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51919536 0022019041851919536 07 0701001 6.0.14-RELEASE 2 중앙일보 0

포승줄 묶인채 딸을 만난 이육사 "아버지 다녀오마"

글자크기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46)
중앙일보

이육사의 유일한 혈육인 이옥비 여사(흉상 오른쪽)가 강연 뒤 도산우리예절원 회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송의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멋쟁이였다. 그 시대에 아이보리 양복을 입었고 보우타이(나비넥타이)를 매셨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잃은 딸의 작은 기억이다. 아버지는 바로 광복 한 해 전 1월 베이징의 차디찬 감옥에서 숨을 거둔 독립운동가 육사(陸史) 이원록(李源祿‧1904∼1944) 민족시인이다. 시인의 유일한 혈육인 이옥비(78) 여사가 13일 경북 안동 이육사문학관을 찾은 대구 도산우리예절원(설립자 이동후) 회원 30여 명을 향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낮은 어조로 절절히 전했다.

보우타이 맨 멋쟁이 아버지 이육사
중앙일보

문학관에 마련된 이육사를 소재로 출간된 책을 한데 모아 둔 '이육사 서재'. [사진 송의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멋진 기억은 아버지를 본 마지막 모습과 금세 오버랩이 됐다. 슬프고 우울했다. 1943년 중국에 머물던 육사는 국내 항일 조직에 도움을 주려고 국내로 무기 반입을 시도한다. 그는 그해 7월 모친과 형의 소상(小祥, 1주기 제사)에 참여하기 위해 귀국했다가 일제에 검거된다. 육사는 베이징 감옥으로 이송을 앞두고 있었다.

그때 이 여사는 집안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서울 청량리역에서 만난다. 포승줄에 꽁꽁 묶이고 용수를 쓴 모습이다. 육사는 딸에게 “아버지 다녀오마”라는 말을 남겼다. 여사는 “어렸지만 그 모습은 지금도 똑똑히 기억한다”고 회고했다. 그게 부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시인의 고향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 들어선 이육사문학관은 정신관 등을 개축해 2017년 확장, 재개관됐다. 여사는 요즘 문학관 인근 목재(穆齋) 고택에 머물며 강연 등 문학관 일을 돕고 있다.

중앙일보

이육사가 1943년 베이징 감옥으로 이송될 때 사용된 포승줄과 얼굴을 가리기 위해 머리에 씌운 용수의 모형. [사진 송의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육사는 6형제 중 둘째다. 형제의 우애는 남달랐다. 육사가 홀연히 세상을 떠나자 아우들은 조카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삼촌 3형제(원일‧원조‧원창)는 광복 이후 한 달에 한 번씩 번갈아 홀로 된 형수와 조카가 살던 대구를 찾아왔다.

“삼촌들은 저를 끌어안고 제 뺨에 얼굴을 비비며 눈물을 흘리셨어요. 저는 삼촌들의 따가운 수염 세례를 받기 싫어 내려오신다는 날은 달력에 표시했다가 아예 작은 외갓집으로 도망가곤 했습니다.”

삼촌들은 내려오면 어머니에겐 술‧담배를 가르쳤다. 그러면서 그들은 어머니에게 “우리는 형수가 아니고 누님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사는 처음엔 어머니가 싫어하는 술‧담배를 권하는 삼촌들이 미웠다고 한다. 시동생들은 술‧담배로 외로움을 이기는 법을 형수에게 가르칠 만큼 우애가 각별했다.

활인심방 체조로 건강 다져
중앙일보

이육사가 베이징에서 순국했음을 알리는 부고장(오른쪽). 세 아우가 상주로 이름이 올라 있다. [사진 송의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육사는 또 퇴계 이황의 14대손 답게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선생이 즐겨한 활인심방 체조로 건강을 다졌다고 한다. 여사의 이름 ‘옥비(沃非)’는 육사가 딸을 얻고 100일에 직접 지은 이름이다. 기름질 옥에 아닐 비, 즉 욕심 없이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간디 같은 사람이 되라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여사는 한동안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건 이름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살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요즘 들어 제가 어릴 때 받지 못한 사랑을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들로부터 아버지를 대신해 뒤늦게 듬뿍 받고 있어요. 과분한 사랑과 위로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여사는 2008년부터 이육사문학관에 머물면서 멋쟁이 아버지의 사랑을 넘치게 다시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강연을 들은 도산우리예절원 회원들은 “여사님의 담담한 회고에 가슴이 먹먹했다”며 “‘절정’ ‘광야’ 등 육사의 시 하나하나가 새롭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