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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시장 쭉쭉 빨아들이는 중국…포도밭에 숨은 패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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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따라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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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베이징에서 열린 한 세미나 행사에서 중국인 여성이 와인을 마시고 있다.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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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전 세계 와인 산업에 빠르게 손을 뻗고 있다. 종주국 프랑스의 샤토(와이너리)를 무차별 사들이는 데서 나아가 이달부터 프랑스에 자국 생산 와인 수출을 시작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1일 중국 3대 포도주 산지(허베이성·산시성·닝샤성)에서 생산된 와인 10종이 프랑스 시장에 진출했다고 밝혔다. “중국산 와인이 마침내 프랑스에서 공식 데뷔했다”며 “중국인 와인 유통업자가 약 2100병 분량의 첫 수출을 성사시키기까지 1년 가까이 고군분투했다”고 소개했다.

역수출 성공…파리 카페에서 중국산 와인 ‘홀짝’


와인에 대한 자존심이 높기로 유명한 프랑스 시장을 개척하기까지 중국은 포도주 산업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왔다. ‘거대 시장’과 급성장으로 일군 ‘막강 자본’이라는 두 개의 힘에 의존해서다. 글로벌 와인 연구기관인 인터내셔널 와인&스피릿 리서치(IWSR)에 따르면 2000년 10억ℓ 미만이었던 중국의 연간 와인 소비량은 2016년 30억ℓ를 돌파하며 6년간 세 배 넘게 팽창했다. 오는 2020년에는 그 두 배인 60억ℓ를 넘어서면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소비국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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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닝샤성에 위치한한 와이너리에서 직원이 와인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1980년대 첫 발을 내딛은 이 지역의 와인 제조업은 현재 포토밭 3만8000㏊ 규모로 성장했다. 연간 와인 생산량이 10만t에 이른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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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부호들 사이에서는 2000년대 초부터 프랑스 보르도산(産) 와인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인들이 150개가 넘는 보르도 와이너리를 사들였고 이미 중국은 보르도 와인의 최대 수출 시장”이라고 전했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17년 기준으로 중국 자본이 소유한 보르도 와이너리는 총 168곳이다. 중국 유명인사들 사이에선 와이너리 투자가 유행처럼 번졌다. 2016년 샤토 세 곳을 인수한 마윈 알리바바 그룹 회장에 이어 영화배우 자오웨이, 농구선수 야오밍, 마오타이그룹 등이 보르도 포도밭을 사들였다.

중국인들의 와인 욕심이 이미 36년 전 시장경제 도입과 맞물려 싹트기 시작했다는 주장도 있다. 1979년 경제개방 직후 외국 자본과 처음 손잡고 출범시킨 ‘조인트벤처(공동 도급)’ 사업 중 하나가 와인 제조업이었다. 프랑스 공영방송사 RFI는 “1983년 처음 생산된 ‘만리장성(Great Wall)’ 와인 사업에 톈진(天津)시 포도밭과 프랑스 꼬냑 회사 레미 마르탱(Remy Martin)이 함께 만든 ‘다이너스티’ 브랜드가 참여했다”고 지난달 12일 보도했다.

전통적 와인 강국들, 앞다퉈 중국시장 공략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구대륙(유럽)·신대륙을 막론하고 전 세계 주요 와인 생산국들이 앞다퉈 차이나 머니 잡기에 뛰어들고 있다. IWSR은 중국이 수입하는 와인의 35~40%가 프랑스산이고 호주·스페인·칠레·이탈리아산이 그 뒤를 잇는다고 집계했다. 시장에선 끊임없는 경쟁이 벌어진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15일 “호주와 칠레가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가격을 낮춤으로써 프랑스 와인의 견고한 입지에 도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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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상하이에서 처음 열린 중국 국제 수입 박람회(CIIE)에서 중국인 방문객들이 호주산 와인을 시음하고 있다. 이 박람회에는 82개국이 참여했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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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통신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한 와인 컨설팅 회사는 이달 중 ‘중국어판 이탈리아 와인·와이너리 사전’을 출간할 계획이다. 이탈리아는 프랑스를 제치고 2017년 전 세계 와인 생산량 1위국에 올랐지만, 중국 시장에서만큼은 점유율이 프랑스에 크게 뒤처진다. 중국인들 사이에서 인지도를 확보하는 게 사전 편찬의 주요 목적인 셈이다.

중국 부자들이 유독 프랑스, 그것도 보르도에만 열광하는 건 와인을 최고급 사치품으로 인식해서다. 일본 닛케이아시안리뷰는 보르도 현지 부동산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중국 투자자들은 와인뿐 아니라 이 지역 성(城)의 특색과 아름다움에도 흠뻑 매료돼있다”고 전했다. 세계 최정상을 자부하는 프랑스 와인이 갖는 럭셔리 이미지와 문화를 빨아들이고 싶다는 중국의 욕망이 짙게 투영된 결과다.

와인병에 드리운 中 패권주의…촉각 곤두선 佛
막상 프랑스는 속내가 복잡하다. 지역경제 활성화가 반가우면서도 중국 자본 유입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은 모습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보르도 지방 성주는 RFI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문제 될 것이 없지만, 미래에는 (중국 자본 침투가)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지난해 2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반중국 집회를 연 농부들에게 “외국 자본의 농경지 투자를 막는 규제를 신설하겠다”고 약속했다. 다섯달 뒤 프랑스 경찰이 탈세 혐의로 중국 하이창(海昌)그룹 소유 보르도 지방 와인 농지 10곳의 자산을 동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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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파리 엘리제궁을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만찬을 하며 와인잔을 부딪히고 있다. [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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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프랑스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건 자국 와인에 입혀지는 중국색이다. 벌써 일부 보르도 와이너리 라벨(브랜드)이 ‘중화주의’로 대표되는 중국 특유 색채의 영향을 받았다. 보르도 아베이르 지역에서 18세기부터 와인을 생산한 ‘샤토 라르토’는 2017년 중국인이 인수한 뒤 ‘제국의 토끼(Chateau Lapin Imperial)’라는 뜻으로 이름과 문양을 변경했다. 다른 샤토에서는 중국 소비자를 겨냥해 아예 ‘티베트 영양’으로 와인 이름을 바꿔 출시했다.

중국 경기 둔화의 직격탄을 프랑스 와인 산업이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AFP통신은 지난해 중국 본토에 팔린 프랑스산 주류 수출액이 전년 대비 14.4% 줄어든 10억 유로(약 1조2687억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중국 경제성장률이 30년래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수출액이 급감했다. 프랑스와인·주류수출협회(FEVS)는 “싱가포르와 홍콩 지역에 대한 와인 수출이 늘어 본토 수출 감소분을 일정 부분 상쇄했다”고 주장했지만, 수출 부진 심화에 대한 우려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중국은 현재 포도농장 면적 세계 2위, 포도주 생산 세계 6위다. 기후 한계 때문에 와인 종주국 자리를 넘보긴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단기간에 가장 빠르게 급부상한 ‘와인 대국’임은 분명하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로존의 경제 약화는 중국 자본이 끼어들 틈을 점점 더 많이 허용하는 결과를 낳는다. NYT는 파리 싱크탱크 기관인 몽테뉴 리서치 센터 프랑수와 고드망 박사의 말을 인용해 “프랑스는 다른 유럽연합(EU) 국가들보다 중국 패권주의를 더 많이 두려워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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