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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보사노바 음률에 실린 네 여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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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브라질 드라마 ‘이파네마의 여인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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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브라질, 부유한 주부 마리아 루이자(마리아 카자데바우)는 리우데자네이루의 남편을 만나기 위해 상파울루를 떠난다. 그런데 레스토랑 개업을 준비한다던 남편은 이미 돈만 들고 사라진 뒤다. 잠시 절망에 빠졌던 루이자는, 안락하지만 무기력한 상파울루의 삶으로 돌아가는 대신, 낯설지만 생동감 넘치는 리우의 삶을 선택하기로 한다. 여성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던 금기의 시대, 루이자는 리우에서 만난 아델리아(파치 지제주스)와 테레자(메우 리즈보아), 그리고 오랜 친구 리지아(페르난다 바스콘셀루스)의 도움을 받아 오랜 꿈인 라이브 음악 클럽에 도전한다.

이달 중순 공개된 7부작 <이파네마의 여인들>(Coisa Mais Linda)은 흔히 범죄물이나 텔레노벨라(중남미의 일일연속극)로 더 익숙한 브라질 드라마와는 다른 길을 간다. 물론 개성 강한 다수의 여성 주인공, 그들의 사랑과 우정, 꿈과 성장의 드라마 자체가 여성 서사의 흔한 공식이긴 하지만, 루이자와 친구들의 이야기는 1950년대 후반 브라질의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며 색다른 느낌을 준다. 드라마는 이 시기 막 태동하던 음악 장르 보사노바(Bossa Nova, 포르투갈어로 ‘새로운 감각’이라는 뜻)의 신선한 음률에, 또 하나의 ‘새로운 경향’이던 페미니즘을 녹여낸다.

네 여성의 연대 이야기도 아름답지만, 여성 서사의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각각의 성장 드라마도 매력적이다. 같은 전업주부의 각성기라도, 루이자와 리지아 서사의 성격은 또 다르다. 루이자 이야기가 평생 누군가의 딸과 아내로만 살아왔던 여성의 자아 찾기라면, 리지아 이야기는 정치인 남편의 트로피 아내로서 숭배와 학대를 동시에 받던 여성의 억압 탈출기다. 여기에 사회의 공고한 남성 연대와 싸우는 테레자 이야기가 더해진다. 기자인 테레자는 “여자들의 세계 같은 건 없다”고 말하는 성차별적 편집장에 맞서, 좀 더 직접적인 페미니즘의 메시지를 던진다.

하지만 역시 가장 의미 있고 흥미로운 건 가난한 흑인 싱글맘으로서 복합 차별을 겪는 아델리아의 이야기다. 드라마는 초기 루이자와 아델리아의 갈등을 통해서는 계급의 문제, 다음 리지아와 아델리아의 대립을 통해서는 인종차별의 문제를 드러낸다. 3회, 클럽 개관을 앞두고 닥친 시련 앞에서 도피하려는 루이자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는 당신과 나는 다르다”고 일침하는 아델리아의 말은 루이자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오게 하는 계기가 되고, 백인 기득권층 중심 서사의 한계도 일깨워준다.

이파네마 해변을 비롯한 리우의 아름다운 풍광과 보사노바의 몽환적 선율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매혹적이고 당당한 주인공들, 영상, 음악 등 삼박자가 조화롭게 뒤섞인, 휴양지 같은 판타지의 느낌도 든다. 예기치 못한 충격적 엔딩이 아쉽긴 하지만 다음 시즌으로 돌아온다면야 그마저도 참아줄 의향이 있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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