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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경비업체 빠를 줄 몰랐다" '100억 황금박쥐' 절도미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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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함평서 황금박쥐상 절도미수

보안시설·방탄유리벽 등 모른 채 범행

25분간 안간힘…간신히 셔터50㎝ 열어

이슈추적
경찰, 7일만에 2명 검거·1명 추적중
중앙일보

함평군이 나비축제를 홍보하기 위해 제작한 순금 162kg짜리 황금박쥐 순금 조형물.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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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업체 차량이 그렇게 빨리 도착할 줄 몰랐다.”

지난 15일 전남 함평의 순금 황금박쥐상을 훔치려다 실패한 절도범들이 검거 직후 한 말이다. 인터넷 카페에서 알게 된 이들은 사전에 보안시설 등을 철저히 확인하지 못한 채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함평경찰서는 22일 “황금박쥐 조형물 훔치려 한 혐의(특수절도 미수)로 A씨(39)와 B씨(30)를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A씨 등은 지난 15일 오전 1시35분쯤 함평읍 생태전시관에 전시된 100억 원대 황금박쥐상을 훔치려다 실패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이달 초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만나 범행을 모의했다. 일정한 주거 없이 수도권에서 머물던 이들은 모두 절도전과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범행 직후 이들은 전남 지역을 벗어난 뒤 각자 흩어져 도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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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군이 나비축제를 홍보하기 위해 제작한 순금 162kg짜리 황금박쥐 순금 조형물.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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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서 만나 “황금박쥐상 훔치자”
경찰은 1주일에 걸친 추적 끝에 이날 오전 광주광역시에서 A씨를 검거했다. 앞서 B씨는 경찰의 추적에 심적 압박을 느껴 전날 충남 천안에서 자수했다. 경찰은 3인조 일당 가운데 C씨(49)도 신원을 특정하고 추적 중이다.

이들은 범행 전날인 지난 14일 저녁 자동차를 함께 타고 함평으로 향했다. 차량 트렁크에는 범행에 사용할 공사용 망치와 절단기 등을 실은 채였다. 일정한 직업이 없는 이들은 황금박쥐상을 훔쳐서 판 돈을 나눠 가질 계획이었다. 이튿날 오전 1시3분쯤 전시관 앞에 도착한 이들은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건물에 접근했다. 절단기를 이용해 외부 셔터를 제거한 뒤 유리 벽을 깨고 들어가 황금박쥐상을 훔치기 위해서다.

이들의 범행은 초반부터 난항에 부딪혔다. 절단기를 이용해 외부 출입문에 설치된 철제 셔터를 여는 것부터 여의치 않아서다. 이들은 문 앞에서 25분이나 작업을 한 끝에 좌·우측에 설치된 자물쇠 걸쇠 2개를 간신히 제거했다.

수난 연속…망치도 팽개치고 도주
하지만 이때 예기치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외부 셔터를 50㎝쯤 올리자 요란한 경보음이 울렸다. 셔터를 올린 후 유리문을 깨려던 이들은 황금박쥐상에 접근도 못한 채 황급히 자리를 떠야 했다.

절도범들의 수난은 계속됐다. 경보음이 울린 후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사설보안업체 직원들이 곧바로 현장에 들이닥쳤다. 이 광경을 목격한 1명은 입구에서 망을 보다 그대로 차를 몰고 달아났다. 이 때문에 나머지 2명은 차를 타지도 못한 채 그대로 뛰어 도망쳐야 했다. 이들이 달아난 현장에는 유리문을 깨는 데 사용하려던 망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경찰은 경보음이 울리지 않았더라도 이들이 유리문을 통과하지는 못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출입문 자체가 방탄용 재질의 강화 유리문이어서 쇠망치에 파손되지 않기 때문이다. A씨 등은 경찰에서 “황금박쥐상의 보안이 철저하다는 걸 나중에 언론보도를 보고야 알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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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군이 나비축제를 홍보하기 위해 제작한 순금 162kg짜리 황금박쥐 순금 조형물. 중앙포토


황금박쥐, 귀한 몸값…24시간 보안
함평의 황금박쥐상은 162㎏의 순금과 281㎏의 은으로 만들어졌다. 가로 15㎝, 세로 70㎝, 높이 218㎝인 조형물은 함평나비축제를 홍보하기 위해 제작됐다. 2005년 제작 당시 27억 원이던 조형물은 금값 인상 여파로 현재 시가가 100억 원대에 달한다. 앞서 함평군은 한반도에서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황금박쥐가 대동면 일대에서 서식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모형을 제작했다.

황금박쥐상은 비싼 몸값만큼이나 보안도 철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람 시간 외에는 건물 외부에 설치된 신호센서가 작동해 사람과 동물들의 미세한 접촉까지 감지해 경고음이 울린다. 관람 시간에는 방탄 강화유리가 황금박쥐상을 보호한다. 건물 내·외부에는 CCTV 10여대가 24시간 감시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함평=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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