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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대통령 '금융혁신' 운 뗐지만...법 못바꾸면 또 '공염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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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리스크 큰 동산대출 꺼려

하반기 국회통과 목표 세웠지만

일괄담보·상환능력평가 등 과제

정치권 공조 이뤄질 지 미지수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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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1일 내놓은 혁신금융 추진방향은 기존 은행들의 여신 시스템을 전면 개편해 창업기업과 중소기업으로 자금이 흘러 들어가도록 하는데 방점이 찍혀 있다. 그동안 부동산 담보와 실적 위주의 대출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지난 2008년 금융위원회가 설립된 이후 기업금융을 주제로 대통령까지 참석한 가운데 대규모 행사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동산 담보대출을 대체할 동산 일괄 담보제 등 이번 대책을 사실상 금융위가 만들었지만 대통령이 직접 관련 내용을 언급한 것은 그만큼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보수적인 금융 관행을 일시에 바꾸기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

실제 금융위가 이번 혁신금융 세부 과제 가운데 핵심으로 꼽는 일괄 동산담보제도의 경우 현행법 개정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위는 부동산담보와 재무제표 위주의 기업 여신시스템을 미래 성장성 중심으로 전면 개편하겠다며 총 3단계 방안을 제시했다. 첫 단계로 올해까지 동산담보법을 개정해 부동산 담보가 없어도 중소기업들이 특허권이 체화된 화장품 제조기계, 화장품 재고, 매출채권 등 동산자산을 일괄담보화 해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어 내년까지 기업 영업력 등 미래 성장성을 파악해 기업을 평가하는 여신시스템을 만들고 2021년까지 기업의 모든 자산과 기술력, 영업력을 종합적으로 따져 대출 승인 여부와 금리를 산정하는 포괄적 상환능력 평가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대책이 현장에 제대로 정착되기까지 여러 난관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게 법 개정이다. 정부가 올해 안에 시행하기로 한 일괄담보제의 경우 동산담보법 주무부처인 법무부의 협조 없이는 한 발도 나가기 어렵다. 현행 법에는 동산 담보는 기계·재고·채권·지식재산권(IP) 등 각종 동산 자산은 개별적으로만 등기 후 담보 설정이 가능하다. 여러 동산자산을 한 데 모은 집합물을 담보로 묶으려면 동산담보법 상 관련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금융위는 기존의 법인 외에 상호가 등기되지 않은 자영업자에게도 동산담보를 허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마저도 법을 개정해야 한다. 동산 담보의 권리 보호를 위해 동산 담보물의 경매 처분 시 채권자 요구 없이 경매 배당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악의적 훼손·멸실 등의 처벌 근거를 마련하는 작업도 마찬가지다.

이날 문 대통령이 ‘은행 대출의 혁신’, ‘아이디어와 기술평가로 대출 받은 금융’ 등을 언급하며 대책을 마련한 금융위에 힘을 실어줬지만 자칫 법 개정 작업이 삐끗하면 자칫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지점이다.

금융위는 올 상반기까지 법무부와 일괄 담보제 도입을 위한 법 개정을 마무리 짓고 하반기 안에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금융도 중소기업의 혁신 성장을 지원하는 생산적 금융으로 패러다임 전환에 나서야 한다는 대통령의 문제 의식은 좋지만 결국엔 국회의 협조 없이는 현장에서 대책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전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사전 브리핑에서 “동산 자산에 대한 일괄담보제도는 미국 등 금융 선진국에선 이미 시행되고 있지만 우리는 법적 기반이 미흡해 제대로 적용하지 못했다”며 “그동안 법무부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법 개정 작업을 벌여왔고, 앞으로 중소기업들이 부동산 담보 없이도 훨씬 수월하게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이번 대책의 성패가 법 개정에 달려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보수적인 은행권의 영업 행위와도 관련이 깊다는 지적이다. 은행이 기업 여신을 심사할 때 부동산 담보나 최근 3년 간 실적을 주로 보는 건 평가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자본시장에서 이뤄지는 투자는 모험자본 성격이 커 투자 실패가 용인되지만, 은행권 대출은 한번 잘 못 나가면 은행의 건전성과도 직결된다. 예금자 보호가 최우선인 은행 입장에선 기업 대출 심사가 보수적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더욱이 동산 자산의 경우 가치 평가 전문 인력이 적고 평가 시스템을 도입한 기간도 짧아 대출 리스크를 관리하기 어렵다. 생산 설비와 같은 유형 동산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특허권이나 매출채권, 영업권 등 무형의 동산은 권리 보호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아 부실 위험도 그만큼 높다. 법으로 명확히 규정하지 않으면 보수적인 은행들이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시중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부동산 담보대출을 줄이고 기업들에게 동산 대출을 늘리라는 정부의 취지엔 동감한다”면서도 “하지만 정부의 가이드 라인에 따라 적극적으로 동산 대출을 확대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져줄 사람이 없다는 게 제도 안착의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금융권의 관계자는 “신용정보회사들이 산정하는 개인신용등급이 은행권의 신용대출 심사시 주요 지표로 활용되고 있지만 지금의 모습처럼 안착되는데 20년이 걸렸다”면서 “동산담보대출도 서둘지 말고 중장기적인 과제로 한 단계씩 밟아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서민우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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