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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한 벌에 물 7000리터? 만만한 청바지, 알고 보니 환경오염 주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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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고 돌리고 빨고…워싱 공정만 40단계
레이저 워싱·오존 워싱 등 친환경 공법 개발됐지만 활용도 낮아

조선일보

워싱은 청바지의 품질을 좌우한다. 면화 재배 과정까지 따지면 한 벌의 청바지를 만드는 데 7000ℓ의 물이 소요된다./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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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청바지 한 장을 워싱하는데 약수터 물통 15개 분량이 들어가요. 화공약품으로 탈색을 하기 때문에, 약품을 중화해서 빼는 과정에서 많은 물이 들어요. 그런데 오존 워싱은 10분의 1 정도면 충분하죠. 전기도 70% 정도로 아낄 수 있어요"

동두천에서 청바지 워싱 업체를 운영하는 신진의 김광수 대표가 친환경 워싱 기법을 설명했다. 전기로 오존을 발생시켜 색을 변화시키는 오존 워싱, 광선으로 색을 탈색시켜 무늬를 만드는 레이저 워싱 등. 친환경 워싱은 일반 워싱과 달리 환경오염을 줄이고 작업환경도 개선할 수 있다. 비용도 일반 워싱과 비슷하다.

◇ 청바지 워싱만 40단계...물·에너지 낭비 커

하지만 청바지 업계는 여전히 물이 많이 드는 일반 워싱을 선호한다. 다시 말해 "어떤 방법으로 워싱하느냐"보다 "값싼 워싱"에 더 관심이 많다. 그래서 많은 업체가 인건비가 싼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 청바지를 생산한다. 국내 워싱 공장은 40여 개로 10년 전보다 반 이상 줄었다. 이 가운데 친환경 워싱을 하는 곳은 단 3곳에 불과하다.

김 대표는 "수요가 낮다 보니 친환경 설비를 갖추지 못하는 것"이라며, "동남아에서 청바지를 만들면 국내의 1/3 수준의 비용이 든다. 가격이 싸다 보니 많은 업체가 생산처를 해외로 돌린다. 아직까진 친환경보다 가격이 더 중요하다다는 인식"이라고 했다.

청바지는 짙은 인디고(Indigo∙파란 염료) 생지 원단을 탈색해 만든다. 봉제를 마친 생지 청바지에 약품을 바르고, 긁고, 빠는 워싱 공정을 거치면 부드럽고 옅은 청바지가 완성된다. 같은 원단으로 봉제를 했더라도, 워싱만으로 70가지 이상의 디자인을 만들 수 있다. 돌을 청바지와 함께 세탁해 물을 빼는 스톤 워싱, 강한 바람으로 모래를 분사해 천을 깎는 샌드블라스트 등 기법도 다양하다.

◇ 한 벌의 청바지에 물 7000ℓ, 이산화탄소는 32.5kg 추산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물과 전기, 화학약품의 사용이 불가피하다. 이와 관련해 그린피스는 면화 재배에 필요한 물을 포함해 한 벌의 청바지를 만드는 데 물 7000ℓ, 이산화탄소는 32.5kg이 든다고 추산했다. 안전성 논란도 동반한다. 2013년 한국소비자연맹이 시중에 판매되는 청바지를 시험한 결과 일부 청바지에서 발암물질이 기준치 이상 검출됐고, 다른 제품에서는 내분비계 장애 유발물질인 NPEs가 검출됐다. 2014년 녹색소비자연대의 조사에서는 아동복 브랜드 청바지에서 환경호르몬이 검출됐다.

워싱 기술인 샌드블라스트 공법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모래를 분사해 천을 마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먼지가 작업자의 호흡기로 들어가 규폐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리바이스, H&M, 디젤, 지스타, 구찌 등은 샌드블라스트 공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업체가 이 공법으로 청바지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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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 공장에서 배출되는 폐수. 이 공장에서 두 번 정화한 폐수는, 폐수종말처리장으로 가 또 한 번 정화 과정을 거친다./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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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환경 청바지 공법 개발됐지만, 상용화는 아직...

지속가능성과 윤리성은 최근 패션업계의 화두다. 소비자들은 원료와 의류 제작 공정 등에 관해 관심을 갖고 소비에 반영하려 한다. 영국 패션 검색 플랫폼 리스트(Lyst)에 따르면 2018년 이후 지속가능한 패션에 대한 검색율이 66%가 증가했다. 또 지속가능한 청바지 브랜드의 검색은 187% 증가했다.

청바지 업계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 유니클로는 지난해 ‘블루 사이클 데님 테크놀로지’라는 친환경 공법으로 만든 청바지를 출시했다. 나노 버블 세정과 물을 사용하지 않는 오존 가스 세정을 조합한 기술로 물 사용량을 99% 절감했다. 이 회사는 2020년까지 모든 청바지를 친환경 워싱으로 제작할 계획이다. 리바이스는 지난해 90초 만에 워싱이 되는 레이저 워싱 기술을 선보여 주목 받았다. 제이크루와 메이드웰은 데님 생산업체 사이텍스(Saitex)와 함께 물 75%, 화학물질은 64% 줄인 청바지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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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화학약품 없이 레이저 광선으로 워싱 효과를 내는 레이저 워싱./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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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내 업계의 대응은 소극적이다. 기자가 청바지를 생산해 판매하는 업체 몇 곳에 친환경 청바지에 대한 계획을 물었지만, 이를 공식화한 유니클로를 제외하고는 뚜렷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친환경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값싼 옷을 선호한다"며 모순된 소비 현상을 꼬집었다. "3~5만 원대에 판매되는 패스트 패션 청바지의 경우 한두 번 빨면 옷이 망가진다. 그러면 그 옷을 버리고 또 새 청바지를 산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질 나쁜 저가 청바지만 생산되는 것이다."

친환경 청바지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한 청바지 디자이너는 "친환경 워싱으로 만든 청바지는 워싱 효과가 부자연스럽고 착용감도 불편하다. 가격도 높다 보니 상용화하긴 아직 이르다"라고 했다. 김상오 게스코리아 부사장은 "소재 차별화가 경쟁력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친환경 청바지 개발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단가 등의 문제로 현실적인 벽에 부딪혔다. 원단부터 워싱까지 업계 전체가 움직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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