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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뒤틀린 현대사 증언하는 ‘연희동 전두환 자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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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쿠데타 기획 당시 하나회 후배 포섭 장소

1988년 11월 백담사 가기 전 사과성명 발표

연희동 집 앞 골목은 5·18 유족들 항의 단골공간

“어두운 역사 기억 위해 보존 필요성 논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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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참모총장을 연행해 조사를 해야겠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의 수사를 맡은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1979년 12월9일 서울 연희동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최세창 제3공수여단장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날은 일요일이었다. 전두환은 최세창에게 “12월12일 점프복(공수부대 강하복)을 입고 저녁 6시까지 (경복궁 안) 30경비단으로 오라”고 한다. 대통령 재가도 받지 않고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해 불법 12·12쿠데타(군사반란)를 일으키기 사흘 전의 일이다. 육사 13기 후배로 제1공수여단에서 전두환과 함께 근무한 최세창은 그의 말에 “네, 알았습니다”라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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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집은 현대사의 중요한 역사적 공간이다. 전두환은 쿠데타를 치밀하게 준비하는 과정에서 연희동 집을 활용했다. 전두환은 같은 날 박준병 20사단장도 연희동으로 초대해 시국 이야기를 나눴다. 사흘 앞선 12월6일에는 육사 11기 동기생인 제7훈련단장 백운택과 육사 12기 장기오를 각각 자신의 집으로 불러 쿠데타 동참을 약속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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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사령부가 1982년 5월 펴낸 <제5공화국전사>를 보면, 전씨는 군부 내 사조직이던 ‘하나회’ 회원 가운데서도 특전부대 출신들을 1순위로 쿠데타에 참여하도록 포섭했다. 전씨는 제1공수특전여단장을 지내는 등 특전부대 창설자로 꼽힌다. 전씨는 자신의 집 등에서 만난 장성 9명에게 “12월12일 오후 6시30분 경복궁 안 수경사 30경비단장실로 오라”고 ‘초청’한다. 이 모임은 그들 사이에서 ‘생일집 잔치’라는 은어로 불렸다. 이 모임이 “12·12사태의 발단이요, 성공의 기반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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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쿠데타뿐만 아니라 연희동 전씨 집은 현대사의 주요 무대였다. 1988년 11월23일 전씨는 자신의 집 응접실에서 재산헌납 대국민 사과문을 낸 뒤 강원도 백담사로 향했다. 1995년 12월2일 내란죄 혐의로 검찰 출두 통보를 받자, 그는 연희동 집 앞에서 “검찰 수사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골목길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5·18민주화운동 유족들이 5·18 학살에 항의하기 위해 자주 찾은 곳도 연희동 집이다.

이 집은 전씨의 미납 추징금 환수를 위해 공매에 부쳐진 뒤 지난 18~20일 진행된 6차 공매에서 초기 감정가의 반값인 51억3700만원에 낙찰됐다. 한편에서는 전씨의 집을 어두운 과거를 증언하는 공간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전씨의 연희동 집이 쿠데타와 학살이라는 오욕의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으로 보존할 필요가 있는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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