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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김진호의 세계읽기]대북 추가제재 취소, 트럼프의 절묘한 한 수(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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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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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거래(deal-딜)의 달인답다. 결코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 오전 10시22분(미국 동부시간) 미국 재무부가 보고한 대북 추가제재안을 말 한마디로 취소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 메시지로 “미국 재무부가 북한에 대한 기존 제재에 더해 대규모 제재가 추가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나는 오늘 철회하라고 지시했다. 그러한 추가제재들을!” 트럼프가 취소 지시를 내린 것은 ‘기존 제재에 추가될 제재’다. 다시 말해 이미 발표된 제재가 아니다. 즉 재무부가 지난 21일 북한에 유엔 안보리 제재가 금지한 품목을 운송한 ‘다롄 하이보 국제화물공사’와 ‘랴오닝 단싱 국제포워딩’ 등 중국 해운회사 2곳을 제재한다고 발표했다.

워싱턴포스트가 짚어낸 바, 트럼프는 재무부가 ‘발표할(will announce)할 제재’라고 써야할 것을 ‘발표한(announced) 제재’라고 잘못 썼다. 기실 트위터 문장만 꼼꼼하게 보아도 간파할 수있는 실수다. 트럼프는 같은 트위터 메시지에서 ‘대규모 제재가 추가될 것(would be added)’이라고 썼다. 또 고작 선박 2척에 대한 제재를 두고 대규모(large) 제재안이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인 딜을 다루는 상황에 문장의 오류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눈여겨 봐야할 대목은 타이밍이다. 트럼프의 트위터가 발표된 시간은 한반도 시간으로 23일 0시22분이다. 북한 지도부가 곤히 잠들었을 시간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침실로 향했을 시간까지만 해도 밀당은 북한의 각본(playbook)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 순서로 보면 이렇다. 미국 재무부 트위터가 21일 오전 11시3분(미국 동부시간, 한반도 시간 22일 오전 1시3분) 선박 2척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자, 한 뒤 북한은 22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북측 인원들을 전원 철수시켰다. 북측이 이러한 결정을 내린 시간은 확인할 길이 없지만, 미국 재무부 발표 뒤인 것은 분명하다. 북측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 철수한다”고 통보하면서도 “남측 사무소의 잔류는 상관하지 않겠다”면서 여지를 남겼다. 지난 2.28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측이 남측에 대해 취한 첫번째 가시적 조치였다. 하지만 남북관계를 단호하게 끊겠다는 것이 아니라 재개 여지를 남겨놓았다.

22일자 북한의 대외선전매체인 ‘메아리’가 “남조선 당국은 말로는 북남선언들의 이행을 떠들면서도 실제로는 미국 상전의 눈치만 살피며 북남관계의 근본적인 개선을 위한 아무런 실철적인 조치들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다.연락사무소 일방 철수는 북한의 익숙한 행동패턴이다. 미국이 생화학 무기를 포함한 모든 대량살상무기(WMD)의 포기를 요구하면서 제재 완화를 안하는 상황에서 남측이 미국을 설득하는 역할을 더하라는 암묵적인 압박이다. 남측 정부는 익숙한 패턴을 보이는 데 그쳤다. 통일부 차관은 언론브리핑에서 북측의 조치에 유감을 표하고 “조속히 복귀해 정상 운영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상대가 없는 공동연락사무소에서 남측은 “계속 근무할 생각”이라고도 덧붙였다.

익숙한 행동패턴에서 벗어난 것은 이번에도 트럼프다. 서울과 평양은 뜨뜨미지근한 행동과 반응 속에 개운치 못한 주말로 들어갔다. 자칫 월요일까지 지속됐을 분위기를 휘저어놓은 트럼프의 한 수(手)였던 것이다.

트럼프의 의도는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의 짧은 입장 표명에 담겨 있다. 샌더스 대변인은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좋아하고 이런 (추가)제재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한국이건 미국이건 관료들은 늘 뒤늦게 반응한다. CNN을 비롯한 미국 언론이 전하는 백악관의 분위기는 당혹감 그 자체다. 특히 21일 재무부의 발표를 ‘중대한 조치’라고 추켜세우며, “북한의 불법적인 해운관행을 막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엄숙하게 경고했던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가장 놀랐을 것이다. 앞 뒤 정황을 보면 트럼프가 혼자 생각하고 혼자 내린 결정이다. 미국과학자연맹(FAS)의 북한 전문가 애덤 마운트가 트럼프의 의중을 정확하게 짚었다.

그는 CNN에 “이것이 보내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트럼프는 대화를 유지하기 위해 (제재)이행을 느슨하게 하는 것을 자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운트는 이어 “지렛대를 반대쪽(북한)으로 움직여줌으로써 북한에 북한의 전술이 작동할 수있도록 확신을 심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시소 게임에 비유하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북측의 제재 완화 요구를 거절, 북한을 내려보냈다면 이번엔 제재 이행에 융통성을 보임으로써 북한이 약간 올라오도록 배려했다는 해석이다.

트럼프의 의도는 북측과의 밀당을 유지하는 동시에 북측에 모종의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제 다시 북한의 다음 결정을 기다리는 느긋한 입장으로 돌아갔다. 북한의 각본(playbook)이나 행동패턴을 바꿔놓는 탁월한 협상가의 진면목을 보인 것이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북한이 보이는 행동패턴은 미국과 한국에 압력을 넣는 한편, 중국과 러시아로 손을 내미는 것이다. 여차하면 북한 경제의 재건 또는 유지와 체제보장의 후방기지로 중국과 러시아를 바라보겠다는 것이다. 알 자지라에 따르면 러시아 크렘닌궁의 드미트리 페르코프 대변인은 지난 3월4일 김정은 위원장의 방러가 논의되고 있다고 확인했다. “정확한 (방문)일자가 곧 외교채널을 통해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의 의전책임자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은 지난 19일부터 모스크바에서 목격된 것은 김 위원장의 방러가 임박했다는 증거다. 지난해부터 ‘한 참모부’임을 선포하고 전략전술의 협동을 강조하고 있는 중국과는 지난 1월 방중을 통해 모종의 합의를 하고 돌아왔다.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4월15일)에 즈음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평양을 방문할 것이라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북한 내놓는 외교적 용어는 늘 복선을 깐다. 신년사에서 밝힌 ‘새로운 길’은 핵 또는 미사일 추가실험일수도 있고,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강화일 수도 있다. 그 세가지 가능성을 모두 살려놓고 있다. ‘한국의 중재 하에 미국과 대화하는’ 하노이 이전의 궤도에서 이탈 조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불행히도 한반도 남측에선 북한의 이러한 행동패턴을 바꿔놓을 묘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걸 트럼프가 던졌다. 북한은 남측을 압박하고 트럼프가 하노이에서 제시한 ‘미국식 셈법’을 우회공격하고 있지만 아직 판을 깨지 않고 있다. 북한과 미국 간의 밀당을 바라보아야 하는 시간이다. 성급한 낙관도, 성급한 비관도 모두 맞지 않다.

경향신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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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국제전문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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