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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세 한국인의 아리아, '오페라 제국' 빈을 휘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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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전속 솔리스트 박종민, '低音황제' 연광철, 한국이 낳은 최고의 스타 테너 이용훈까지

개관 150년 '빈 국립오페라극장'서 이달 주연

개관 150년을 맞은 빈 국립오페라극장은 오페라의 프리미어 리그다. 정상급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성악가·연출가들이 어울려 지상 최고의 오페라를 만든다. 이런 극장에 이달 한국 성악가 셋이 잇달아 주연을 맡았다. 테너 이용훈과 베이스 연광철, 박종민이다.

빈 전속 솔리스트인 박종민(33)이 먼저 테이프를 끊었다. ‘피가로의 결혼’이 초연(1786년)된 모차르트의 도시 빈에서 주인공 피가로로 세 차례 나섰다. 지난 9일 본 박종민의 피가로는 자신만만했다. 약혼녀 수잔나를 넘보는 백작의 계략과 위선을 능숙하게 까발렸다. 서곡이 끝나자마자 수잔나와 부르는 첫 아리아부터 4막 피날레까지 쉴 새 없이 무대를 드나들며 극을 이끌었다. 피가로 하면 떠오르는 1막 후반 아리아 ‘다시는 날지 못하리’도 그의 깊이 있는 소리와 어울리면 고급스러워졌다. 수잔나 역은 몰도바 출신의 늘씬한 소프라노 발렌티나 나포르니타가 맡았다. 백작 구애를 뿌리치며 골탕 먹이는 수잔나에 어울리는 탄력 있는 목소리였다. 오스트리아 지휘자 사샤 괴첼은 오페라에 최적화된 오케스트라를 솜씨 좋게 이끌며 ‘피가로의 결혼’ 원조(元祖) 사운드를 들려줬다. 공연 후 만난 박종민은 “빈 사람들이 너무 잘 아는 피가로를 부른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잘해 봐야 본전이니까”라면서도 뿌듯한 얼굴이었다. 박종민은 오는 10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라 보엠’ 데뷔를 앞두고 있다.

조선일보

빈 국립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주인공 피가로로 나선 박종민(사진 왼쪽). 작년 10월 빈 국립오페라 ‘로엔그린’에 출연한 연광철(사진 가운데). 22일부터 ‘시몬 보카네그라’에 나선다. 마스카니 단막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주인공 투리두로 출연한 이용훈(사진 오른쪽). 메조소프라노 엘리나 가란차와 호흡을 맞췄다. /ⓒWiener Staatsoper GmbH/Michael P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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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46·서울대 교수)은 한국이 낳은 최고 스타 테너다. 뉴욕·파리·런던·뮌헨·빈의 정상급 오페라 극장이 시즌마다 그를 세우려 경쟁한다. 지난 11일 개막한 마스카니 단막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서 이용훈은 사랑에 들뜬 시칠리아 청년 투리두였다. 상대역(산투차)은 2016년 파리 국립오페라에서 함께 이 작품을 한 스타 메조소프라노 엘리나 가란차(43). 프랑스 연출가 장-피에르 폰넬은 옛 애인과의 밀회를 마치고 창문으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는 투리두를 산투차가 숨어서 지켜보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이용훈은 무거운 포도주 통을 메고 다니면서도 아리아를 거뜬하게 소화했다. 결투를 앞두고 죽음을 예감한 듯 부르는 ‘어머니, 포도주가 독하군요’는 처절했고 공연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는 비장미를 더했다. 가란차도 이름값을 했다. 투리두의 외도에 속태우는 아리아 ‘어머니도 아시다시피’는 물론 온몸을 던진 연기로 산투차의 질투와 분노를 전달했다. 느린 템포를 고집한 지휘자 탓에 연주의 밀도가 다소 떨어진 게 옥의 티였다. 이용훈은 올봄과 여름, 뮌헨 극장의 ‘투란도트’ ‘일 타바로’, 취리히 극장 ‘운명의 힘’에 출연한다. 4~5년치 스케줄이 차 있어 국내 오페라 공연은 기약할 수 없다. 23일 빈 국립오페라 홈페이지(www.staatsoperlive.com/ko)에서 실황 중계하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이용훈의 최신 무대를 볼 기회다.

연광철(54)은 22일부터 베르디 ‘시몬 보카네그라’에 주인공 보카네그라와 맞서는 귀족 피에스코로 출연한다. 플라시도 도밍고가 보카네그라를 맡았다. 저음(低音)의 베이스는 주인공 테너·소프라노에 밀려 주목받기 어렵지만 연광철은 다르다. 입을 열기만 하면 공기가 한쪽 방향으로 향하듯 그에게 눈길이 쏠린다. 바그너 성지(聖地) 바이로이트 관객들까지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연광철은 지난달부터 독일 베를린 국립오페라에서 모차르트 ‘마술피리’ 자라스트로 역으로 출연한 뒤 이번 주 빈으로 직행했다. 짧은 일정 탓에 그의 피에스코를 볼 수 없는 게 가장 아쉬웠다.

[빈(오스트리아)=김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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