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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단층대 위에 지은 지열발전소가 포항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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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조사연구단 2년전 지진 원인 발표]

땅 속에 구멍 뚫고 물 주입 과정서 알려지지 않은 단층 활성화로 촉발

면밀한 지질조사 없이 발전소 건설… 정부 “포항 지열발전소 영구 중단”
한국일보

20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지진 이재민 임시구호소에 텐트가 가득 차 있다. 이날 대한지질학회는 2017년 발생한 포항지진이 인근 지열발전소가 촉발했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포항=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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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에서 지난 2017년 11월 15일 일어난 규모 5.4의 지진은 인근 지열발전소 때문에 발생했다는 공식 조사결과가 나왔다. 지열발전을 위해 땅 속에 구멍을 뚫고 물을 주입하는 과정에서 생긴 높은 압력이 기존에 파악되지 않은 지진단층을 활성화시켜 대규모 지진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해당 지진단층의 존재는 이번 조사로 처음 확인됐다. 지열발전이 지진 발생에 영향을 준다는 우려가 이미 제기됐음에도 면밀한 지질조사 없이 단층 지역에 지열발전소를 건설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내외 전문가 약 20명으로 이뤄진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은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진의 원인이 지열발전소라는 결론을 담은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단의 해외조사위원회에서 활동한 셰민 게 미국 콜로라도대 지구과학과 교수는 “지열정(지열발전을 위해 땅을 시추해 설치한 대형 파이프)에 물을 주입하는 과정에서 작은 지진들이 유발돼 인근 지하 구조가 변형됐고, 에너지가 점점 커지면서 알려지지 않았던 단층이 활성화해 결과적으로 규모 5.4의 지진을 촉발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일보

지열발전은 수㎞ 지하에 물을 넣어 땅의 열로 데운 다음 여기서 발생한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물을 주입하기 위해 땅을 깊게 파면서 지반이 약해지고 단층에 응력(외부 압력에 버티는 힘)이 더해져 지진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가 오래 전부터 제기돼왔다.

조사단의 이런 결론으로 정부 배상 책임을 둘러싼 논란도 커질 전망이다. 포항지열발전소는 민간기업인 넥스지오가 건설하고 소유한 발전소이지만, 정부 예산 195억원이 투입된 정부 지원 연구개발사업으로 추진됐다.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 신재생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한 국책사업으로 추진됐고,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이 사업 진행을 관리했다. 포스코와 이노지오테크놀로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서울대 등이 발전소 건설과 연구에 참여했다. 포항지진 당시 지열발전소는 90%가량 완공된 상태로, 그 전부터 땅속에 물을 주입하고 빼내는 작업을 반복해왔다.

연구단의 조사 결과 발표 직후 정승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조사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포항시민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포항 지열발전소 사업을 영구 중단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정 차관은 정부의 배상책임 여부에 대해 “현재 국가를 피고로 하는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법원 판결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부는 지열발전소 부지에 대해 “전문가와 협의해 안전성이 확보되는 방식으로 조속히 원상 복구 하겠다”며 “이와 별도로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 개발 사업의 진행 과정과 부지선정의 적정성 여부 등에 대해 엄정하게 조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포항 시민들과 발전소 관계자들을 포함한 수백명이 모였다. 조사단의 결론이 나오자 일부 시민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쳤고, 지진 발생에 따른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할 것을 촉구하며 격앙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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