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승리·정준영…‘별’로 컸지만 ‘벌’은 모르는 이유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승리·정준영 사태로 본 ‘알맹이 빠진 스타 만들기’]

연습생 갈수록 어려지는데…

가정·학교 대신한 기본 소양교육

외부 강사에 맡기거나 없는 곳도

인사 잘하기·단톡방 관리 등 초점

대부분 사고·논란 피하기에 그쳐

성인지감수성·인권교육 빠진 채

데뷔한 뒤엔 스타대접 ‘특권의식’

‘쾌락에 충실’ 잘못 인지조차 못해


한겨레

“도대체 기획사들은 어떻게 교육하기에….”

빅뱅 멤버 승리와 가수 정준영이 연루된 역대급 성범죄 사건이 벌어지자 연예기획사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어린 나이부터 연습생으로 활동하는 경우 하루 일과 대부분이 소속사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기획사가 가정이나 학교를 대신해 교육적 구실도 담당해야 하지만 인권의식, 젠더 감수성을 길러주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 이른바 ‘인성 교육’을 하는 기획사의 커리큘럼도 대중의 손가락질을 받지 않도록 하는 ‘예의범절’ 교육에 가깝다.

<한겨레>가 최근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 같은 대형 연예기획사를 포함해 10곳의 교육 실태를 알아봤더니, 연습생을 상대로 인성 교육을 하는 곳은 7곳이었다. 케이팝의 위상이 높아지고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 대상이 되면서 2010년께부터 춤·노래 연습 외에 인성 교육도 시작됐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도 10여년 전부터 모든 기획사의 청소년 연습생들을 대상으로 기초 소양 교육을 하고 있다. 성문제 관련, 언론 인터뷰 대처법 등 18개 항목을 기획사에 보낸 뒤 기획사의 선택에 따라 출장 강의를 해준다.

하지만 연습생들이 받는 품성 교육 내용은 대중의 심리를 거스르지 않는 방법에 집중돼 있는 게 보통이다. “민감한 시기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교육 내용은 밝힐 수 없다”며 기획사들은 말을 삼갔지만, 주로 ‘에티켓과 매너’를 강조하는 내용이 많다고 한다. ㄱ기획사 쪽은 “싹싹하게 인사 잘하기 등 예의범절과 팬 응대법, 사회관계망서비스(에스엔에스) 활용법 등 연예인들이 논란에 휩싸이지 않도록 주의를 주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동료 연예인이 사고를 치면, 근본적 문제점을 짚기보다는 일상생활을 더 엄격하게 감시하는 등 억압적인 내용이 추가된다. ㄴ기획사 관계자는 “최근 정준영·승리 사태가 불거지면서는 술자리에 되도록이면 가지 말라는 것과 단톡방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교육했다”고 말했다. 카카오톡 대신 텔레그램을 사용하라고 가르치는 곳도 있다.

이런 ‘실용 교육’ 틈바구니에서 인권의식을 길러주는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힘들다. 젠더 이슈가 한층 중요해진 시대지만 기획사들은 오히려 “페미니즘과 젠더라는 말을 언급하면 논란이 되니 절대 아무 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ㄷ기획사).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정준영 단톡방의 사람들이 불법 촬영물을 돌려보고, 여성을 비하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졌는데도 이에 걸맞은 성인지감수성과 인권의식에 대한 교육이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습생을 ‘졸업’하고 데뷔한 뒤 오히려 교육의 필요성이 더 커진다는 의견도 나온다. “데뷔하고 나서 인기를 끌면 더 많은 유혹에 사로잡히기 때문”(ㄹ기획사)이다. 데뷔가 결정되면 회사에서 배정해준 차를 타고 다니며 코디네이터, 헤어·메이크업 담당 등 신인 한명당 서너명의 스태프가 붙어 스타 대접을 해준다. ㄹ기획사 관계자는 “기획사들끼리 자존심 경쟁을 벌이면서 신인들에게도 가급적 많은 스태프를 붙여주는 과시적 행동을 하는데 결국 연예인들이 특권의식에 사로잡히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런 특권의식은 정준영·승리처럼 인기와 돈에 기대 여성을 대상화하고 조롱과 혐오를 퍼붓는 행동으로 이어지고 불법에도 무감각해지게 만든다. 대중적 영향력이 큰 연예인들일수록 더욱 세심한 교육을 받아야 하는 이유다. 정덕현 평론가는 “승리처럼 10대 후반부터 연예업계에 들어와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라면 비즈니스 세계에서 주고받는 쾌락에만 충실하게 살아왔을 뿐 제대로 교육받을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네이버 메인에서 한겨레 받아보기]
[▶한겨레 정기구독] [▶영상 그 이상 ‘영상+’]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