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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2013년 검찰 수사, 곳곳에 ‘김학의 감싸기’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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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1차 수사 자료 보니

피해자에 성폭행 진술 반복 강요

경향신문

지난 15일 검찰 진상조사단의 소환 요구를 받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서울동부지검에 나타나지 않았다(왼쪽 사진). 같은 날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김학의 성범죄 의혹 사건’ 피해자가 증언했다. 김정근 선임기자·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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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건설업자 윤중천씨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의 성범죄 의혹 사건 검찰 수사 과정에서 담당검사가 성범죄 사건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피해자다움’을 강조한 신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성폭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에게 “왜 곧바로 신고하지 않았느냐”고 반복해 질문하는가 하면, 경찰 조사에서 이미 여러 차례 진술한 성폭행 상황을 재차 묘사하도록 했다.

당시 검찰은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체포, 압수수색 등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10차례 기각했다.

검찰이 김 전 차관 등 윤씨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은 조직원들을 보호하려고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의혹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20일 경향신문이 확보한 당시 검찰의 1차 수사자료를 보면, 2013년 8월 서울중앙지검에서 이뤄진 피해 여성 ㄱ씨에 대한 참고인 조사에서 검사는 “윤씨를 따라가서 원주별장에 가서 샤워를 했다고 했는데 윤씨와 성관계를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ㄱ씨가 2006년 7월 초 윤씨로부터 당한 첫 성폭행 상황을 진술할 때였다. 검사는 “처녀가 남의 집에 가면 무서웠을 거고 진술에 의하면 그 집에서 하룻밤 잔다는 것 아닌가”라고도 물었다.

“왜 신고를 안 했느냐”는 질문은 여러 번 반복됐다. “여자가 폭행에 의해서 강간을 당하는 경우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당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신고를 하거나 주변의 아는 사람들과 상담을 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안 했기 때문에 납득이 안되는 부분이 있다” “도망가지 않고 별장에 계속 머문 이유가 뭐냐”고도 했다. ‘피해자다움’을 정해 두고 한 질문이다. “ ‘성폭행을 했다’고(성폭행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이냐”는 다소 엉뚱한 질문도 나왔다. ㄱ씨는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게 했으니까” “자포자기하게 만드는 심정을 갖게 했다”고 답했다.

ㄱ씨는 앞서 경찰에서 7차례나 조사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검찰은 ㄱ씨에게 성폭행 장면을 또다시 묘사하게 했다.

검사가 윤씨와의 첫 성관계 상황을 자세히 얘기하라고 요구하자 ㄱ씨는 “상황은 거기 쓰여 있는 (경찰 진술조서) 그대로”라고 답했다. 그러자 검사는 “경찰에서 진술한 건 무시하고 본인이 다시 기억을 되살려 진술하는 게 중요하다”며 다그쳤다. ㄱ씨는 피해 상황을 다시 진술해야 했다.

■“왜 신고 안 했나, 도망 안 갔나” 추궁…피해자다움 강요한 검찰

‘김학의 1차 수사 자료’ 보니

성폭행 상황 묘사 재차 요구

경찰 조서 부정 의도도 보여

체포영장 등 10차례나 기각


ㄱ씨가 사업에 도움을 받는 대가로 윤씨, 김 전 차관 등과 자발적으로 성관계를 맺었다고 전제한 질문도 등장한다. “성폭행을 당했지만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것을 기대하고 피해는 잊고 감수하겠다는 생각이었느냐” “윤씨가 투자를 한다거나 투자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소개시켜준다고 얘기해 윤씨와 사귀거나 ‘셋째 (부인)’ 정도 관계를 맺는 부분에서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는 준비를 하고 있었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반복했다. ㄱ씨는 이를 부인했다. 검찰은 경찰 조사 내용을 의심하기도 했다. “경찰이 ㄱ씨의 존재를 어떻게 알고 찾아왔느냐” “조사를 많이 받은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전 회차 조사 진술조서를 열람한 뒤에 조사가 이뤄진 이유가 뭐냐” “혹시 경찰이 ‘진술의 일관성이 중요하니 이전 회차 조사 때 진술한 내용과 일치돼야 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느냐”며 경찰이 의도성을 가지고 조서를 작성했을 가능성을 의심했다.

경찰이 ‘법무부 2인자’였던 김 전 차관을 겨냥한 의도성 있는 수사를 했다고 보고 경찰 조사 전체를 부정하려 했다는 해석을 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경찰 수사팀은 검찰로부터 사건 관련자들의 체포영장(2회), 통신사실조회(4회), 압수수색영장(2회), 출국금지(2회) 등 총 10회에 걸쳐 신청한 영장에 대한 기각 통보를 받았다. 사유는 “보강수사 필요”였다. 당시 경찰 수사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는 “검찰의 ‘수사 방해’로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 없었다”며 “협조가 잘됐다면 김 전 차관 외 윤씨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은 것으로 의심되던 인사들을 더 폭넓게 수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알립니다

경향신문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의혹’을 ‘김학의 성범죄 의혹’으로 표기합니다. 2013년 김 전 차관이 건설업자 별장에서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으로 사건이 시작돼 그간 ‘성접대 의혹’으로 써왔습니다. ‘성접대’는 수동적으로 접대를 받았다는 의미로 특수강간 등 혐의 피의자인 김 전 차관의 의혹을 포괄하기 어려워 이같이 결정했습니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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