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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17년 끌어온 첫 영리병원 설립 끝내 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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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3개월 기한내 개원 안해" 녹지국제병원 조건부 허가 취소

복지부 "영리병원 허가 더 이상 없다"

조선일보

국내에 영리(營利)병원을 도입하려는 17년간의 시도가 사실상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 2002년 영리병원 관련 규정을 담은 경제자유구역법이 생긴 뒤, '영리병원을 과연 허락해야 하느냐, 마느냐'라는 소모적인 논쟁만 이어졌을 뿐, 영리병원 등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던 취지는 사라진 것이다.

제주도는 17일 국내 첫 영리병원인 제주 녹지국제병원의 설립 허가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병원이 지난해 12월 외국인 환자 전용 병원으로 조건부 허가를 받은 후 의료법이 규정한 3개월 안에 문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더 이상은 영리병원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국내에서 영리병원을 설립하는 것은 사실상 힘들어진 것이다.

녹지국제병원은 외국인과 내국인 환자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제주도는 "외국인 환자만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에 녹지병원은 지난 2월 외국인 환자만 볼 수 있도록 한 조건부 허가를 취소해 달라고 소송을 냈고, 개원 기한을 연장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17일 제주도는 "녹지병원 측이 법이 정한 기한 안에 문을 열지 못했기 때문에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녹지병원 측은 "예상에도 없던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을 제주도가 제시해 개원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관련 법과 조례에도 내국인 진료 제한 금지 근거가 없다고 녹지병원 측은 밝혔다.

그동안 영리병원은 국내 의료계 등에서 치열한 논쟁거리였다. 병원 수익을 외부로 가져갈 수 없는 기존 병원(개인병원 제외)과 달리, 영리병원은 투자자들이 병원에 투자하고 병원에서 나오는 수익을 그 대가로서 가져갈 수 있는 병원이다. 다만 아무 데나 세울 수 없고 경제자유구역법·제주특별법·국제과학벨트법·새만금사업법 등의 대상 지역에만 만들 수 있다. 제주도의 경우 제주지사가, 나머지는 복지부 장관이 허가권자다. 우리나라와 의료제도가 비슷한 일본도 법이 정한 일정 구역에서만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12월 경제자유구역법이 제정되면서부터 국내에 영리병원을 세울 법적 근거가 생겼다. 영리병원을 만들어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면 고용 증진 등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거라는 분석도 이어졌다. 2009년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등은 영리병원 설립을 통한 생산 유발 효과가 최대 4조8818억원에 이르고, 고용 창출 효과도 3만7939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경제연구원도 2014년 '글로벌 경쟁력 취약 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규제개혁 과제' 보고서에서 "(영리병원 허용 등의) 의료 분야 규제 개선을 통해 의료 서비스업의 활성화가 달성되면 2020년 생산 유발 효과는 62조4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일부 시민단체 등은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건강보험 이외 진료가 늘어나 의료비가 폭등할 것"이라며 반대해왔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대선에서 "의료비 폭등 야기하는 의료 영리화를 막겠다"고 공약하는 등 사실상 영리병원에 반대 입장이었다. 현재 정부와 여당은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병원이 늘어나면 전염병 대응이나 응급의료 체계 구축 등에 있어서 정부 통제에 따르지 않는 병원이 나올 수 있다"며 더 이상 영리병원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의료계에서는 모든 한국인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상황이라 현재의 영리병원 모델로는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내국인들도 영리병원을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해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면 환자 본인이 모든 의료비를 부담해야 하는 영리병원을 찾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영리병원

기업 등의 투자를 받아 설립된 병원. 투자개방형 병원이라고 한다. 투자 지분만큼 수익금을 배분할 수 있다. 일반 병원은 병원 수익을 외부로 가져갈 수 없다.




[홍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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