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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취재파일] 급증하는 상품 소비가 '미세먼지 불평등'을 강화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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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다 중간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2명의 여자 어린이를 만난 적이 있다. 남매 같아 보이는데 두 명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식약처 인증을 받은 마스크를 빈틈없이 완벽하게 착용한 모습. 이것은 분명 200% 아이들 엄마의 작품일 것이다.

"너희들 왜 마스크 썼어?" "엄마가 미세먼지 '나쁨'이라 했어요."
"답답하지는 않니?" "괜찮아요."

마스크는 이제 생활 필수품이 됐다. 공기청정기를 마련한 가정도 많다. 공기청정기가 없는 집은 적어도 한 번쯤은 공기청정기를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는 공기청정기는커녕 마스크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 대학 연구팀이 최근 미국에 거주하는 흑인과 히스패닉, 백인 등 각각의 인종이 평균적으로 거주 지역에서 초미세먼지(PM2.5)에 노출되는 정도와 또 각각의 인종이 평소에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배출하는 초미세먼지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 조사했다(Tessum et al., 2019). 연구팀은 특히 한 인종이 평균적으로 노출되는 초미세먼지와 그들이 배출하는 초미세먼지의 차이를 '미세먼지 불평등(pollution inequity)'이라고 정의하고 인종별 미세먼지 불평등을 구체적인 수치로 산출했다.

한 인종의 미세먼지 불평등 값이 양(+)인 경우는 그 인종이 평균적으로 배출하는 초미세먼지보다 더 많은 초미세먼지에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들이 배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초미세먼지에 노출되는 만큼 미세먼지에 대해서는 평소에 늘 '부담(pollution burden)'을 안고 사는 것이다. 반대로 미세먼지 불평등 값이 음(-)인 경우는 자신들이 배출하는 초미세먼지보다 적은 양의 초미세먼지에 노출된다는 의미한다. 미세먼지에 대해서 평소에 '이득(pollution advantage)'을 보고 산다는 것이다.

조사결과 흑인의 경우 미세먼지 불평등 값이 +56%, 히스패닉의 경우는 +63%인 것으로 나타났다. 흑인의 경우 자신들이 배출하는 초미세먼지보다 평균적으로 56%나 초과 노출되고 히스패닉의 경우는 자신들이 배출하는 초미세먼지보다 63%나 더 많이 노출된다는 뜻이다. 반면에 백인과 다른 인종의 경우는 미세먼지 불평등 값이 –17%인 것으로 나타났다. 백인의 경우는 자신들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배출하는 초미세먼지보다 평균적으로 17% 적은 양의 초미세먼지에 노출된다는 뜻이다. 백인과 다른 인종이 상대적으로 많이 배출하는 초미세먼지를 흑인과 히스패닉이 나눠 마시고 있는 것이다. 초미세먼지를 적게 배출하는 인종이 오히려 더 많이 마시는 것이다. 아래 그림은 인종별 초미세먼지 배출과 노출 요인을 분류한 것이다. 연구팀은 다양한 배출과 노출 과정에 대해 조사했다(아래 그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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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또 한 가지 주의 깊게 봐야 하는 것은 각 인종의 미세먼지 불평등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했는가 하는 점이다. 지난 2003년부터 2015년까지 각 인종별 초미세먼지 배출과 노출의 변화를 보면 배출과 노출 농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미세먼지 불평등 즉, 배출과 노출의 차이는 예상만큼 큰 폭으로 감소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간이 흘러 미세먼지 농도가 절대적으로 줄어들더라도 흑인과 히스패닉은 여전히 자신들이 배출하는 미세먼지보다 고농도 미세먼지에 노출되고 있고 백인은 자신들이 배출하는 미세먼지보다 적은 양의 미세먼지를 마시고 산다는 것이다. 미세먼지 불평등이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림에서 실선은 노출, 점선은 배출하는 초미세먼지 농도를 의미한다(아래 그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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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인종별 미세먼지 불평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오랜 기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 같은 미세먼지 불평등은 경제적인 불평등과도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경제적인 불평등이 미세먼지 불평등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미세먼지 불평등이 단지 미국 사회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제적인 불평등이 얼마든지 미세먼지 불평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평소에 각종 상품이나 서비스를 적게 이용해 미세먼지를 적게 배출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들이 공기를 통해 마시는 미세먼지는 평소에 미세먼지를 많이 배출하며 생활하는 사람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미세먼지를 적게 배출하는 사람들이 미세먼지를 많이 배출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고농도 미세먼지에 더 많이 노출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고농도 미세먼지가 자주 나타나면서 미세먼지를 차단하는 제품이 이제 생활필수품이 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미세먼지 차단 제품을 비롯해 생활에서 이용하는 많은 상품과 서비스가 한편으로는 미세먼지 불평등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각종 상품과 서비스를 많이 이용하면 이용할수록, 특히 과다하게 이용할 경우 미세먼지 불평등은 더욱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언제나 미세먼지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맘 놓고 편히 숨을 쉬기 위해서는 배출량을 줄여 대기 중 미세먼지 농도를 낮추는 것이 대책의 기본이고 핵심이다. 하지만 거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미세먼지 농도가 낮아져도 미세먼지 불평등은 여전히 크게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배출량 감축 대책은 미세먼지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대책과 함께 시행할 때 더욱 빛이 날 수 있다.

<참고 문헌>

* Christopher W. Tessum, Joshua S. Apte, Andrew L. Goodkind, Nicholas Z. Muller, Kimberley A. Mullins, David A. Paolella, Stephen Polasky, Nathaniel P. Springer, Sumil K. Thakrar, Julian D. Marshall, and Jason D. Hill, 2019: Inequity in consumption of goods and services adds to racial–ethnic disparities in air pollution exposure, Proceedings of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DOI: 10.1073/pnas.1818859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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