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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정신건강 해로워진다는 '난수표 선거제'···직접 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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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AOA 설현이 2016년 4월8일 오후 서울 청담동 주민센터에서 2016 제20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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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까지 이런 선거제는 없었다. 이건 수학인가 선거인가.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더불어민주당ㆍ바른미래당ㆍ민주평화당ㆍ정의당)이 지난 19일 마련한 선거제 개편안은 복잡한 계산식으로 가득하다. 당사자인 의원들 사이에서도 “뭐가 뭔지 헷갈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물론 이 선거제 개편안이 통과될지는 아직 불투명하지만 만약 이대로 내년 총선을 치를 경우엔 어떻게 국회의원을 뽑는 건지 정리해봤다.

2. 여야 4당 선거제 개편안의 핵심은 지역구를 225석(현행 253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는 75석(현행 47석)으로 늘리는 것이다. 지역구는 국회에서 시도별 인구수를 고려해 의원 정수를 정하면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거기에 맞게 선거구를 정하면 된다. 지역구 선거는 지역구에서 최다득표 1인을 뽑는거니 종전과 똑같다. 문제는 비례대표 뽑는 방식이 광장히 복잡하다는 점이다.

3. 지난 총선에선 2번 투표를 했다. 지역구 후보 투표와 정당투표다. 여야 4당 선거제 개편안도 2번 투표하는 건 똑같다. 그런데 종전까지 비례대표 배분은 정당 투표율만을 기준으로 놓고 계산했지만, 앞으로 비례대표 배분은 정당 투표율와 지역구 당선 의석수를 연동해서 배분한다. 그래서 ‘연동형’이라는 이름이 달렸다. 그러다보니 계산 방식이 종전보다 복잡해진다.

4. 당초 협상 테이블에 올랐던 건 독일과 같은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였다. 가령 A당의 정당득표율이 20%였다면 A당에겐 전체 300석의 20%인 60석이 보장된다. 그런데 A당이 지역구 선거에서 30석밖에 얻지 못했다면 나머지 30석을 비례대표로 채워 60석을 보장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원 정수는 300명에서 단 한 명도 늘리지 않으면서 이 구조대로 가면 지역구가 대폭 줄어든다. 자기 지역구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의원들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이에 100% 연동형이 아니라 50%만 연동형으로 하는 수정안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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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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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A당의 정당득표율이 20%고 지역구 당선 의석이 30석이라고 치자. ‘100% 연동형’에선 곧바로 30석을 비례대표로 준다. 하지만 ‘50% 연동형’(=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선 절반인 15석만 준다. 이런식으로 B당, C당 등이 쭉 비례대표를 나줘갖고 나면 남는 비례대표 의석이 생긴다. 이제 이 남은 비례의석을 2차로 배분하는데 이번엔 지역구 당선 의석을 따지지 않고 지난 총선에서 했던 것처럼 전국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서 쪼갠다는 것이다. ‘100% 연동형’에 비해 절차가 두배로 늘어났지만 이 정도면 이해하는게 아주 어렵진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끝난게 아니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6. 여야 4당은 여기에 지역주의 완화를 명분으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기존 비례대표는 전국 단위 정당명부 방식으로 1번부터 많게는 50번까지 사람이름을 적는다. 하지만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되면 전국을 ▶서울 ▶인천ㆍ경기 ▶대전ㆍ충남ㆍ충북ㆍ세종ㆍ강원 ▶광주ㆍ전북ㆍ전남ㆍ제주 ▶대구ㆍ경북 ▶부산ㆍ울산ㆍ경남 6개 권역으로 나누고 비례대표 공천도 권역별로 한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복잡해진다.

7. 4,5번에서 예로 든 A당의 계산은 전국단위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여야 4당안은 이걸 전국 6대 권역별로 각각 운영하겠단 것이다. 일단 4,5번을 통해 각당의 총의석수(지역구+비례대표)가 결정됐다고 치자. 다만 비례대표 의석수는 단순한 숫자일 뿐이며 구체적인 당선자와 연결된 상태가 아니다. 가령 A당이 4,5번의 단계를 통해 지역구 30석과 비례대표 30석을 확보했다고 치자. 그러면 이 비례대표 30석을 각 권역별로 배분해 해당 권역별로 당선자를 결정하게 된다. 계산하는 방식은 ‘총 의석수(지역구+비례대표)×권역별 득표율’이다. 여기서 ‘권역별 득표율’이란 말이 헷갈릴 수 있는데 ‘정당의 해당권역의 정당득표수’를 ‘정당의 전국정당득표수’로 나눈 수치다.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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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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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가령 A당(지역구 30+비례 30)의 전국 정당 득표수가 500만표고 A당이 서울에서 50만표(정당투표)를 얻었다고 치자. 그러면 A당의 서울권 득표율은 10%가 되고 A당의 서울권 할당의석은 60석×10%로 6석이 된다. 그런데 A당의 서울권의 지역구 당선자가 2석이라고 치자. 그러면 A당이 서울권 할당의석 6석에서 모자라는 4석, 그 중 절반(50%연동)인 2석을 서울권 비례대표로 배정한다. B당, C당 등도 이런식으로 나눈다. 그렇게 한 뒤에 남는 비례대표 의석은 각 당이 자신들의 권역별 득표율에 비례해서 배분한다. 이쯤되면 꽤 어렵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계속 쫓아가보자.

9. 선거제도를 복잡하게 만든 또 하나의 요인은 석패율제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로 중복 출마가 가능하게 함으로써, 지역구에서 아깝게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구제하는 제도다. 여야 4당은 권역별로 2명까지 짝수 번호 비례대표로 입후보 할 수 있도록 했다.

만약 A정당이 부산에서 항상 아깝게 낙선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부산·울산·경남 지역구 출마자들을 이 권역의 비례대표로도 출마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A정당에서 부산 사하구에 출마한 김모 후보가 5만표를 얻어 낙선했고, 그 지역의 당선자가 10만표를 얻었다면 김 후보의 석패율은 50%다. 한편 경남 거제에 출마한 A당의 이모 후보도 5만표로 낙선했는데, 그 지역 당선자가 8만표를 얻었다면 이 후보의 석패율은 62.5%가 된다. 이 후보가 김 후보보다 더 아깝게 낙선한 셈이다. 이처럼 A당의 특정 권역에서 가장 아깝게 떨어진 두 명까지 비례대표로 돌려 심폐소생을 시킨다는 것이다. 다만 특정당의 싹쓸이를 막기 위한 장치를 뒀다. 특정 권역에서 지역구 의석의 30% 이상을 가져간 정당은 석패율제를 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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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8일, 6·13 지방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이날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김정숙 여사가 서울 종로구 삼청동주민센터에서 사전투표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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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로써 여야 4당 선거제 개편안의 골격을 훑어봤다. 이외에도 각종 예외조항에 대비한 세세한 규정이 많지만 독자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생략하기로 한다. 한마디로 비례대표 산정방식이 무지하게 복잡하다는 게 개편안의 특징인데 뭐 사실 모 의원 말대로 국민들은 계산식까지 알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유권자 입장에서 직관적으로 와닿는 제도가 아니다보니 내 한 표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수 있다. 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한다고 쳐도 정착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 같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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