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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세계최강` 美 해군의 숨기고 싶은 흑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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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고전 이란항공 655편 에어버스 A300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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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파일럿 도전기-98] 인생은 때로는 공평하지 않아 보인다.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제3자의 어이없는 실수로 인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그냥 '운이 없었다'고 단순히 말하기엔 당사자나 유족 입장에서는 그 슬픔의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제3자가 평소 도저히 실수할 것 같지 않아 보였던 완벽한 사람이었다면? 그 충격이 더할 것이다. 자타공인 '세계 최강' 미군의 흑역사이자 지금까지도 부끄러워하는 '이란항공 655편 격추 사건'이 바로 그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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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 이지스함인 미합중국 해군의 ‘USS 빈센스 함(USS Vincennes, CG-49)`이 샌디에고 항구로 들어오고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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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1988년 7월 3일
원인: 미군함의 오인으로 인한 민항기 격추
희생자 : 290명(생존자 없음)

◆어느날 갑자기 상공에서 사라지다

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의 막바지였던 시절,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이란과 이라크 양측에서 무장 선박을 동원해 민간 상선을 무차별 공격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고, 미 해군은 공해상에서 이들의 적대 활동을 감시하고 필요한 경우 무력응징을 위해 함대를 파견해 초계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란 해군에서 나온 무장선박들이 해협을 배회하고 있었다. 당시 초계 활동 중이던 미 해군의 'USS 빈센스함(USS Vincennes·CG-49)'이 헬리콥터를 내보내 이들을 내쫓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이 헬리콥터에 선제공격을 가했고 빈센스함에서도 즉시 함포 사격을 가하면서 양측이 교전을 벌이게 됐다.

도망가는 이란 무장 선박을 추격하고 있던 빈센스함은 순양함을 향해 접근 중이던 이란 공군의 F-14로 보이는 미확인 물체를 포착하게 된다. 초긴장 상태에서 빈센스함은 이 물체에 경고를 하였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고, 오히려 군함에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비쳤다.

결국 빈센트함은 대공미사일을 발사했고, 미사일을 맞은 미확인 물체는 상공에서 폭발한 채 바로 사라졌다. 그러나 이 물체는 알고보니 테헤란공항을 떠나 두바이공항으로 향하던 이란항공 655편 A300 여객기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탑승객은 승무원을 포함해 290명, 전원 비명횡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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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 빈센스함이 미사일 발사 훈련을 시행하고 있다. 이 훈련에 쓰인 같은 미사일이 1년뒤 이란항공 655편 격추에 사용됐다. /사진=위키피디아


◆미군 "이란 F-14인 줄 알았는데…"

사건의 원인을 따지고 보면 사실상 미군함이 자초한 일이었다. 사고 리포트를 자세히 읽다보면 '세계 최고 미군이 정말 이랬다고?'란 의문이 절로 나올 정도다. 많은 실수와 오판이 겹치고 겹쳐 일어난 인재였는데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지목된다.

처음 이 군함이 공항에서 막 이륙한 미확인 이란항공 655편을 탐지했을 때, 민간 항공기인지 군용기인지 확인하기 위해 함내에 비치되어 있던 민항기 스케줄을 체크했다. 하지만 마침 이 항공기는 이륙이 지연돼 예정보다 30분 늦게 출발했고, 공식 스케줄에 없으니 저 비행기는 민항기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지휘부는 긴급 회선을 통해 해당 항공기와 교신을 시도했다.

문제는 군함에서 보낸 교신에 자신들이 교신하려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고, 보내는 정보마저도 완전히 엉터리 값을 불러줘 당시 영공을 지나던 모든 항공기가 이를 인지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10번의 경고 중에서 7번은 민간 항공기가 수신할 수 없는 군용 교신 채널을 사용했다.

둘째는 피아식별 신호 인지 오류로, 일반적으로 비행기는 피아식별 신호를 발신하면서 운행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해당 승조원이 몇 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면서 미 해군은 이란항공 655편의 피아식별 신호 대신 이란 전투기인 F-14의 신호를 읽어 버리는 실수를 또 저지른다.

셋째가 가장 어이가 없는데, 보통 전투기가 배를 공격할 때는 높은 고도에서 고도를 낮추고 미사일을 발사한 후 다시 고도를 높인다. 그래야 배에서 요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오판으로 인해 위기감의 늪에 빠진 군함 지휘부가 레이더가 보내는 정보를 약속이나 한 듯이 정반대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당시 군함 레이더실에서는 항공기의 고도가 낮아지면서 접근하고 있다고 보고를 했고, 이를 기반으로 적기라고 최종 판단한 군함에서 결국 미사일을 쏴 격추시켰는데,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당시 비행기의 순항 고도는 낮아지기는커녕 완만하게 상승하고 있었고 레이더도 이를 정확하게 보여줬다는 점이다.

결국 적기가 본인들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승조원들이 모두 한순간에 '집단최면'에 걸린 만화 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 것이다(이를 심리학에서는 '시나리오 수행' 현상이라고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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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스함의 컴뱃 인포메이션 센터(combat information center)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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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 기술을 탑재했건만

군함이 민항기를 격추시킨 이 초유의 사태에 대해, 당시 미국의 대처는 어땠을까. 1988년 이후 미국 내에서 군사 재판 및 자체적인 진상 조사가 이뤄졌으나 미 정부는 당시 빈센스의 함장은 물론 승조원 중 누구에게도 책임이 없다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 심지어 함장은 공로 훈장까지 받았다.

이 과정에서 피해 당사국인 이란이 엄청나게 반발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나중에 미국도 본인들 잘못으로 인해 민간인이 무더기로 죽었다는 걸 알고나서 태도를 바꾸고 머쓱해하거나 어이없어 하는 여론으로 돌아서긴 했지만 이미 그들의 마음을 돌려놓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외교 분쟁으로까지 번진 이 문제는 1996년 국제사법재판소까지 올라갔고, 결국 미국은 1억3100만달러를 보상금으로 지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미국 정부는 유족들에게 사과가 아닌 '깊은 유감'의 뜻을 전달해 논란이 증폭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란 정부 또한 이 사건을 정치적 목적으로 반미선전에 계속 활용하면서 결국 애꿎은 사람만 죽은 불행한 사건이 됐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은 최첨단 기술로 중무장한 이지스함이라고 해도 결국 움직이는 주체는 인간이고, 인간의 실수와 갑작스러운 상황 전개로 인해 인간이 혼란에 빠지면 끔찍한 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는 좋은 예시로 꼽히면서 현재도 항공학, 심리학, 군사학 등에서 다양한 케이스 스터디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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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매체에서 보도한 이란항공655편 격추 당시의 묘사. 미사일에 맞은 A300 민항기는 말 그대로 공중에서 폭파해서 산산조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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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ying J/ john.won3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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