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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단독]北 포격 맞서다 숨진 해병 아들 9년 전 사진 보고 울음 터진 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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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욱 일병 소대장 '연평도 도발' 전 촬영

'서해수호의 날'에 빛바랜 사진 3장 건네

중앙일보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맞서다 전사한 故 문광욱 일병의 생전 마지막 모습. 그해 11월 초 연평부대 배치 직후 그의 소대장이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다. 최근 해당 간부(해병대 상사)가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아버지 문영조(56)씨에게 이 사진을 줬다. [사진 문영조씨]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맞서다 전사한 해병대원 아들 사진을 9년 만에 손에 쥔 아버지는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사망 당시 스무 살이던 아들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 빛바랜 사진 속에 생생히 남아 있어서다.

고(故) 문광욱 일병의 아버지 문영조(56)씨 얘기다. 전북 군산이 고향인 문 일병은 2010년 11월 23일 북한이 연평도에 기습적으로 포격하던 날 해병대 진지에서 포탄을 나르다 적의 포탄 파편에 맞아 숨졌다. 군장대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그해 8월 '한반도 평화는 내가 지킨다'며 해병대에 자원 입대한 지 석 달 만에 벌어진 비극이다.

문씨는 25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 22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4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가 아들(문 일병)이 근무하던 연평부대 정비소대장이 찾아 와 아들이 찍힌 사진 3장을 건넸다"고 말했다. 그가 기념식이 끝나고 다른 전사자 유족들과 함께 버스에 타려는데 '해병대 상사' 한 명이 다가오더니 '광욱이 아버님이 어느 분이세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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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맞서다 전사한 故 문광욱 일병(왼쪽)의 생전 마지막 모습. 그해 11월 초 연평부대 배치 직후 그의 소대장이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다. 최근 해당 간부(해병대 상사)가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아버지 문영조(56)씨에게 이 사진을 줬다. [사진 문영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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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간부는 문씨에게 "신병이 부대에 오면 항상 사진을 찍어줬는데 오랫동안 잊고 지내다가 최근에 혹시나 해서 디지털카메라를 뒤져봤는데 광욱이 사진이 나와 연평도에서 오게 됐다"고 말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직전인 2010년 11월 초 문 일병(순직 후 이병에서 일계급 특진)이 연평부대에 배치된 직후 이 간부가 본인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준 사진들이다.

2장은 당시 졸병이던 문 일병이 군복을 입고 군기가 바짝 든 채 찍은 독사진이고, 1장은 고참(상병)과 나란히 찍은 사진이다. 연평도 해변을 배경으로 초소 근처에서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래 전 찍은 탓인지, 아니면 카메라 조리개가 잘못된 탓인지 사진마다 일부가 누렇게 변색됐다. 문씨는 "잘 나온 사진은 아니지만, 지금 봐도 가슴이 뭉클하다"고 했다.

문씨는 "사진을 받고 나서 너무 울컥한 나머지 상사분 이름도 미처 못 물어봤다"며 "그분도 저를 보자 마자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울먹거렸다"고 전했다. 그는 "(연평도 포격으로 아들을 잃은 지) 9년이 다 돼 가지만 엊그제 일 같다"며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아내한테는 (이 사진들을) 숨겨 놓고 있다"고 했다.

문씨가 참석한 올해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은 유난히 논란이 많았다. 서해수호의 날(3월 넷째 주 금요일)은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도발로 희생된 55명의 용사들의 넋을 기리고 북한의 무력 도발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2016년 제정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기념식에 불참하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국군 통수권자가 북한 눈치를 보느라 서해를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가 현충원에 보낸 조화 명패가 땅에 떨어진 것을 두고도 여야 간 공방이 치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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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맞서다 전사한 故 문광욱 일병의 생전 마지막 모습. 그해 11월 초 연평부대 배치 직후 그의 소대장이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다. 최근 해당 간부(해병대 상사)가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아버지 문영조(56)씨에게 이 사진을 줬다. [사진 문영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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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문씨는 "여든 야든 나라를 지키다 희생된 장병들을 정쟁(政爭)이나 선거에 악용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그가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2016년 4월 문 일병이 묻힌 대전현충원에 갔다가 우연히 당시 정의화 국회의장을 만난 일화를 소개했다.

문씨는 "특별한 날도 아니었는데 정 의장이 보좌진 3명과 같이 (연평도 포격 전사자 묘역에 가서) 조용히 참배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정 의장은 그해 12월 제2연평해전·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 도발 희생자 55명 유족들을 국회의사당 근처 식당에 초청해 오찬을 함께하며 일일이 위로했다고 한다.

문씨는 "정치인들이 기념식 날에만 '국가 안보'와 '나라 사랑'을 언급할 게 아니라 정 의장처럼 평소에도 전사자를 진심으로 예우하고 유족들을 품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군산=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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