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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벤처기업의 '천사'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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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울&종로 창업카페'에 치과 의사인 최성호씨가 결성한 'A.I.(Accredited Investors) 엔젤클럽' 회원 2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이곳에서 신생 스타트업 세 곳의 대표를 초청해 기업설명회(IR)를 열었다. 이날은 식품 업체 '근본식품', 3D 프린터 소재 제조 업체 '그래피', 에어컨 설치 업체 중개 플랫폼인 '미래를 여는 사람들'이 시험대에 올랐다. 모임은 스타트업 대표들의 살아온 행적 등 개인적인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저녁 식사와 2차 호프집까지 이어졌다. 최성호 대표는 "스타트업 대표의 인성이나 근성 등을 알아봐야 하기 때문에 저녁 자리도 투자 결정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엔젤투자금, 2001년 벤처 붐 넘어서

'A.I. 엔젤클럽'처럼 신생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에 십시일반 돈을 대는 엔젤투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엔젤투자란 창업 초기 단계 기업에 필요한 자금을 제공하고, 경영 조언을 해 기업 가치를 높인 후 인수·합병(M&A)이나 기업공개(IPO) 등으로 자금을 회수하는 투자 방식을 말한다. 1920년 미국 브로드웨이의 영세 오페라단들이 후원자들을 '엔젤(천사)'이라 부른 데서 명칭이 유래했다.

엔젤투자는 IT 벤처 붐이 한창이던 2001년 3409억원까지 늘었지만 거품이 꺼지면서 2004년 463억원으로 급락했고, 이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정부가 세제 혜택을 본격화한 2014년(959억원)부터 늘기 시작해 2017년 3035억원을 기록했고, 지난해엔 4394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정부는 2022년 엔젤투자액이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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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엔젤투자에 관심이 높아진 가장 큰 이유는 높은 수익률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예컨대 제약 업계에선 윤웅섭 일동제약 대표의 엔젤투자 대박이 화제다. 윤 대표는 지난 2014년 바이오 벤처인 샐리버리에 5억원을 투자했다. 샐리버리가 지난해 11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하면서 윤 대표는 200억원이 넘는 투자 수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급 운동선수·연예인들도 엔젤투자에 동참하는 추세다. 축구 선수 이동국은 지난해 교육 전문 스타트업인 아자스쿨에 수억원을 투자했으며, 배우 배용준은 2017년 가상현실(VR) 기술 스타트업인 폴라리언트에 거액의 투자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건축학개론'에 출연한 배우 이제훈 역시 신선식품 배송 업체 마켓컬리에 투자금을 댔다.

세제 혜택 늘리자 엔젤투자 급증세

정부가 엔젤투자에 대해 세제 혜택을 늘리고 있는 것도 엔젤투자가 늘어나는 이유다. 정부는 작년부터 투자금 3000만원까지 100% 소득공제를 해주고, 3000만원 초과~5000만원 미만 투자엔 70%를 공제해주는 것으로 공제 폭을 늘렸다. 기존엔 투자금 1500만원까지 100% 소득공제, 1500만원 초과~5000만원 미만은 50%를 소득공제 받을 수 있었다.

세제 혜택이 확대되면서 엔젤투자에 나선 사람은 지난해 9915명으로 전년(6752명)보다 46.8% 증가했다. 2014년 1129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4년 만에 8.8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엔젤투자를 받는 주요 업종은 제약, 바이오 같은 신성장 업종이다. 지난해의 경우 전체 투자액의 절반(49.8%) 정도가 바이오·의료 분야 스타트업에 투자됐다. 이어서 전기·기계·장비 분야 10.6%, ICT(정보통신기술) 서비스 10.2%, ICT 제조 9.7% 순으로 나타났다.

대박 꿈꾸다 쪽박 찰 수도

엔젤투자는 개인이 가능성 있는 기업을 골라내 직접 투자하는 방법과 개인투자조합(펀드)에 가입하는 간접 투자 방식이 있다. 직접 투자자들은 ‘A.I. 엔젤클럽’과 같은 동호회 형태의 엔젤 클럽을 조직해 옥석 고르기에 나선다. 혼자 움직일 때보다 유망 기업을 발굴하기 쉽고, 회원 간 네트워크를 활용해 투자의 안정성과 전문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엔젤투자협회에 공식 등록된 엔젤 클럽 수는 227개에 달한다. 공개된 엔젤 클럽일 경우 개인 투자자가 직접 연락해 심사를 거쳐 가입할 수 있다. 간접투자는 펀드매니저 역할을 하는 업무집행조합원(GP)이 투자 대상 기업들을 선정한 뒤 비공개로 49명 이하의 투자자를 모아 투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직접투자에 비해 개인이 직접 기업 조사를 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간편하지만, 공모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평소 설명회 등에 자주 참여해 인적 네트워크를 다져놔야 한다. 개인투자조합은 지난해에만 302개가 새로 결성돼 현재 총 709개 조합이 활동 중이다. 전문가들은 엔젤투자의 경우 투자 기업 선정에 특별히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인수 한국엔젤투자협회 팀장은 “현란한 말솜씨로 터무니없는 수익률을 제시하는 기업은 거르고, 철저한 조사를 통해 기업의 성장성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엔젤투자

스타트업 기업에 자본을 넣어주고 주식 등으로 보상받는 투자. 창업 초기 어려운 기업을 후원하듯이 돈을 넣는다고 해서 ‘엔젤(천사) 투자’라고 한다.







이준우 기자(rainrac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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