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살만해진 인도 "발리우드 춤 지겨워"···배곯는 댄서 늘어난다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2012년 개봉한 인도 영화 '스튜던트 오브 더 이어'에서 주인공들이 댄서들과 군무를 추고 있다. [유튜브 영상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댄스 신(scene)이 너무 줄어서 할 일이 없습니다."
인도 뭄바이 출신의 39살 남성 댄서 프라카슈는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한숨 섞인 푸념을 늘어놨다.

집단 군무가 백미인 '마살라영화'
인도는 세계 최대의 영화대국이다. 2015년 한해 만들어진 영화만 1907편, 같은 기간 2위 미국이 791편을 제작한 것과 크게 대비된다. 프라카슈가 태어난 뭄바이는 인도영화의 메카다. 영국식 옛 지명 봄베이와 할리우드의 합성어인 ‘발리우드’라는 애칭도 붙었다.

인도영화는 독특하다. 코미디와 액션, 로맨스 등 각종 장르가 뒤섞여 있다. 내용은 권선징악이 대부분, 결말은 늘 해피엔드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름의 조화를 이뤄낸다. 그런 모습이 마치 갖가지 향신료를 버무린 인도 식재료 마살라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마살라영화’로도 불린다.

마살라영화의 백미는 춤과 노래로 가득한 집단 군무다. 영화 내내 느닷없이 전통음악과 함께 수시로 등장한다. 이런 장면을 ABCD라 부르기도 한다. '누구나 춤을 출 수 있다(Any Body Can Dance)'는 뜻이다.



생계 어려워 춤 포기하는 댄서들
타고난 춤꾼인 프라카슈도 17살 때부터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일당은 4000루피(약 6만 6000원) 정도로 웬만한 인도 노동자 일당의 20배에 달했다. 일반인은 꿈꾸기 어려운 해외 로케는 덤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새 그를 찾는 현장이 대폭 줄었다. 바쁠 때는 한 달에 25일을 영화판에서 보냈지만, 2년 여 전부터 한 달 평균 4일 수준으로 급격히 일감이 감소했다. 결국 프라카슈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댄스교실을 열었다.

동료 댄서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발리우드댄서노조의 자히드 셰이크 회장은 “돈을 빌려 달라고 찾아와 울며 애원하는 댄서들이 부쩍 늘었다”고 아사히에 말했다. 이미 춤을 포기하고 택시운전사, 택배원 등으로 전직한 댄서도 적지 않다.


서구문화 익숙한 젊은 중산층
발리우드 댄서의 실직 사태는 인도영화의 흐름이 바뀌면서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전통적인 마살라영화가 줄어들고, 그 자리를 서구식 영화들이 빠르게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극빈층이 많은 인도에서 영화는 최대 오락물이다. 힘들게 번 일당을 영화표와 바꿀 만큼 광적으로 영화를 즐기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영화관 풍경도 예사롭지 않다. 음악에 맞춰 손 박자를 치는 것은 예사다. 흥에 못 이겨 아예 춤을 따라 추는 관객도 있다.

중앙일보

지난해 7월 7일, 인도 뭄바이의 한 영화관에서 인도 영화계의 수퍼스타 라지니칸트가 출연한 신작 영화 개봉에 맞춰 극장 안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극장 배급보다 DVD 판매와 인터넷 배급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영화제작 방향도 변했다.

도시의 젊은 중산층 사이에선 마살라영화의 인기가 시들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1990년대 이후 경제발전과 함께 성장해 서구문화에 익숙한 세대다. 구매력이 강한 만큼 영화제작자 입장에선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영화비평가인 바와나 소마야는 “(중산층의 부상으로) 스토리나 윤리성을 보다 중시하고 여성·빈곤과 같은 사회문제를 조명한 작품이 늘고 있다”고 아사히와 인터뷰에서 지적했다.

3시간 가깝던 러닝타임도 줄어
해외로 나간 3000만 명의 인도인도 무시하기 어려운 시장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미국과 영국에 사는데, 영화표와 DVD 단가가 높아 수익성이 좋기 때문이다. 제작자들은 이런 시장을 의식해 3시간 정도로 긴 러닝타임도 점점 줄이고 있다.


수출도 변수다.

남아시아 주변국이나 중동·동남아시아는 물론 접경 분쟁국인 파키스탄과 중국도 인도 영화를 즐기기 시작했다. 중국의 경우 2017년 1편 수입에 그친 데 반해 지난해에는 10편으로 급증했다. 제작자들 사이에선 외국인이 보기에 위화감이 드는 요소를 줄여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