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신율의 정치 읽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北 행동이 중요하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경이코노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4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올해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는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진입했고 이제는 북한도 이 과정을 되돌릴 수 없다고 본다.”

2018년 12월 21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한 말이다.

당시 청와대의 이런 주장 때문인지, 적지 않은 이가 북한 비핵화가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청와대 당국자는 바람을 갖고 상황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자칫 ‘주관적 희망’으로 현재를 판단했다 오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모습을 우습게 만들고 고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정의용 실장 주장은 정확한 판단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 언론에 보도되는 북한 움직임을 보면 ‘비핵화 프로세스는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진입’한 게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와 싱크탱크 등은 “최근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이 정상 가동 상태로 복구된 것으로 보이며 평양 외곽 산음동 미사일 종합연구단지에서도 미사일·우주로켓 발사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움직임이 포착됐다”고 잇따라 언급했다.

여기까지만 봐도 그동안 정부와 청와대가 주장했던 말은 그다지 정확하지 않았다. 최근 일련의 보도는 ‘돌이킬 수 없는 단계’는 고사하고, 북한이 했다는 비핵화 조치가 언제든 쉽게 복구 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때문에 청와대는 ‘북한의 비핵화’, 청와대와 정부식 표현으로는 ‘한반도 비핵화’, 북한식 표현으로는 ‘조선반도의 비핵화’가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북한 핵문제는 우리 모두의 생존에 관한 문제기 때문이다.

설명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이유는 또 있다.

NYT 보도에 의하면 미국 정보당국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차 미북정상회담 이후 8개월간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이 계속 진행됐다는 것을 파악하고 이 내용을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지속적으로 보고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제1차 미북정상회담부터 지난 2월 말 제2차 미북정상회담까지 북한이 6개가량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생산했다는 게 정보기관의 판단’이라는 것이 NYT 보도 내용이다.

여기서 또 의문이 생긴다. 우리 정보당국과 청와대, 그리고 정부는 이런 미국 정보당국의 정보를 알고 있었을까.

1차 미북정상회담은 2018년 6월 12일에 열렸다. 정의용 실장의 ‘돌이킬 수 없는 단계 진입’ 발언은 2018년 12월 21일에 나왔다. 미국 정보당국 정보에 따르면, 정의용 실장 발언이 나올 당시에도 북한은 계속 핵물질을 생산했다. 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북한의 비핵화 과정이 돌이킬 수 없는 단계’라고 말했다면, 도대체 왜 그런 주장을 했을까. 반대로 알지 못했다면 정부와 청와대의 ‘긴밀한 한미 공조’ ‘한미 양국이 NSC(국가안전보장회의) 간 긴밀한 소통을 유지’한다는 주장에 대해 설명이 필요하다. 청와대나 정부 주장처럼 한미관계가 그리 긴밀했다면, 그런 정보를 몰랐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정부가 상세한 설명을 해줘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지금 북한 동창리나 산음동의 움직임을 볼 때, 북한이 ‘뭔가’를 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뭔가’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북한의 수법 때문이다. 북한은 미사일을 쏘고도 ‘인공위성’을 시험 발사했다 주장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1998년, 2012년, 2016년에 다단계 로켓을 시험 발사했을 때도 인공위성을 우주에 쏘아 올렸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정작 이를 믿는 나라는 없다. 한미 정보당국 분석에 따르면 북한이 쏘아 올렸다는 인공위성이 우주 공간에서 발견된 적이 없다. 포착됐어도 위성으로 정상 가동이 되지 않는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다.

북한은 이번에도 ‘뭔가’를 쏘고 또다시 위성을 쐈다는 주장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면서도 국제사회에 위협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북한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하면서 ‘북한이 발사한 것은 위성이며, 북한도 우주를 평화적으로 이용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남남갈등 수위가 다시 높아진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모습이 아주 우습게 될 가능성도 커진다.

이런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국민이 정부 발언을 공감하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와대와 정부가 과거에 한 발언 오류 여부를 분명히 하고, 배경을 설명해야 한다.

정부와 청와대가 과거 주장을 곱씹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현재 북한에 대한 판단이 과연 올바른가 점검할 수 있는 기회기 때문이다. 일부 정부 관계자와 학자가 ‘하노이 미북정상회담은 결렬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개진한다. 하노이 회담을 통해 미국과 북한이 각자의 입장을 정확히 알게 됐고 지금도 미국과 북한이 추가 대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결렬은 아니라는 게 핵심이다.

이는 하노이 회담이 실패했음을 간과하는 얘기다. 우리만 하노이 회담은 결렬이 아니라고 목 놓아 외쳐봤자, 국제사회의 영향력 있는 어떤 국가도 이에 동조하지 않는다. 결국 작금의 상황은 자기위안을 위한 ‘평가’에 불과하다. 자꾸 이렇게 자기위안을 위한 주장을 하면 북핵문제를 국내 정치를 위해 이용한다는 의구심마저 살 수 있다. 우리도 다른 국가들처럼 보편적 상식에 입각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국제사회의 보편적 상식에 맞지 않는 문제는 또 있다. 남북경협 부분이다.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직후인 지난 3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방안도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분명 미국이 북한에 그랜드 딜을 제안했고 북한이 이를 거부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정부와 청와대가 회담 결렬 직후 또다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나서니, 많은 국민과 국제사회는 어리둥절했다. 역시나 미국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3월 7일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을 위한 제재 완화는 (현 상황에서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런 제안이 어리둥절한 이유는 목적과 수단이 혼동되기 때문이다. 하노이 미북정상회담 결렬 원인은 영변 이외의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의지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계속해서 북한이 핵활동을 멈춘 적이 없었다는 보도가 이어지는데, 이 역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는 북한의 핵활동에 대한 문제를 북한에 따지고 진의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북한 의지를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확인한 후 미국에 일부 제재 완화를 말하는 것이 순서다.

그런데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나. 확인 없이 남북경협 재개만 주장한다면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수단이 목적에 우선해야 하는가.

앞에 언급한 것들에 대한 정부와 청와대 설명이 있어야만 북한 문제로 인해 국내 정치가 시끄러워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지난 3월 1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 당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발언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나 원내대표가 연설 중 “북한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옹호와 대변, 이제는 부끄럽다.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하자, 더불어민주당이 들고일어났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나 원내대표의 발언은) 국가원수 모독죄”라고 했다.

나경원 원내대표 발언도 문제지만, 이해찬 대표의 5공을 연상시키는 발언도 납득하기 힘들다. 국가원수 모독죄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 판치던 말이기 때문이다. 이런 소모적인 정쟁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앞에 언급한 의문에 대해서 상세한 답변을 내놔야 한다. 그것이 진짜 국민과의 소통이자 야당을 할 말 없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0호 (2019.03.20~2019.03.26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