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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서 더 뜨거운 힙합 듀오 “획일화된 K팝 덕에 눈에 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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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X의 ‘랭귀지’ 올해의 힙합 앨범 선정

피치포크서 한국 최고 평점 7.5점 기록

“뒤늦은 관심 감사하지만 섭섭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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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듀오 XXX의 프랭크와 김심야. 이들은 "아직 덜 유명하다. 마스크 없이도 편하게 너무 잘 돌아다닌다"며 "요즘 마스크를 쓰는 이유는 미세먼지 때문"이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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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쇼미더머니’ 말고 다른 힙합은 없는 걸까. 2012년 첫선을 보인 이 TV 프로가 올여름 여덟 번째 시즌을 맞는 동안, 힙합은 음원 차트 줄 세우기가 가능한 주류 장르가 됐다. 하지만 ‘쇼미’에 얼굴을 비치지 않은 팀은 더더욱 찾아 듣기 힘든 구조가 됐기 때문.

20일 열린 한국 힙합 어워즈에서 ‘올해의 힙합 앨범’으로 XXX의 ‘랭귀지(LANGUAGE)’가 선정된 것은 그래서 더욱 뜻깊다. ‘쇼미’가 시작한 2012년 힙합 사이트에서 만난 래퍼 김심야(24)와 프로듀서 프랭크(26)가 자력으로 주류의 반열에 오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힙합 듀오 XXX의 진가를 먼저 알아본 것은 미국이다. 미국 음악 웹진 ‘피치포크’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첫 정규 앨범 ‘랭귀지’에 평점 7.3점을, 지난 2월 발표한 후속작 ‘세컨드 랭귀지(SECOND LANGUAGE)’에 7.5점을 부여했다. 2 CD로 구성된 더블 앨범이 한국 음반 중 최고점을 기록 및 경신한 것. 뉴욕타임스와 빌보드에서도 잇따라 소개했다. “한국의 전형적이고 화려한 랩 음악의 대안”(피치포크)이라거나 “K팝의 기존 공식과 정반대에 위치한 음악”(빌보드) 등 전형성을 벗어난 점을 높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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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미국 텍사스에서 열린 SXSW에서 공연하고 있는 XXX.. [사진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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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히 이들을 찾는 곳도 많아졌다. 지난 13일에는 아이콘ㆍ청하 등과 함께 미국 텍사스에서 열린 음악·영상 축제 SXSW 무대에 올랐다. 2017년에 이어 두 번째다. 공연을 마치고 돌아와 서울 서소문에서 만난 XXX는 이러한 관심에 대해 “기쁘지만 섭섭함이 더 크다”고 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밥 먹으며 평생 살았잖아요.”(프랭크) 중국ㆍ호주ㆍ미국 등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김심야는 “우리가 한국시장을 원했던 만큼 한국이 우리 음악을 원하지 않았는데 한국 타이틀을 걸고 해외에 나가는 게 불공평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앞서 구원찬과 셋이서 만든 R&B그룹 돕맨션으로 한 차례 실패를 경험한 이들은 “모든 게 역설적”이라고 했다. 애써 만든 앨범이 사장되는 게 아까워 랩 비중을 높여 만든 믹스테이프 ‘XX’가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의 소속사 BANA를 만나게 됐고, 한국에서 버려진 자식 같은 앨범이 해외에서 주목받으면서 다시 역수입됐다는 것이다.

“아이돌이 한국 음악 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상황이 싫지만,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눈에 띌 수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모든 장르를 고르게 조명하는 시장이라면 안 보였을 수도 있겠죠. 앨범도 그래요. 저는 항상 음악이 대화라고 생각하는데 미니앨범 ‘교미’를 냈을 때는 영어가 너무 많아 못 알아듣겠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못 알아듣는 말을 하는 것도 대화의 방식인데 말이죠. 그래서 한국어를 더 많이 썼더니 외국에서 더 잘 돼요. 신기하죠.”(김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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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힙합 뮤직 어워즈에 앞서 만난 XXX에게 수상 가능성을 묻자 "당연히 받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들은 "향후 5년간 '랭귀지'를 뛰어넘을 힙합 앨범은 안 나올 것"이라며 자신감을 표현했다. [사진 B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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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만든 정규앨범 ‘랭귀지’는 소통의 기반이 됐다. 두 장의 CD에 12곡씩 총 24곡을 채워 넣은 이 앨범에는 그간 느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흥건하게 묻어난다. “내 건 임마 아무래도 개같지/ 먹힐 듯 안 먹히는 뽐새는 애물단지”(‘수작’)라거나 “뭣같은 한국은 내 음악을 싫어해”(‘간주곡’)라고 외친 데 이어 “We do not speak the same language(우린 같은 언어를 말하지 않는다ㆍ‘랭귀지’)라고 직접적으로 선을 그어도 더 많은 이들이 응답했다. 가시 돋친 가사가 귀에 꽂히는 것이 되려 속 시원하다는 것. 역설의 연속이다.

트랩부터 EDMㆍ테크노 등 다양한 장르를 품은 비트도 XXX만의 매력이다. 비트만으로도 랩을 하는 느낌이랄까. 전형적이지 않은 구성도 돋보인다. 6분 38초에 달하는 ‘간주곡’에서 가사는 5분이 지나야 등장할 정도. ‘비트의 장인’이라 불리는 미국 래퍼 제이 딜라에 빠져 음악을 시작했다는 프랭크는 “힙합이라는 게 원래 다른 음악을 샘플링하며 탄생한 만큼 장르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 같다”며 “컬렉터 기질이 있어 평소에도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듣는 편”이라고 말했다.

앨범 발매 당시 이광호 디자이너와 협업한 전시도 호평을 받았다. ‘세컨드 랭귀지’ 수록곡 10곡과 동일한 제목을 가진 디자인 오브제 10점을 만들어 서울 원앤제이갤러리에서 2주간 전시했다.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의자와 스툴로 만들어졌다. 프랭크는 “귀로 듣는 음악이 시각화된다는 게 흥미로웠다.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즉 물성을 지닌 대상이 된다는 것도 신기했다”며 “앞으로 영화 음악이나 다른 장르와 협업에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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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Bougie)' 가사처럼 "높게 보다는 멀리" 가고 싶냐고 묻자 "지그재그로 가고 싶다"고 답이 돌아왔다. [사진 B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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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XXX를 더 자주 볼 수 있을까.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XXX 작업을 할 때는 화에 취해 있었어요. 곡마다 분노가 가득한데 그 가사로 공연을 하면 감정 소모가 너무 심해요. 그 시절 힘들었던 부분이 해결됐으면 추억의 노래가 되겠지만 여전히 진행형이잖아요. 엄마랑 싸우고 일기장에 엄마 욕 잔뜩 썼는데 2년 있다가 다시 읊어야 하는 기분이랄까. 일기장을 찢어버리고 싶겠죠.”(김심야) 프랭크 역시 “XXX 앨범은 아무 때나 만날 수 없는 한정판 같은 느낌이 됐으면 좋겠다. 구린 게 하나도 없는 가장 멋진 캐릭터처럼”이라고 덧붙였다.

하여 올해는 각자 솔로 작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김심야는 “SXSW에서 아이돌 무대에 대한 압도적인 반응을 보고 나니 좋은 음악에 대한 고민이 더 많아졌다. 그간 전쟁터에서 전사할 각오로 계속 싸워왔는데 이제 좀 부르기 편안한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프랭크는 “극과 극은 통한다고 화가 극으로 치달았을 때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며 “비단 남녀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앨범을 만들고 싶다. 랩은 절대 안 들어갈 것”이라고 귀띔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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