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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신재생에너지 새 강자"라던 지열발전…'총체적 부실'에 주저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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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세종=권혜민 기자, 유영호 기자] [에잘알-⑤]"지열발전, 포항지진 촉발" 조사 결과에 파장 커져…지진 위험 알면서도 사업 추진 정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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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열발전은 기상여건에 관계없이 항시 전력을 생산할 수 있어 앞으로 전력 수급안정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대안이 될 것이다."

2012년 9월 25일,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경북 포항 지열발전소 기공식 개최 사실을 알리며 지열발전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정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지열발전을 '신재생에너지의 새로운 강자'라 칭하고, 포항 지열발전소를 '아시아 최초 비화산지대 지열발전소'라고 강조하며 대대적 홍보에 나섰다.

그 후 7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19년 3월, 상황은 반전됐다. 지난 20일 산업부는 '포항 지열발전 사업 영구 중단'을 선언했다. 이 사업이 2017년 11월 포항지진을 '촉발'했다는 정부조사연구단의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다. 규모 5.4의 포항지진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발생한 지진 중에서 두 번째로 강력했던 지진이다. 당시 시설물 피해가 총 2만7317건, 피해액은 551억원에 이른다. 주민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피해 복구도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 파장이 클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사업 추진 과정에서의 '총체적 부실' 정황까지 속속 드러나며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지열발전은 이름 그대로 땅 속의 열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을 말한다. 오염물질 배출이 없는 데다 날씨와 상관 없이 발전이 가능해 차세대 신재생에너지로 각광 받아 왔다. 이전까지는 주로 지표면 근처에서 고온의 물이나 마그마를 얻기 쉬운 화산지대에서 활용됐다. 하지만 심부지열발전(EGS) 기술이 등장하면서 화산지역이 아닌 곳에서도 지열발전을 할 수 있게 됐다. 보통 땅 속 온도는 지표면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갈 수록 높아진다. 그래서 4~5㎞ 가량 땅을 뚫고 들어가 물을 주입하고, 데워진 물에서 만들어진 증기로 터빈을 돌리면 전기를 얻을 수 있다. 포항 지열발전 사업도 이 방식을 취했다.

문제는 이 방식이 근처 지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땅을 깊게 파는 데다 지하에 물을 주입하고 빼는 과정이 있어 지반이 약화하고 단층을 자극해 지진을 유발할 수 있다. 미소지진으로 2009년 폐쇄된 스위스 바젤 지열발전소가 대표 사례다. 바젤 지열발전은 포항과 같은 EGS 방식을 택했는데, 시추 도중 규모 3.4의 지진을 비롯한 지진이 잇따라 발생해 사업을 영구 중단했다.

이외에도 독일 란다우 지열발전소 인근에서 2009년 규모 2.7의 지진이 발생해 가동이 중단됐고, 현재 가동 중인 프랑스 술츠 지열발전소에서도 2003년 규모 2.9의 지진이 일어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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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 있는 지열발전소가 가동을 멈춘 채 서있다. 2019.3.20/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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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지진도 지진의 진앙에서 불과 2㎞ 떨어진 지열발전소의 물 주입 과정에서 알려지지 않은 단층대를 활성화해 촉발된 것으로 조사됐다. 지열정 굴착으로 지반이 연약해진 상황에서 고압의 물을 주입하고 빼내며 만들어진 압력이 미소지진을 순차적으로 촉발했고, 그 영향이 포항 지진 본진으로 도달해 쌓이다가 지반이 파괴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힘(임계응력)을 넘어서자 지진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지진 유발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있었는데도 지열발전 사업을 계속해서 추진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학계를 중심으로 지열발전의 위험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2008년, 2013년 정부 용역으로 작성된 보고서에도 지열발전이 지진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여기에 포항 지열발전 사업 주관사업자인 넥스지오가 어려운 경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사업을 무리하게 강행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발전에 필요한 유량을 얻기 위해 미소지진 발생에도 물 주입을 계속했다는 설명이다. 2016년말 기준 넥스지오의 부채비율은 1211% 수준으로, 현재는 기업 회생절차에 있다. 또 당시 물 주입을 맡은 중국 업체가 수압을 다른 지열발전 사업보다 3배 이상 높였다는 점도 의문으로 남는다. 정부는 부지 선정과 물 주입 등 사업 진행 과정 전반에 문제가 없었는지 들여다 볼 계획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태로 국내 지열발전 사업은 퇴출될 처지에 처했다. 정승일 산업부 차관은 조사 결과 발표 직후 브리핑을 열고 향후 포항 외 지역에서 지열발전 기술개발을 진행할지 여부에 대해 "여러 위험성이 제기됐기 때문에 매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추가 사업 추진이 어려울 것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실제로 포항지진 이후 울릉도에서 추진하려던 지열발전 사업은 백지화됐다. 광주시의 경우 2015년 검토 단계에서 사업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사업을 접었다.

한편 해외 곳곳에서는 현재도 EGS 방식의 지열발전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프랑스 술츠 지열발전소의 경우 가동 초기 지진 발생에도 불구하고 보강 작업을 거쳐 성공적인 지역발전 사례로 꼽힌다. 신재생에너지 분야 전 세계 기술 개발 속도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포항 사례의 교훈을 바탕으로 관련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세종=권혜민 기자 aevin54@mt.co.kr, 유영호 기자 yhryu@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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