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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모의 세계의 골목] 발밑으로 까칠한 석회층, 종아리엔 따뜻한 온천수가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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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4천년의 시간이 만들어 낸 석회 욕조, 터키 파 묵칼레
석회층 한 개가 한 개의 욕조…종아리에 느껴지는 따스한 온천수
고대 귀족들의 온천 휴양지, 질병 치료에도 효과적
두 번의 대지진 이후 발굴된 고대도시, 도시 곳곳이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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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남쪽 석회층 온천지대로 유명한 파묵칼레가 있다./사진 변종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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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묵칼레는 터키의 남쪽에 있는 석회층의 온천지대다. 파묵칼레는 ‘목화의 성’을 뜻한다. 목화의 성이라니. 이 얼마나 부드럽고 따뜻한가. 작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훈훈한 온기는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석회층의 온천수 때문이겠지만, 마을 뒤로 이어진 새하얀 언덕을 바라보기만 해도 이유 없이 따뜻한 감정이 생기고 만다.

◇ 석회층마다 온천수가 흘러넘치면 세상의 모든 노을이 그 속으로 진다

마을광장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석회층(Travertine Terraces)을 만나게 된다. 티켓을 내자마자 신발부터 벗는다. 석회층은 탄산염이 공기와 접촉하면서 칼슘탄산염으로 침전되고, 세월의 힘으로 단단해져 눈부시게 빛이 난다. 매년 1mm씩 커지는 석회층은 1만4천년을 넘는 시간을 언덕으로 만들었다. 발밑으로 까칠한 석회층이 닿고, 종아리엔 따뜻한 온천수가 스친다. 언덕 아래 멀리 지평선으로 이어지는 소담스러운 풍경까지. 여기는 과연 신들의 휴식처가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석회층 보호를 위해 일부 구역만 들어갈 수 있지만, 옛날에는 석회층 하나가 한 개의 욕조였다. 아무리 좋은 호텔의 욕조라도 그런 경관은 연출할 수 없으리라. 많은 곳에 석회층이 형성되어 있지만, 이처럼 온천수가 고이는 곳은 드물다고 한다. 사진에서 익히 봐왔던 그 풍경이지만 감탄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잘 찍은 사진이라도 따뜻한 온천이 발밑을 간지럽히는 촉각까진 담아낼 수 없다. 그래서 침묵하고 걷거나 온천물에 발을 담그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석회층을 감상하는데 온 시간을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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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회층 하나는 한 개의 욕조나 다름없다. 하얀 물 빛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에메랄드 빛 바다에서 붉은 장미로 변한다./사진 변종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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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만난 석회층은 그 빛이 하늘을 그대로 담아내 푸르고, 정오의 물빛은 하늘이 더욱 깊어져 제각기 석회층의 방향에 따라 다양한 바다가 펼쳐진다. 석회층에서 바라보는 에메랄드빛 열대의 바다를 만나는 기분이다. 어떤 곳은 얕고, 어떤 곳은 깊고 넓으며 둥글게 휘어지다가 그 끝이 매끄럽거나 거칠게 도드라져 꽃송이처럼 놓여있기도 했다. 그러다 해가 기울면 온통 노을을 받아들인 석회층이 붉게 번진다.

새하얀 목화꽃이 붉은 장미가 되는 순간이겠다. 주홍빛으로 시작해서 붉게 끓다가 보랏빛으로 가라앉는 하얀 석회의 연못들. 사람들이 가장 열광하는 시간이다. 석회층마다 온천수가 흘러넘치면 세상의 모든 노을이 그 속으로 진다. 직접 발을 담그고도 믿지 못할 이 풍경들엔 인간의 수고가 1mm도 개입되지 않았다.

◇ 로마극장과 아폴론 신전…도시 전체가 고대 유적지

사실 파묵칼레는 히에라폴리스(Hierapolis)를 빼고는 아무것도 이야기할 수 없다. 석회층 정상에서부터 평원으로 이어지는 곳에 전설이 아닌 과거의 도시가 현재에 우뚝 서 있다. 기원전 2세기부터 자리했던 그때의 파묵칼레는 페르가몬 왕국의 첫 도시 히에라폴리스, 즉 성스러운 도시로 통했다.

파묵칼레란 이름은 셀주크 제국의 지배 당시에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진다. 하지만 1세기경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도시가 재건립되었고, 이후 귀족들과 고위층들의 온천 휴양지로 각광받았다. 질병 치료의 효과가 있다는 이유로 그 위상이 더없이 높았다. 그렇게 오래도록 번영하던 히에라폴리스는 1354년 다시 대지진으로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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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4천년이 넘는 시간이 만들어낸 새하얀 석회층 언덕./사진 변종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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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모습은 독일의 고고학계에서 1887년에 발굴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1988년 유네스코 자연유산 및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덕분에 과거의 유적들이 새하얀 목화의 성 위에 아무렇지 않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사람들은 새하얀 석회석에 갇힌 푸른 물에 반해 거대한 고대 유적을 잊곤 한다. 석회층에서 따뜻하게 담근 발로 과거를 걷다 보면 저절로 만나게 되는 시간의 흔적들. 개인적으로 유적지에서 가장 존재감에 크게 다가왔던 곳은 원형으로 된 로마극장이었다. 무대를 향해 아래로 이어지는 객석에서 바라보는 파묵칼레의 전원은 로마시대처럼 아련했다.

또 다양한 형태의 석관들이 즐비한 네크로폴리스(Necropolis). 유적지의 북문에서부터 시작되는 네크로폴리스는 ‘죽은 자의 도시’라는 뜻이다. 히에라폴리스 사람들이 묻힌 엄청난 규모의 공동묘지로 서아시아에서 가장 큰 묘지로 알려져 있으며, 아직도 1200기가 남아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온천에 온 사람들이 생을 마감한 곳. 그리고 이어지는 로마 욕탕(Roma Bath)과 거대한 기둥들이 도열해 있는 열주로와 아고라를 지나노라면, 점점 깊이 과거로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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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곳곳에서 고대 유적을 발견할 수 있다. 사진은 로마극장./사진 변종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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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신들의 휴양지처럼 믿고 여기던 이곳에 그날과 같이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입장료를 내면 이용할 수 있는 유적 온천이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기둥이나 유적들이 온천탕 바닥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사람들은 수영하며 고대의 시간 위를 떠다닌다. 그 모습을 보면 시간을 해체시키는 듯 묘한 기분이 들곤 한다. 이 밖에도 아폴론 신전을 비롯해 방대한 유적들이 그 언덕에서 빛난다. 이처럼 작은 마을에 새하얗게 빛나는 석회층과 유적들이 찬란한 파묵칼레는 진정 신의 은총으로 생겨난 곳이 아닐까?

PS : 파묵칼레라는 작은 마을 큰 볼거리

파묵칼레는 워낙 작은 마을이라 교통편이 좋지 않다. 비행기나 기차, 버스 모두 주변 도시를 이용해야 한다. 가장 가까운 데니즐리에서 돌무쉬(미니버스)를 타고 가는 게 일반적이다.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이라면 데니즐리 짐 보관소에 짐을 맡겨두고 파묵칼레를 저녁까지 둘러본 후 다음 여행지로 가는 방법도 있다. 마을 광장에서 가까운 거리에 석회층 입구가 있다. 석회층을 지나서 히에라폴리스 유적군을 둘러보고 난 다음 다시 석회층으로 내려오는 것이 기본 루트지만, 히에라폴리스를 자세히 보려면 시간과 체력이 생각 이상으로 필요하다. 여유가 된다면 유적지는 따로 시간을 내어 보길 바란다. 석회층을 갈 때는 신발을 담을 비닐주머니는 꼭 챙기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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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종모는 광고대행사 아트디렉터였다가 오래 여행자로 살고 있다. 지금도 여행자이며 미래에도 여행자일 것이다. 누구나 태어나서 한 번은 떠나게 될 것이니 우리는 모두 여행자인 셈이므로. 배부르지 않아도 행복했던 날들을 기억한다. 길 위에서 나누었던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들을 생각하며, 그날처럼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짝사랑도 병이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등을 썼다.

[변종모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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