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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박수로 통과시켜 달라”…‘IT공룡’ 삼성전자의 아날로그 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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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액면분할 뒤 첫 주총 현장

주주 5배 늘었는데 좌석 2배만 늘려

총회 시작 1시간 넘도록 긴 대기줄

삼성 “1천여명”…진행요원 “2000명 이상”

“미세먼지도 심한데…주주 홀대” 불만

독립성 우려 이사선임안 내놓고

반대하는 주주에 의견철회 요구

박수로 통과시키고 “법적문제 없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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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입구는 몰려든 인파로 북적였다. 정기 주주총회에 참여하려는 주주들이었다. 삼성전자 쪽 예상의 3배 가까이 참석자가 몰렸다. 지난해 액면 분할 뒤 삼성전자 주주는 이전보다 5배 늘어난 78만8천명에 이른다. 최근 활발한 대내외 활동을 이어가는 삼성전자 사내이사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주총에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좌석 800개를 준비했다. 지난해보다 2배 늘린 것이었지만 예상은 어긋났다.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은 이날 “주주 1천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지만, 현장에서 만난 행사 진행요원은 “2천명 이상 왔다”고 말했다.

이날 아침 7시30분부터 주총장 입장이 시작됐으나, 주총 시작 시간인 오전 9시에도 서초사옥 입구 주변에 100m 이상 대기줄이 늘어섰다. 이 줄은 주총이 시작된 뒤 1시간30분이 지난 오전 10시30분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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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주주가 공식 발언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한 주주는 “미세먼지가 이렇게 심한데 1시간 동안 줄을 서다가 이제야 들어왔다. 액면 분할로 주주가 늘었다는 것은 신문 지상에도 나와 있는데 이따위로 주주를 입장 시켜야 했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주주는 “밖에서 2시간씩 떨게 만들고, 회사가 주주를 홀대한다. 또 들어오니 몰이꾼을 앞세워 선동하며 ‘당신들 도장 찍으세요’ 한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주총 의장을 맡은 김기남 반도체(DS) 부문장(부회장)은 주주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여야 했다. 삼성전자는 이날 오후 누리집에 공식 사과문을 올렸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안규리 서울대 의대 교수가 사외이사 후보로 추대됐는데, 두 후보는 삼성과의 연관성 때문에 사외이사로서의 독립성 우려가 이달 초부터 제기돼 왔다. 서스틴베스트 등 국내 의결권 자문사들과 미국 캘리포니아 교직원 연기금 등 국외 기관투자자가 반대 의견을 냈다.

주총 현장에서도 이들의 선임을 반대하는 의견이 나왔다. 주주 김아무개씨는 박 전 장관에 대해 “삼성을 위해 일하는 분을 사외이사로 지명하는 게, 주주와 공익을 위한 것인가 의구심이 나온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의 선임이 “삼성전자의 대외이미지에 손상을 줄 수 있다”고 반대하는 주주도 있었다. 안 교수에 대해서도 일부 주주는 “의대 교수여서, 전문성이 의심된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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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와 일부 주주는 반대 의사를 밝힌 이들에게 “반대 의견을 철회해 달라”고 요구하며, 찬성 의결을 강행했다. 김기남 부회장은 주주들에게 “박수로 찬성해 달라”고 요청한 뒤, 박수가 나오자 의사봉을 세 차례 두드리고 의안 통과를 선언했다. 삼성전자 지분 8.9%를 보유한 국민연금은 찬성했다.

‘박수 안건 통과’에 주주들이 잘못을 지적하자, 김 부회장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밝혔고, 주총에 자리한 고창현 삼성전자 자문변호사도 “상장회사의 경우, 실질적인 표결이 사전 선행 투표와 위임장(을 통한) 의결권 행사 등을 통해 진행이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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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초일류기업 삼성전자 주주들이 미세먼지 속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박수 의결’에 분통을 터뜨리는 일은 무척 낯설어 보였다. 전자투표만 도입했더라도 따로 사과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국내 상장사 2111곳 중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곳은 1350곳(63.9%)이다. 1350여 상장사의 주주들이 전자투표로 의결권을 행사할 때 대개는 삼성전자가 만든 반도체와 스마트폰이 이용되고 있을 것이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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