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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20대 초반 바쳤는데…” 국가는 ‘특급 전사’를 배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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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병 복무하다 검정고시 치르고 부사관 생활

지병 얻었지만 제때 수술 못 받고 안정도 못 취해

결국 발병 8개월 만에 불명예 전역 앞둔 상태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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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무개(23)씨는 육군에 입대해 군 생활을 하는 동안 내내 ‘에이스’로 불렸다. 체력이 좋아 항상 ‘특급 전사’였고 표창도 여러 차례 받았다. 부드럽고 성실한 성격도 군 생활에 적합하다고들 했다. 선임들은 그에게 ‘부사관에 지원하라’고 버릇처럼 말했다. 표창을 받은 날이면, 그는 들뜬 목소리로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처음엔 직업 군인이 되는 걸 반대했는데 그렇게 좋아하니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지난 18일 경기 남양주에 있는 한 병원 앞에서 만난 조씨의 아버지가 말했다. 조씨의 어머니 김아무개씨는 2014년 9월2일, 지금은 사라진 경기 의정부 306 보충대에 들어가던 아들의 모습을 잊지 못했다. “얼마나 씩씩하게 걸어가던지…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교도소를 보내더라도 그때 군대를 보내면 안 됐는데….” 김씨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조씨는 선임들의 조언대로 부사관이 되기로 결심했다. 중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였던 그는 상병과 병장 시절 짬을 내서 검정고시를 준비했고, 전역을 한달 남기고 합격했다. 그렇게 부사관 지원 자격을 얻어서 육군부사관학교에 입학했고, 2016년 9월 수료하고 하사관으로 복무하게 됐다. “기뻤어요. 아들에게 꿈을 찾아 준 군대에 감사했고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입을 모았다.

그런 조씨가 2년 6개월 만에 ‘불명예 전역’을 앞두고 있다. 사연을 알려면, 지난해 7월로 돌아가야 한다. 하사가 된 뒤 순조롭게 군 생활을 해나가던 조씨는 ‘서혜부탈장’이란 병을 앓게 됐다. 서혜부탈장이란 배 안에 있어야 할 장기가 사타구니 주위를 통해 빠져나오는 병이다.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참는 게 곧 능력이라고 일컬어지는 군에서는 그에게 인내를 강요했다. 2달 정도 진통제를 먹으면서 통증을 참았다. 그러나 통증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국군 고양병원 초음파 검사를 받게 됐다. 하지만 검사 날짜가 임박하자 부대에서는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검사는 다음 주에 받으라”고 말렸다. 조씨는 초음파 검사를 미뤄야 했다.

조씨는 이후 고민 끝에 민간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했다. 고통 속에서도 눈치를 보며 인내해야 했던 군내 분위기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27일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부대의 반응이 황당했다. “수술이 끝난 날, 주임 원사라는 사람이 마취도 깨지 않은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언제 복귀할 거냐’고 묻더라고요. 군 병원에서 수술했다면 얼마나 눈치를 보며 부대 생활을 해야 했을까요.” 어머니 김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수술 후 1∼2달은 휴식 기간이 필요하고 격렬한 운동 및 노동을 삼가야 한다’는 민간병원 담당 주치의의 소견이 있었지만, 조씨는 수술 뒤 2주가 채 안된 날 부대에 복귀해야 했다.

조씨가 복귀한 다음날 군에서는 훈련이 예정되어 있었다. 바로 훈련에 참가한 조씨는 차가운 텐트 속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그렇게 몸조리를 하지 못한 채 한달이란 시간이 지났다. 조씨는 수술 부위 통증을 숨기지 못했다. 결국 지난해 12월7일 조씨는 다시 외출을 나와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는 염증 수치가 심해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외출이기 때문에 그럴 여유가 없었다. 조씨는 항생제만 맞고 부대로 복귀하려 했다. 어머니는 이렇게는 안 된다는 생각에 부대에 “주말은 집에서 보내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다행히 부대의 허락이 떨어졌다.

아들과 마주 앉은 어머니는 물었다. “왜 참기만 하느냐, 아프면 바로 부대에 이야기해라.” 착한 아들이 말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답답한 마음에서였다. 아들의 답이 어머니에게 충격을 줬다. 부대 상관들이 조씨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도 “꾀병 부리지 말아라” “술 먹어서 그런 것 아니냐”라고 면박을 주거나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는 것이다.

외출 이틀만인 지난해 12월9일 조씨가 부대에 복귀하자마자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자신이 맞았던 항생제가 뭔지 알 수 있냐는 전화였다. 목소리가 다급했다. “항생제 이름은 왜 알려고 하느냐”고 묻자 “부대에서 항생제를 놔줄 테니 이름을 알아오라고 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가족들은 부대에 항의했다. 결국 조씨는 다시 민간병원으로 나와서, 열흘 동안 입원치료를 받았다. 문제는 이미 상태가 악화됐다는 점이다. 최소 6∼12개월 약물을 복용해야 하고, 호전될지 장담할 수도 없다는 소견이 나왔다. 조씨는 이후 병가와 개인 연가를 사용하며 집에서 약물치료를 받다가, 지금은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특급 군인’을 꿈꿨던 조씨는 이제 초라한 전역을 눈앞에 두게 됐다. 국가에 대한 믿음은 산산조각 났다. 의병제대를 위해서는 의무심사에서 신체등급 5급 혹은 6급 판정이 필요하다. 국방부령 907호 ‘병역판정검사 등 검사규칙‘ 중 ’질병·심신장애의 정도 및 평가기준‘을 보면, 서혜부탈장은 어느 경우에도 5급이나 6급 판정을 받을 수 없다. 또한 수술 후 후유증을 겪고 있는 조 하사는 평가기준에 명시된 △현재 증상이 있는 경우 △수술 후 치유된 경우 △수술 후 합병증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심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국군 양주병원에서 들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장기요양을 신청하려 했지만, 이 역시 서혜부탈장으로는 어렵다고 했다. 어떻게든 전역을 해야 했기에, 조씨는 지난 7일 현역복무부적합 심의를 받았다. 현역복무부적합 심의를 통해서라도 전역 판정을 받지 못하면, 조씨는 병을 안고 앞으로 4년을 더 군대에서 복무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의 사유에는 조씨의 병증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그저 ‘발전성이 없거나 능력이 퇴보하는 사람’ ‘책임감이 없으며 적극적으로 자기 임무를 수행하지 아니하는 사람’ ‘동료들에 비하여 특히 발전이 늦으며 뒤떨어지는 사람’이란 표현들이 적혀 있었다. 전역을 위해 부대에서 내놓은 고육지책이다. 조씨도 이를 받아들였다. 조씨는 오는 4월4일 육군본부 최종심의를 앞두고 있다. 결과에 따라 전역 여부가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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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명예롭게 군 복무를 한 아이인데, 불명예 전역을 해야 한다니….” 아버지 조씨는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불명예 전역이라도, 우리에겐 너무 필요합니다.” 어머니 김씨가 잘라 말했다. 조씨의 가족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리고, 국방부에 민원을 넣는 등 노력을 하고 있다. 각종 포털사이트에도 댓글을 달며 아들의 사연을 알리고 있다.

“저희 아들 문제도 있지만, 앞으로 군인을 꿈꾸는 친구들도 있고 지금도 많은 친구들이 군대에서 복무하고 있잖아요. 제도가 문제라면 제도를 바꾸고, 군법이 문제라면 군법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버지 조씨가 물었다. 어머니 김씨는 인터뷰 내내 아들이 겪고 있는 몸의 아픔만큼이나 마음의 아픔을 걱정했다. “그렇게 좋아했던 군대에요. 그러나 군대는 아이가 아플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군대를 왜 보냈을까, 제대하라고 할걸. 왜 부사관을 시켰을까 후회만 합니다.” 인터뷰 내내 어머니 김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국방부는 20일 이에 대해 “안타까운 사연이지만, 민원인 연락처 등이 없어 아직 정확한 상황 파악이 안 된 상태”라며 “육군본부에 직접 설명을 듣고, 절차와 규정 내에서 최대한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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