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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만 좋냐? 흙길도 좋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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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는 경기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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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동문. 남문인 지하문과 함께 출입이 많았던 성문으로 좌익문으로 불렸다.


경기도 광주를 다녀왔다. 지역의 70% 이상이 산지와 계곡 세천이다. 수도권 시민의 상수원인 팔당호가 있어 개발이 제한돼 그만큼 자연환경이 잘 보전된 곳이다. 역사의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광주팔경의 대표 주자 남한산성이 자리하고 있고, 사계절 힐링과 함께 생태 공부도 할 수 있는 경안천 습지가 있는 곳이다. 요즘 물오른 꽃 천지인 화담숲 능선에는 연분홍 진달래와 화려한 철쭉을 볼 수 있어 관람객이 몰린다. 만해기념관과 경기도자박물관 등 자녀들과 함께 가볼 만한 곳이 공간도 적지 않다. 남녘에 아무리 좋은 곳이 있어도 시간과 여유가 없으면 그림의 떡이다. 장거리 여행이 부담스러운 이들이 가볍게 차를 몰아 다녀올 수 있는 서울의 ‘등잔 밑’ 같은 관광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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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장대


◆힐링도 하고 역사의 교훈도 새기는 남한산성

광주가 자랑하는 팔경 가운데 제1경은 남한산성이다. 삼국시대로부터 천연 요새로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남한산성은 한강과 더불어 삼국의 패권을 결정짓는 중요한 곳이었다. 백제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이후 남한산성 안에 백제 시조 온조대왕을 모신 사당인 숭렬전이 자리 잡고 있는 연유이기도 하다. 조선 16대 임금 인조는 남한산성의 축성과 몽진 항전이라는 역사적 회오리를 이곳에서 맞았다. 2014년 6월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공식 등재된 후 사계절 등산객과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해발 500m의 험준한 지형을 따라 11.7㎞(본성 9㎞, 외성 2.7㎞)의 성벽이 구불구불 역동적으로 뻗어 있다. 기자도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올랐다. 트레킹은 남문이자 정문인 지화문에서 시작한다. 4대문 중에 가장 크고 웅장한 중심 문으로, 관광객의 출입이 가장 많은 곳이다. 남문은 1636년 12월 14일 새벽 도성을 버리고 달아난 조선 16대 임금 인조의 행렬이 들어갔던 바로 그 문이다. 성벽은 능선을 타고 이어져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당하다. 남한산성 성벽 길 한 바퀴는 늦은 걸음으로 3시간 30분∼4시간이 걸린다. 흙길을 걷고 돌계단도 오르다 보면 일상의 잡념도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산세에 맞춰 아름드리 소나무 숲을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어느새 수어장대에 이른다. 산성 안에 남은 건물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다. 지휘관이 올라서서 군대를 지휘하도록 높은 곳에 세운 건물이 장대다. 산성을 축조할 때 지은 4개의 수어장대 가운데 유일하게 남았다. 2층으로 지은 건물이 옹골차고, 굵고 진한 현판 필치가 특징이다. 수어장대 옆 보호각에 보존된 ‘무망루(無忘樓)’라는 편액이 눈에 띈다. 병자호란의 시련을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아 영조가 지은 글이다. 수어장대에서 10여분 더 가면 서문(우익문)이 나온다. 1637년 1월 30일 인조는 산성 우익문을 나서 한강 동쪽 삼전도에 갔다. 오랑캐라 여겼던 청나라 태종 앞에 무릎 꿇고 삼배구고두(세 번 절하고 아홉 번 조아린다는 의미)를 했다. 인조가 산성으로 피신한 지 47일 만에 병자호란이 일단락됐다. 우익문 옆 언덕에 서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청계산, 관악산, 대모산, 남산, 북악산, 북한산, 아차산, 도봉산이 배경으로 펼쳐친다. 제2롯데월드도 보인다. 잠시 휴식을 한 뒤 60대 후반 해설사의 쉼 없는 남한산성 얘기를 들으며 하산했다. 다들 먹고사는 일에 급급해 잊고 살던 나라와 역사를 잠시나마 생각할 수 있는 역사적인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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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선생의 나라 사랑 되짚는 만해기념관

남한산성 내에 만해기념관이 있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서울 성북구 심우장에 있던 만해기념관이 이곳으로 이전해왔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나라사랑과 독립정신, 문학정신, 철학정신 등 만해 정신을 선양하는 산실이다. 인조 14년(1636년) 병자호란 당시 나라를 지켰던 곳이다. 이 기념관은 전보삼 관장이 지난 55년간 수집한 만해 선생과 관련된 기록과 서적 등 3000여 점이 소장돼있다.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한용운 선생은 1879년 충남 홍성군에서 태어나 27세에 수계(受戒)한 승려로, 불교개혁을 주창하고 한·일 불교동맹조약 체결을 반대하는 운동을 주도하며 조선 임제종을 창설하는 등 한국 불교사에 큰 획을 그었다. 무엇보다 3·1운동의 선봉에 서서 독립선언서에 행동강령으로 공약 3장을 첨가하고 물산장려 운동, 민립대학 설립 운동을 주도하는 등 독립운동가로서 활약이 눈부셨다. 그의 시 ‘님의 침묵’은 문학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며 전 세계에 다양한 언어로 번역돼 널리 사랑받고 있다. 기념관은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교육실, 자료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상설전시실에는 그의 생전 저술과 수택본 등 관련 자료가 전시돼있다. 소장품 하나하나에 우리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담겨 있다. 호국성지라 할 수 있는 남한산성에서 접하는 만해 선생의 발자취는 각별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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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학습장인 경안천 생태습지공원.


◆자연학습장. 경안천 생태습지공원

퇴촌면 정지리에는 경안천 습지생태공원이 있다. 습지를 따라 잘 정돈된 산책로를 걸으며 다양한 수생식물과 철새·텃새 등 조류도 관찰할 수 있는 생태학습장이다. 1973년 팔당댐이 건설되면서 일대 농지와 저지대가 물에 잠긴 이후 자연적으로 습지로 변한 독특한 곳이다. 2㎞에 이르는 산책로에는 소나무, 왕벚나무, 단풍나무, 감나무, 왕버들, 선버들 등이 우거져 있고 연밭 위를 지나는 목재 데크, 갈대와 부들 군락, 철새조망대 등이 설치돼 있다. 산책로 중간에는 갈대 습지의 수질 정화 원리를 비롯해 경안천에 사는 새와 곤충, 자생식물 등에 관한 자료를 비치해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사계절 신록과 갈대가 어울려져 출사객과 데이트족이 즐겨 찾는 ‘핫플레이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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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안천 생태습지공원.


◆봄 정취 보여주는 곤지암 화담숲

광주 곤지암의 생태수목원 화담숲도 가볼 만하다. 약 4300㎡(1300평) 규모의 ‘철쭉·진달래길’은 화담숲의 15개 테마원 중 봄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명소로, 시간이 지날수록 진달래의 연분홍빛에서 붉은 철쭉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매년 이맘때 방문객들이 즐겨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 주부터는 연분홍 진달래꽃이 절정을 이루고 5월 초까지 붉고 흰 화려한 철쭉꽃이 장관을 이룬다. 산철쭉을 비롯해 영산홍, 자산홍 등 저마다의 모양과 빛깔로 향기를 뽐내는 철쭉꽃 향연이 펼쳐져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애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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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벚꽃 사이를 지나는 화담숲 모노레일


100여 종의 봄 야생화를 비롯해 4000여 종의 식물들이 경쟁하듯 꽃망울을 틔운다. 초록이 돋기 시작한 ‘자작나무숲’ 주변으로는 샛노란 수선화들이 봄 수채화를 그려내고, 풍년화 산수유 히어리 개나리 등의 각기 다른 모양의 봄꽃들이 산책길 곳곳을 뒤덮는다. 화담숲은 LG상록재단이 사회익사업의 일환으로 설립, 운영하는 생태수목원이다. 1만355㎡(약 41만평)에 4300여 종의 국내 자생식물과 도입식물로 조성돤 테마원이다. 테마원을 둘러볼 수 있는 5.2㎞의 산책로를 새 단장하고, 산책로 중간중간 쉬어 갈 수 있는 편의시설이 있다. 긴 산책이 부담스러운 이는 모노레일을 이용할 수 있다. 화담숲 전체를 조망하며 숲의 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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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익희 선생 생가.


◆경기도자박물관과 해공 신익희 선생 생가, 허난설헌 묘

경기도자박물관은 조선 500년의 역사를 이어온 순백자, 청화백자, 분청사기 등 조선시대 관요에서 생산된 전통 도자기와 그 전통을 계승하는 현재 작가들의 작품 등을 상설 전시하는 곳이다. 전통 도자 문화와 역사를 조명하는 기획 전시, 특별 전시를 통해 방문객들이 살아 숨 쉬는 우리의 도자 전통을 느끼게 해준다. 도자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광주 지역에서 생산되는 도자기를 판매하는 도자 쇼핑몰이 있어 현장 구매가 가능하다. 초월읍 서하리에는 해공 신익희 선생 생가가 있다. 이곳 출신으로 3·1운동 참가 후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펼쳤으며, 광복 후 대표적인 정치 지도자로 제헌국회 부의장과 국회의장 등을 역임했다. 생가는 전통 한옥의 모습을 잘 갖고 있다. 서하리에는 버스정류장에 선생을 소개하는 안내문을 설치해 해공 선생을 기리고 있다. 지월리에는 조선 선조 때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무덤이 있다. 경기도기념물 제90호로 지정돼 있다. 여성에게 척박했던 조선시대에 정통 학문을 사사하여 시서화에 능했다. 정치가·소설가인 허균의 누이다. 한시에 능해 ‘난설헌집’을 남겼다. 묘역은 잘 정돈돼 있다. 남편인 김성립의 묘소가 바로 위에 있고 어린 나이에 죽은 두 아이의 무덤이 우측에 나란히 있다.

광주=글·사진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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