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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위기의 한국 방위산업…팔릴만한 무기가 없다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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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한국의 방위산업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남북 화해 분위기로 대형 무기도입 사업 추진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그나마 개발, 생산 중인 국산 무기들이 방산시장에서 외면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국산 명품무기’라며 선진국과 대등한 기술 수준을 확보했다고 자랑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미국도 개발하지 못한 20㎜ 유탄발사기와 5.56㎜ 소총을 결합해 보병의 화력 수준을 크게 높일 것이라고 기대를 모았던 K-11 복합소총, 한국 항공우주산업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T-50 항공기 등은 방산시장 경쟁에서 밀리는 양상이다. 일각에서는 세계 군사과학기술과 전장 환경의 급속한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재설계에 백지화 요구까지…K-11 ‘존폐위기’

여러 차례 발생한 결함으로 군 납품이 중단된 K-11 복합소총은 전면 재설계와 사업 중단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군 전력증강과 방산수출에 악영향이 우려된다.

국방기술품질원은 지난달 29일 발간한 국방품질연구논집 창간호에 실린 ‘복합형 소총의 사격 충격특성에 관한 분석’ 논문에서 K-11 복합소총의 근본적인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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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실 관계자가 지난해 10월 15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방위사업청, 국방과학연구소, 국방기술품질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K-11 복합소총을 보이고 있다. 뉴시스


기동화력센터 최시형, 정찬만, 서현수 연구원과 지휘정찰센터 이태석 연구원이 공동 집필한 이 논문에 따르면 “2014년과 2016년, 2017년 K-11 복합소총에서 발생한 균열 원인을 조사한 결과 20㎜ 공중폭발탄의 사격 충격력은 국내 다른 화기보다 높은 수준”이라며 “과도한 수준의 충격력은 완충 구조가 없는 볼트액션식 격발기구에 원인이 있으며, 사격 충격력을 감소시키려면 사격발수를 제한하거나 가스작동식 구조로 설계 변경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K-11 복합소총은 2008년 국내 연구개발 이후 2010년부터 군에 보급됐으나 2014년 이후 결함이 반복되면서 납품이 중지됐다. K-11 복합소총의 5.56㎜ 부분은 노리쇠가 후퇴와 전진을 반복하는 가스작동식이지만, 20㎜ 공종폭발탄 부분은 탄 발사 이후 총몸 뒤쪽으로 노리쇠를 수동으로 후퇴시켜 탄피를 방출하고 다시 탄을 직접 넣어 장전하는 볼트액션식이다.

K-11 복합소총의 원조격인 미국의 OCIW는 볼트액션을 채택하지 않아 무게가 무겁고 고장이 잦았다. K-11 복합소총 개발 당시 미국 OCIW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볼트액션을 채택, 총기 구조를 단순화하면서 무게를 가볍게 만들었으나 복합소총 개발을 시도했던 선진국들이 겪은 문제점을 해소하지 못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볼트액션을 가스작동식으로 변경해야 한다면, K-11 복합소총 개발은 사실상 실패작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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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관계자가 표적을 향해 K-11 복합소총을 사격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볼트액션은 총을 가볍게 해서 구조를 단순화한 것인데, 가스작동식으로 바꾸면 K-11 복합소총은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지고 구조도 복잡해져 고장이 더 많이 발생할 것”이라며 “지금까지 각고의 노력으로 개선을 시도했으나 이뤄지지 못한 상황에서 총기 설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면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군사전문가는 “‘이게 제대로 작동할까’ ‘대체수단은 없을까’라고 생각해보면 (K-11 복합소총 문제는) 답이 나온다”며 “해외 시장에서도 외면받는데 일일 사격발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은 K-11 복합소총을 쓰지 말자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해외 시장서도 외면 가능성↑, 근본적 변화 필요

K-11 복합소총의 사례는 지금까지 선진국이 만든 무기를 토대로 유사한 제품을 개발해온 국내 방위산업의 ‘추격형’ 전략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성패 여부에 관계없이 선진국의 방식을 추종하다보니 다양한 소요에 부합하는 무기를 만들지 못했고, 구매자의 선호도가 빠르게 변하는 방산시장 특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위기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어떤 국가의 특수부대가 500m 전방의 참호에 숨어있는 적 특수부대원을 사살하는데 사용할 무기를 도입하려 한다고 가정해보자. 지상화기 제작사에서는 휴대용 무반동총이나 유탄 기관총, 드론 업체는 무장 드론 등을 제안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K-11 복합소총을 제안할 경우 해당 국가 특수부대가 관심을 보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RPG 로켓처럼 저렴하면서도 화력이 강하지 않으며, K-4처럼 유탄을 연발로 사격할 수 있는 기능도 없다. 특수부대원의 방호장비가 과거와는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튼튼한 상황에서 수류탄보다 위력이 약한 것으로 평가받는 20㎜ 공중폭발탄은 적 특수부대원을 살상하는데 큰 역할을 하기 힘들다. 첨단 장비라는 K-11 복합소총이 해외 방산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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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관계자가 K-11 복합소총 사격 직후 탄피를 제거한 뒤 손을 들고 있다. 국방부 제공


반면 1960년대 처음 등장한 스웨덴제 칼 구스타프 무반동총은 성능개량을 거듭하며 지금도 수십개국에서 쓰이고 있다. ‘싸고, 신뢰성이 높으며, 위력이 강한’ 무기를 원하는 서방 세계 육군의 소요를 정확히 파악,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항공우주분야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발생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전투기 도입사업에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생산한 FA-50은 파키스탄의 JF-17의 파상 공세에 밀리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제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와 정밀유도무기를 탑재하는 JF-17은 FA-50보다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최대 100㎞ 떨어진 적 항공기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2003년 첫 비행에 나선 이후 중국과 함께 지속적인 성능개량을 실시하면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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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50 경공격기가 성능점검을 위해 남해안을 비행하고 있다. KAI 제공


화력이 강한 무기를 새로 개발하는 대신 기존 무기체계를 효과적으로 연계하는, 세계 방산시장의 추세를 따라잡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K-11 복합소총처럼 특정 무기체계에 많은 기능을 추가하는 것은 과거의 방식으로 분류되는 실정이다. 우리 육군도 소부대간 연합작전능력과 실시간 통신능력을 높이면 K-11 복합소총을 장비하는 대신 기존의 K-4 유탄기관총이나 K-6 중기관총, 현궁 대전차미사일 등을 사용, 적군을 공격할 수 있다. 20㎜ 공중폭발탄보다 위력이 훨씬 강한 K-21 보병전투차의 40㎜ 기관포도 가능하다.

실제로 미 공군은 조인트 스타즈(JSTARS) 지상정찰기의 후속 기종을 개발하는 대신 F-22/F-35 스텔스 전투기와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등 기존의 공군 장비들이 수집한 정보를 네트워크를 통해 융합, 실시간 제공하는 방안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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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50 경공격기가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공장에서 조립되고 있다. KAI 제공


한국의 방위산업은 중대한 갈림길에 놓여있다. 국내 수요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해외 수출을 통해 활로를 열어야 하나, 각각의 국가들이 원하는 사양을 효율적으로 맞추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네트워크로 기존의 무기체계를 연결하는 군사전략과 기술 개발이 꾸준히 진행됐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저렴하면서 신뢰성과 성능이 좋은 무기를 찾는 경우가 늘어났다. 현재 한국 방위산업계가 제안하는 국산 무기들은 두 가지 모두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와 해외 시장의 수요를 철저히 파악한 뒤 새로운 기술 개발에 나서지 않는다면 한국 방위산업은 ‘갈라파고스화’를 면하기 어렵다. 정부와 업계, 군의 정책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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