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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VIP의 관심이 많다”…김학의 수사 ‘외압’ 논란 급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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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관계자 “VIP 관심 많다”부담 토로

수사기획관 등 수사 지휘팀 줄줄이 교체

피해자들만 추궁…진술 신빙성 흠집 시도


한겨레

지난 23일 출국금지 조치를 신호탄으로 특수강간 등 의혹을 받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검찰 재수사가 공식화됐다. 이런 가운데 2013년 검·경 수사와 이에 따른 두 차례 무혐의 처분에 대한 수사외압 의혹이 향후 수사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①비위 의혹에도 김학의 “명예회복” 떳떳, 경찰 수사팀은 줄줄이 교체

최근엔 당시 경찰 수사팀에 ‘박근혜 청와대’가 압박을 가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한국방송>(KBS)는 당시 경찰 실무자의 말을 인용해 정식 수사 착수 전인 2013년 3월 초 김학배 경찰청 수사국장이 ‘인사권자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굉장히 부담스럽다’, ‘브이아이피(VIP·대통령)의 관심이 많다’는 등 부담을 토로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얼마 뒤인 3월13일 보란듯이 김 전 차관은 ‘사법연수원 동기가 검찰총장이 되면 옷을 벗는다’는 인사 관례를 깨고 법무부 차관에 임명됐다. 그에 대한 박근혜 정권의 신임이 재확인된 셈이었다.

곧바로 관련 의혹들이 터져 나왔고 엿새 뒤 김 전 차관은 사임했지만 또다시 ‘수상한’ 상황이 연출됐다. 김 전 차관은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지만 새 정부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사임한다. 진실을 밝혀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당당해 했고, 오히려 경찰청 수사국장·수사기획관·특수수사과장·범죄정보과장 등 경찰 수사팀 지휘 라인만 줄줄이 교체됐다.

②검찰, 김학의 딱 한번 비공개 소환해 “모른다” 부인 조서만 받아

경찰의 사건 송치 이후 검찰의 수사지휘 및 무혐의 처분 과정에도 외압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 가는 대목들이 많다. 김 전 차관은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건설업자이자 ‘범행 장소’인 원주별장의 소유주 윤중천씨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했다. 그 뒤 윤씨와의 유착관계가 드러나자, 김 전 차관은 이번엔 “피해자들을 모르고 강간한 적도 없다”고 진술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때까지 관련 혐의를 모조리 부인하는 전략이었다.

그런데도 김 전 차관은 1차 무혐의 때 단 한 번 비공개 소환됐고, 검찰은 그가 혐의를 부인하는 말들을 타이핑했을 뿐 적극적으로 조사하지 않았다. 검찰이 ‘거짓말하는 피의자들’에게 일반적으로 쓰는 수사기법은 아니었다. 사전에 수집한 물증으로 자백을 받아내려 하거나 논리적 빈틈을 파고들지도 않았다.

③피해자들 추궁 또 추궁…앞뒤 정황 증거만으로 “특수강간 안 돼”

반면, 검찰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들을 추궁했다. 수사기록을 보면 피해자 ㄱ씨에게 “왜 곧바로 신고하지 않았느냐”고 반복해 질문하는가 하는 등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에 흠집을 가하려는 듯한 내용들이 담겨있다.

검찰이 앞뒤 정황 증거만으로 피해자들의 일관된 진술을 외면한 것 역시 논란이다. 당시 수사기록을 보면 이런저런 사정으로 볼 때 “피해자의 진술은 믿기 어렵다”는 식으로 무혐의 판단의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피해자 ㄱ씨의 경우 성폭행을 당했다면서도 △왜 윤씨의 원주별장에 머물렀고 △왜 수년 동안(2006.7∼2008.2) 피해신고를 하지 않았는지 △왜 성관계 후 용돈을 받았고 △왜 함께 여행을 다니고 △왜 윤씨로부터 사업투자를 받았는지 점 등 의심을 거듭했고, 이를 근거로 그를 피해자로 보긴 어렵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이에 대해 한 부장판사는 “저런 식의 생각이면 부부간의 성폭력은 절대로 성립할 수 없다. 전후 상황이 아닌 특수강간 그 자체에 집중했어야 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당시 경찰 수사팀 관계자도 “김 전 차관의 특수강간 혐의를 입증하는 핵심 증거는 일관성 있는 피해자들의 진술인데, 검찰에서 간접증거일 뿐인 ‘동영상’을 놓고 직접적인 증거다 아니다 따지는 등 처음부터 답을 정해 놓은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④경찰 영장 10번 기각, 검찰 내부서도 “이례적 수사지휘“

검찰이 지나치게 엄격했던 경찰에 대해 수사지휘 과정도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는 소환요구에 불응한 김 전 차관에 대한 경찰의 체포영장 신청을 3차례, 출국금지 신청도 2차례 반려했다. 압수수색 영장까지 합치면 10차례 기각했다.

그가 박근혜 정부의 총애를 받던 전직 법무부 차관이 아니라 일반 특수강간 피의자라도 그랬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 전 차관이 특수강간이라는 중범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질 경우 ‘박근혜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이 큰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서울지역 한 검사도 “다른 특수강간 혐의 범죄에 대한 수사지휘와는 많이 다른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사정기관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초기는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혹한 시기였다. 검찰총장까지 사찰해서 내보내지 않았느냐”며 “인사 같은 거로 신호만 주면 검·경이 알아서 잘 기던 시절”이라고 돌이켰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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