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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미술계는 지금 ‘여성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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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관 절반이 여성 사령탑

기획·수상·전시 출품까지 휩쓸어

“미투 등 동시대 미술 의제로도 적절

담론·전시 기획 등 더욱 확장될 것”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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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미술인들이 주도했던 제도권 미술판에 올해 들어 여성미술인들의 열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국내 주요 공공미술관장은 물론, 국내외 비엔날레 출품작가·기획자와 올해의 작가상 후보 등을 모두 여성이 휩쓰는 전례 없는 현상이 일어났다. ‘미술관장’ 하면 70대 이상 나이 지긋한 남성 미술인들을 적임자로 점찍던 관행은 사라졌다. 2000년대 초까지 주요 미술상을 차지했던 남성 작가들은 지난 수년 사이 존재감조차 미미해진 상황으로 바뀌었다.

지난 14일 미술판에는 여성미술인들의 약진을 알리는 뉴스들이 쏟아져나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내 미술계의 큰 상인 ‘올해의 작가상 2019’ 후보(후원작가)로 30~40대 여성작가들인 김아영, 박혜수, 이주요, 홍영인씨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2012년부터 후보작가 선정을 시작한 이래 선정작가가 모두 여성이 된 것은 처음이었다. 이날 낮 열린 광주비엔날레 재단 이사회에서는 국제무대에서 난민과 여성 이슈들을 놓고 전시기획을 해온 터키와 인도 출신 30~40대 여성기획자 두 사람을 사상 첫 여성 공동감독으로 뽑았다. 같은 날 서울시가 독립기획자 출신의 백지숙(55)씨를 새 서울시립미술관장으로 내정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미술계에선 “한국 미술판에서 남성의 시대는 끝났다”는 말들이 나왔다.

국내외 전시 무대에서 활약해온 백씨의 관장 선임은 국내 미술판의 등뼈인 공공미술관의 운영주체로 여성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최근의 변화에 정점을 찍은 사건이라 할 만하다. 백씨가 관장으로 선임된 서울시립미술관을 비롯해 경기도미술관(관장 최은주) 부산시립미술관(김선희) 제주도미술관(최정주), 전북도립미술관(김은영), 대전시립미술관(선승혜) 등 지방자치단체 공공미술관 중 6개 관의 수장이 여성이다. 10여곳에 이르는 전국 공공미술관의 절반이 여성 사령탑을 두게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기관 운영은 물론 전시콘텐츠 등에서 섬세한 감성을 지닌 여성관장들이 미술판의 지형 개편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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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미술상 분야에서도 여성들의 선전이 눈부시다. 올해의 작가상은 지난해엔 정은영씨, 2017년엔 송상희씨가 선정됐다. 쌍벽을 이루는 에르메스미술상도 지난 연말 발표한 18회 수상자 전소정씨를 비롯해, 17회(오민)·16회(정금형) 수상자가 모두 여성이었다.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올해 한국관 전시의 경우 예술감독에 김현진 전 아르코미술관장, 출품작가는 정은영·남화연·제인 진 카이젠 등 전원 여성 미술인들로 진용을 갖췄다. 본 전시 초대 작가도 1999년 베네치아에 한국관 대표작가로 출품했던 이불 작가를 비롯해 강서경·아니카 이로 확정돼 신작들을 내놓는다.

화랑가나 사설 미술관 등에서는 여성 화상이나 홍나희 전 리움 관장으로 대표되는 재벌가 여성들이 관장을 맡는 관행이 퍼져 있었다. 하지만, 최근 공공미술관 등의 제도권 미술행정직과 비엔날레 등에 여성들이 포진한 것은 전례 없는 성취로 평가된다.

미술계에서는 1980년대부터 미대 재학생이나 작가진출 비율 등에서 여성이 다수였으며, 2000년대 들어 더욱 여성들의 비중이 커져 왔던 터라 최근의 흐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각이 많다. 기혜경 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은 “미술대학이나 미술계 하부에는 남성들의 진출이 상대적으로 미약한 반면 제도권 기관의 주요 자리는 남성들이 차지하는 왜곡된 유리 천장 구조가 있었다. 오히려 여성미술인들의 약진이 뒤늦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미술계 하부구조를 지탱하면서 편견과 차별을 딛고 경력을 쌓아나간 기획자와 작가들이 40~50대 나이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점이 도래했다는 얘기다. 기획자이자 평론가인 유진상 계원예술대 교수는 “최근 문화판을 뒤흔든 #미투(나는 폭로한다) 운동 등에서 보이듯 여성과 연관된 문제나 담론은 국내외적으로 현실과 바로 맞닿는 맥락을 갖고 있어 동시대 미술의 의제로도 맞춤하다”며 “여성 미술인들은 단순히 활동 영역을 확대하는 데 머물지 않고 콘텐츠 등 관련 작업을 통해서도 시대적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짚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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