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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재건축 파열음…조합장은 `부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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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서울 정비사업지 곳곳에서 `조합장 공석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작년 말 조합장이 해임된 이촌동 한강맨션 단지에 조합장 보궐 선임 임시총회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추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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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재건축을 겨냥해 연이어 내놓은 규제와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가 겹치며 서울 내 정비사업 곳곳에서 '조합장 공석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임기 종료 후 주민 갈등으로 후임을 뽑지 못하거나 비리 등 이유로 조합장이 해임된 정비사업 단지 안팎에서는 '재건축 좌초'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다.

21일 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강남과 강북의 알짜 재건축 단지뿐만 아니라 재개발 사업에서도 조합장 부재로 사업이 난항을 겪는 곳이 늘고 있다.

강남권 재건축 단지로 1490가구 규모의 대단지인 '반포주공1단지(3주구)'가 대표적이다. 해당 단지는 공사비 부담 등을 놓고 조합과 시공사(HDC현대산업개발) 간 갈등 끝에 총회를 통해 시공사 자격을 박탈시켰다. 다만 이 과정에서 시공사 자격 박탈에 찬성한 조합 측과 반조합파 주민들의 내부 갈등으로 비화되며 총회 유효성을 놓고 법적 공방을 펼치는 중이다. 이러던 중 반조합파 주민들은 최홍기 조합장을 해임하기 위한 총회 개최를 준비했으나 결국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

첨예한 대립이 이어진 가운데 지난 2월 25일부로 조합장, 이사, 감사 등 임원진의 임기가 만료되면서 양측 간 갈등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통상 임기 만료 전 신임 조합장을 선출하거나 임기 연장을 위한 총회를 열어야 하지만 내홍이 짙어지며 이러한 절차를 밟지 못한 것. 이로 인해 최 조합장은 현재 조합장 지위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조합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업무만 수행할 수 있는 상태다.

일단 최 조합장 측은 현직을 유지한 채 선거관리위원회에 신임 조합장 선출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반조합 측은 조합장의 선사퇴를 요구하며 맞서는 중이다.

조합장 측은 "반조합 측 인사로 구성된 선관위에서 최 조합장을 우선 사퇴시켜 반조합 측 인사를 직무대행으로 내세운 뒤 향후 신임 조합장 선거를 유리한 구도로 끌어가려 한다"며 "새 조합장이 선출되면 최 조합장은 자동으로 지위를 상실함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미루는 것에는 다른 의도가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반면 반조합 측은 최 조합장이 직을 유지하면서 재건축 업무를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조합 측 관계자는 "조합장이 무보수로 근무하겠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명분도 이유도 없다"며 "임기가 다했는데도 이유 없이 조합장직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은 사실상 새로운 조합장 선출을 막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신임 조합장 선출을 놓고 주민들 간 힘겨루기가 한 달 이상 이어지면서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최근 서울 부동산 가격이 몇 달째 빠지는 가운데 조합장 공석으로 사실상 재건축이 전면 중단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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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 유기나 업무상 비리 등을 이유 삼아 조합장이 해임된 정비사업도 늘어나고 있다. 강북권 대표 재건축 단지인 용산구 이촌동 '한강맨션'(660가구)은 작년 말 주민총회를 개최해 조합장을 해임시켰다. 조합장으로서 업무를 방치하고 재건축 추진 과정에서 문제점들을 발생시켰다는 것이 이유다. 이로 인해 재건축 절차를 꾸준히 밟아 오던 해당 단지 재건축은 완전히 정지됐다. 3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해임된 조합장과 해임 추진 조합원 간 소송이 이어지며 공백이 장기화됐다. 한강맨션은 갈등 끝에 오는 30일 조합장 등 임원 보궐선임을 위한 임시총회를 예고했지만 여전히 조합 측과 반조합 측 간 갈등의 불씨가 남은 상태다.

작년에 분양해 2021년 입주가 예정된 마포구 '마포프레스티지자이'(1694가구) 역시 현재 조합장이 공석 상태다. 해당 단지는 기존 조합장의 상가 분양 관련 비리 등을 이유로 작년 말 조합장 해임 총회를 개최해 이사 1인을 제외한 임원진 전원을 해임시켰다. 해당 단지 조합은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하며 시공사 현장을 챙기고 건설 현장 이슈 등을 직접 대응 중이다. 다만 옛 조합 측 조합원들은 현 직무대행에 대한 직무집행정지가처분 신청을 하는 등 여전히 법정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서울 재건축 단지 곳곳에서 조합장 공백 사태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최근 재건축의 사업성이 악화됐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수억 원의 시세차익을 기대했던 정비사업 투자자들이 최근 어려워진 부동산 경기와 재건축을 억제하는 정부 정책으로 인해 초조해진 것이다. 기존 원주민 등 무리해 재건축을 추진하기보다 여유를 갖자는 측과 하루라도 빨리 재건축이 이뤄져 수익을 얻으려는 측의 입장 차가 더욱 커졌다는 의미다. 백준 J&K도시정비 대표는 "재건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장 전망이 지배적인 만큼 이러한 조합장 공석 문제는 앞으로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추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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