룡 청장, 분향소 찾아 “송구” / 김경수 “유족 요구사항 해결 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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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두른 안인득(사진)이 영장실질심사가 열리는 창원지법 진주지원에 출석하고 있다.


“불이익을 많이 당하며 살아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주민들을 무차별로 흉기로 찌른 혐의를 받는 안인득(42)이 18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진행되는 창원지법 진주지원에서 취재진에게 한 말이다. 왜 흉기를 휘둘렀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안인득은 “제대로 좀 밝혀 달라. 비리와 부정부패가 심각하니까 제대로 좀 밝혀 달라. 10년 동안 불이익을 당해왔다”고 답했다. 안인득은 변호사를 만나기 위해 접견실에 들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취재진을 향해 “제대로 밝혀 달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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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이날 살인, 살인미수,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로 안인득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후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그의 실명과 나이, 얼굴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경찰은 안인득의 범행이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피해망상에 따른 분노가 쌓여 계획적으로 실행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2∼3개월 전 흉기를 구입했고, 방화에 쓰인 휘발유는 범행 당일 산 것으로 드러났다. 안인득과 심리면담을 진행한 프로파일러는 “망상적인 사고와 정상적인 사고가 얽혀 사건에 대해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고 횡설수설하고 있다”며 “자신의 행위는 인식하고 잘못했다 말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잘못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답변을 회피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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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 위로하는 민갑룡 청장 민갑룡 경찰청장(오른쪽)이 18일 경남 진주시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묻지마 살인 사건 희생자 5명의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한일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진주=뉴시스


한편 희생자 합동분향소에는 무거운 적막감이 감돌았다. 한일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는 희생자 5명의 영정이 나란히 올려져 있었다.

이번 사건으로 사촌 동생을 잃고 어머니가 위중한 상태라는 유족은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가 발소리만 듣고 겁을 먹은 채 엘리베이터로 급하게 도망간 적이 있다”며 “얼마나 위협적이었으면, 무서웠으면 그랬겠느냐”고 울먹였다. 이 유족은 “이후 확인한 폐쇄회로(CC)TV에는 안인득이 바로 뒤까지 쫓아와 있는 모습이 찍혀 경악했었다”며 “엄마가 버선발로 도망가 관리사무소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 여러 번이지만, 2년간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관계자들이 합동분향소를 찾자 그들을 향한 유족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한 유족은 “못 하나 못 박게 하는 LH 아니냐. 주민들에게 위협이 되고, 문제를 만드는 안인득을 강제 이사시켜 달라고 민원을 넣었는데 왜 들어주지 않았느냐”며 “우리가 영세민이라 그런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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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 흉기 난동사건'이 난 경남 진주시 모 아파트 화단 바닥에 18일 희생자가 흘린 핏자국과 주인을 잃은 신발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아파트 주민들은 아직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일부 주민은 안인득이 지른 불로 시커멓게 탄 아파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피범벅이던 303동 비상계단은 대부분 물청소를 해 흔적이 지워졌지만, 벽 등에는 여전히 일부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외부 출입구 쪽에는 당시 희생된 주민이 흘린 혈흔과 벗겨진 신발도 그대로 놓여 있었다.

주민 김모(42)씨는 뜬눈으로 지난밤을 보냈다고 했다. 김씨는 “큰 아이가 동생을 안고 내려오면서 계단에 쓰러진 주민을 보고, 흥건한 피를 밟기도 했다”며 “아이가 밤새 무서워 벌벌 떨었다.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릴 것 같다”고 울먹였다. 안인득의 바로 옆집 주민인 송모(82·여)씨는 “아들이 옆집에 불이 났다며 깨워 남편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며 “계단으로 갔으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으로 끔찍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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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왼쪽)이 17일 오후 경남 진주시 한일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진주 방화·흉기 난동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유족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희생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금모(11)양이 다니던 초등학교도 충격에 휩싸였다. 등굣길에 사건 현장을 목격하거나 소식을 전해 들은 학생들은 울면서 학교로 들어섰다. 학교 측은 이날 예정된 수업을 모두 취소하고 학생들을 진정시키는 데 주력했다. 학생회는 6학년 교실이 있는 학교 4층에 금모양의 추모공간을 만들었다.

안인득은 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올해만 8차례나 이웃 등과 시비를 벌여 경찰에 신고됐다. 한 유족은 “파출소를 찾아가도 경찰이 팔짱을 낀 채로 설렁설렁 일처리를 했다. 위협을 당해서 갔는데 증거를 만들어 오라고 했다. 증거를 만들어 갔는데도 경찰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며“우리가 부자였어도 그런 반응이었겠느냐”고 성토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이날 오전 합동분향소를 찾아 유가족들을 위로하며 조문하면서 “송구하다. 관계기관과 협의해 대책을 마련하겠다. 신고처리가 적절했는지 진상 조사를 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따가운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한편 김경수 경남지사는 이날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김 지사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며 “유족들이 말씀하신 요구사항은 최선을 다해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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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총리 “진주 참사 미리 막을 수 없었나” 경찰 질타

이낙연 총리는 경남 진주에서 발생한 아파트 방화·흉기 난동 사건과 관련해 18일 “경찰은 그런 참사를 미리 막을 수는 없었는지 등 돌이켜봐야 할 많은 과제를 안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증오범죄로 보이는 범행으로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으시거나 다치셨다”며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께 깊은 위로를 드리고 부상자들의 빠른 쾌유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현지 주민들에 따르면 범인은 오래전부터 이상행동을 보였고 그런 불행을 막을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한다”며 “하나하나 되짚어보고 그 결과에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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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경남 진주시 가좌동 한 아파트 방화·흉기 난동 사망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현장에서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주민들의 신고가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끔찍한 범죄를 사전에 막지 못한 경찰의 대응을 공개석상에서 질타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17일 42세 안인득씨가 자신이 살고 있는 진주시 가좌동 한 아파트 4층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초등생인 금모(11)양과 고교생인 최모(18)양 등 5명이 숨지고 15명이 다쳤다. 안씨는 이웃 등과 마찰을 겪으며 올해만 7차례 경찰에 신고돼 수차례 형사 입건됐다. 경찰의 안일한 대처로 끔찍한 피해를 막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진주=이보람·안원준 기자, 이현미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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