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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여기가 생지옥"…금세기 최악 참사 예멘 내전 4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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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이란 '고래싸움'에 국토 초토화…1만명 사망

작년 12월 극적 휴전 합의했으나 불신 속 이행 불투명

연합뉴스

물을 받는 예멘 어린이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사우디아라비아가 지원하는 예멘 정부와, 이란과 연계된 시아파 반군이 정권을 놓고 격돌한 예멘 내전이 발발한 지 26일이 되면 만 4년이 된다.

사우디는 예멘 시아파 반군 후티가 2014년 9월 예멘 수도 사나를 점령한 뒤 이듬해 2월 자신이 지지하는 예멘 정부까지 쿠데타로 전복하면서 영역을 확장하자 2015년 3월 26일 전격적으로 군사 작전을 펴면서 내전이 본격화했다.

사우디의 전력이 압도적이어서 쉽게 끝날 듯했지만 예멘 내전은 반군 후티의 끈질긴 저항으로 장기화했다.

사우디와 미국은 이란의 지속적인 군사 지원으로 예멘 내전이 끝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이란은 반군과 우호적이기는 하지만 군사적 지원은 없다면서 사우디 왕실의 강경한 역내 개입 정책이 내전의 원인이라고 반박한다.

중동의 양대 패권국인 사우디와 이란의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지는 쪽은 예멘 국민이다.

중동 내 패권경쟁 틈에서 그렇지 않아도 세계 최빈국으로 꼽히던 예멘은 유혈사태와 전염병으로 금세기 들어 사상 최악의 비극이 진행 중이다.

2014년 9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대테러전의 모범 사례로 들었던 중동 국가이자 모카커피의 원산지, 전통 아랍어 연수지로 유명했던 예멘은 나락으로 내전과 함께 추락했다.

지난 4년간 예멘 내전으로 사망한 예멘인의 수가 1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교전, 폭격 등 군사 분쟁으로 숨진 이들뿐 아니라 나라 전체가 초토화되면서 정상적인 산업활동이 어려워진 탓에 영양실조, 전염병 등으로 목숨을 잃은 수는 정확히 집계되지도 않는다.

아동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은 기아로 사망한 5세 이하 예멘 어린이가 8만5천명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예멘 인구 2천400만명 중 80% 정도가 인도주의적 보호가 필요하고 이 가운데 1천430만 명이 긴급 구호를 받아야 한다고 집계했다.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은 지난해 11월 "어린이에게는 예멘은 생지옥이다"라며 깊은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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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반군의 차량 행진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예멘 내전은 2010년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쓴 '아랍의 봄'이 가장 나쁜 결과를 낳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예멘은 2011년 말 벌어진 민주화 시위로 이듬해 2월, 34년을 철권통치한 독재자 알리 압둘라 살레(2017년 12월 사망)가 하야하면서 앞날에 대한 희망이 부풀었다.

민주화 시위가 유혈사태로 번진 이집트, 바레인, 리비아 등과 다르게 예멘은 튀니지와 함께 아랍의 봄 결실을 맛보게 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장기 독재와 빈곤의 깊은 뿌리는 예멘의 안정된 민주주의를 순순히 허락하지 않았다.

살레 시절 부통령이던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가 2년 임기의 과도정부의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불행하게도 하디 정권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고 합법성을 갖췄음에도 정치·군사적 기반이 취약했다.

하디 대통령의 개인 역량 부족일 수도 있지만 그를 둘러싼 정치·경제적 여건은 민주화를 꽃피우기엔 열악했다.

의회 다수당 국민의회당(GPC)은 여전히 퇴출당한 독재자 살레의 통제 아래였고 군부에서도 살레의 영향력이 건재했다. 하디 대통령은 군 고위 인사의 개혁을 단행, 살레의 장남과 조카 등 측근을 제거하긴 했지만 이는 군 전력의 붕괴로 이어졌다.

이에 맞서야 할 이슬라당, 남부 사회주의 정파 등 야권은 정치 개혁과 민생보다는 정부 요직에 자신의 세력을 심는 눈앞의 이득에 더 관심이 있었다.

과거 적대적이었지만 정권 획득이라는 목표 아래 살레 전 대통령과 전략적으로 내통한 후티는 끊임없이 하디 대통령 정부를 흔들어댔다.

후티가 2014년 9월 수도 사나로 진입했을 때 예멘 정부군은 이를 저지할 전투력이 없었고 살레 편에 선 일부 군장교는 후티의 진군을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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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부 무장조직의 공격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평화적 정권 이양을 맡은 과도정부에 반기를 든 후티가 쉽게 민심을 얻게 된 배경엔 무엇보다 '빵' 문제가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후티가 본격적으로 반정부 행동에 나서게 된 것은 하디 정부가 재정을 개혁한다며 2014년 7월 정부 재정의 3분의 1(연간 약 20억달러)을 차지하는 연료 보조금을 축소하면서부터다.

이 결정으로 휘발유 가격이 60%, 경유는 95%가 폭등했다.

연료값이 치솟자 하디 정권에 반대하는 민심이 들끓었고 후티는 이를 틈 타 반정부 시위에 앞장서며 지지 기반을 넓혔다.

후티와 하디 정부는 연방제식 정권 이양 절차를 논의하는 듯했지만 이해관계가 엇갈린 탓에 합의가 결렬돼 내전이 싹을 텄다.

끝이 보이지 않던 내전은 지난해 12월 예멘 정부와 반군이 유엔의 중재 아래 최대 격전지인 호데이다에서 휴전하고 철군하기로 전격 합의하면서 돌파구를 찾는 듯했다.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으로 입장이 난처해진 사우디가 예멘 내전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면서 합의가 성사됐다.

그러나 일부 수감자 교환이 이뤄졌을 뿐 상대방에 대한 불신 속에 이 합의는 유야무야되는 분위기다.

유엔은 이 합의를 내전을 종식하는 출발점으로 삼으려고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만 현재로선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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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군의 폭격
[로이터=연합뉴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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