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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디지털스토리] 단톡방 성희롱, 농담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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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성폭력 급증…단톡방 성희롱, 잊을만하면 반복

"여성을 물건으로 생각…성희롱하며 자신의 남성성 과시"

(서울=연합뉴스) 박성은 기자 = "남자가 네명 있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단톡방)에서 제 실명을 거론하며 성희롱한 것을 발견했어요. 저를 지칭하며 'OO 딜도(성인용품)나 XX XX', 'OO 남자친구와 XXX XX'이라고 말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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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한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A 씨는 "XX년 등 모욕적인 욕설도 있었는데 카카오톡 캡처본을 확보했다"며 "세 명은 별로 친하지 않은 지인이고 한 명은 잘 모르는 사람인데 고소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단톡방 성희롱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가수 승리 등 남성 연예인들이 함께 있는 단톡방에 성관계 불법 촬영 영상물을 올린 혐의로 정준영이 21일 경찰에 구속됐다. 자기들끼리 단톡방에서 불법 촬영물을 돌려보고 피해 여성들에 대한 품평과 희롱을 일삼았다. 피해 여성은 10여명에 이른다.

단톡방은 대화방에 참여하지 않으면 내용을 알 수 없다. 폐쇄적인 특성으로 내부 폭로 등으로 유출되지 않는 경우 피해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강력한 처벌과 함께 사람들이 온라인 성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 온라인 성폭력, 일상생활에 만연

"70명 가까이 모인 익명 단톡방에서 불쾌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온라인에 퍼진 성관계 동영상을 누군가 단톡방에 올렸는데 너무 민망하더라고요."

직장인 김 모(34) 씨는 "타인을 향해 성적인 표현을 쓰는 경우도 있다"며 "개인이나 절친(절친한 친구)들만 있는 폐쇄적인 단톡방에서는 이런 일들이 더 심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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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성폭력을 처벌해달라는 요청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대검찰청 '2018 검찰연감'에 따르면 통신매체이용음란죄 접수 건수는 2010년 541건에서 2017년 2천169건으로 300% 증가했다.

처리현황을 살펴보면 2017년 기준, 기소는 485건(22%), 불기소는 869건(45%), 기타처분은 504건(33%)이다.

단톡방에 가입한 사람을 대상으로 성적인 농담을 하고 음란물을 보낸다면 원칙적으로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 행위'에 해당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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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가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단톡방 성희롱은 성범죄는 성립하지 않고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다만 제삼자나 다수가 인식할 수 있는 공공연한 상황, 이른바 '공연(公然)성'이 인정돼야 한다. 명예훼손죄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하의 벌금, 모욕죄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단톡방 성희롱은 잊을만하면 반복된다. 지난해 한 연합동아리에서는 남학생들이 단톡방에서 여학생들의 몸매를 평가하고 상습적으로 성희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학생 B 씨는 자신의 여자친구인 C 씨의 사진을 다른 남학생들과 공유하며 성적 대상화 하고 성희롱한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을 음식에 비유하고, 성관계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내용이 단톡방 대화에 담겼다.

◇ 초등학교 때부터 성 역할에 대한 교육 필요

단톡방 성희롱은 왜 발생하는 걸까. 일부 남성들이 여성을 '물건'으로 보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는 지적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단톡방 성희롱은 큰 틀에서 보면 여성을 동료나 친구보다는 소위 '물건'처럼 보기 때문"이라며 "이성을 비하하고 음란하게 얘기하면서 무리에서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려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단톡방의 경우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는데 성희롱 등을 통해 동료의식을 공고히 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를 보고 침묵하는 방관자도 성희롱 가해자 못지않게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단톡방 성희롱을 '장난'이나 '사적인 대화'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온라인 성폭력 문제를 더 키운다는 것이다.

최근 서강대 로스쿨 A 교수가 '버닝썬 무삭제 유출 영상'을 놓고 농담 소재로 삼은 사실이 외부에 알려졌다. 해당 교수는 "'버닝썬 무삭제 (유출) 영상'이 잘리기 전 빨리 보라고 친구가 보내줬다"며 "평소 집에 버스 타고 가는데 그 날은 집에 택시를 타고 갔다. 잘릴까 봐 빨리 틀어봤더니 위에는 해가 돌고 있고 아래에서는 무를 자르고 있더라"고 말했다.

중앙대 B 교수는 "(연예인들이) 자기가 했던 일들을 카톡방에 올리지 않았다면 흠을 숨기고 잘 살았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인터넷에는 잊힐 권리가 보장되지 않으니 글을 함부로 쓰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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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온라인 성희롱·성폭력 및 여성 혐오 실태조사'를 보면 온라인 성폭력에 대한 법적 제도적 대책이 매우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들은 이를 예방하기 위해 사법적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일각에서는 성희롱을 직접 하지 않았더라도 이를 지켜보는 방관자 역시 2차 가해자라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관련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현실적으로 방관자를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단톡방은 개인 간 사적 대화이기 때문에 남성 스스로가 성적인 발언을 불편해하고 문제의식을 가져야만 변화할 수 있다"며 "또 온라인 서비스제공자들이 피해자들이 신고하면 가해자의 계정을 제한하는 등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웅혁 교수는 "단톡방 성희롱 문제는 하루아침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초·중·고등학교에서 사회화 과정을 겪으며 잘못 학습한 경우가 있다"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성 역할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포그래픽=이한나 인턴기자)

junep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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