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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군대 많이 좋아졌어요”…휴전선까지 퍼진 ‘워라벨 병영’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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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들 희생으로 지켜온 '휴전선 철책', 과학화 경계시스템 도입 / 약 10km 철책, 중·근거리 카메라 40여대가 감시 / 경계근무 초소엔 움직임 인식하는 카메라 설치 / 열상감시장비·감시 레이더 등 악천후에도 대비 / 광전류 흐르는 철책으로 즉시 이상 확인 / 수집한 정보, 지휘통제실 비디오 월로 한눈에 파악 / '말뚝근무' 크게 줄어 병사 여가 확보 / 병사 대상 스마트폰 사용도 시범 적용

사람들에게 군대에 대해 생각나는 것을 말해보라고 하면, 꼭 등장하는 것이 휴전선 철책이다.

판문점에서부터 강원 고성군에 이르기까지 155마일(약 250㎞)에 걸쳐 형성된 휴전선은 다른 곳보다 복무 강도가 높았다. 장병들은 총과 실탄을 휴대한 채 24시간 경계근무에 임하면서 극심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쌍안경과 탐조등에 의존해 경계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시공백은 온전히 장병들의 희생으로 메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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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사단 GOP 경계를 담당하는 상승대대 장병들이 13일 철책 이상 유무를 점검하며 순찰을 하고 있다. 육군 제공


이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군 당국은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도입했다. 장병들이 초소에서 무장한 채 북쪽을 바라보는 대신 네트워크화된 첨단 장비들을 휴전선에 배치, 장병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다. 장병들의 근무 부담이 줄어들면서 휴전선 경계부대의 병영문화도 혁신적으로 바뀌는 등 군 조직의 변화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13일 오후 기자가 찾아간 경기 연천군 일대 25사단 일반전초(GOP) 상승대대는 과학화 경계시스템이 장병들의 삶을 얼마나 많이 바꿨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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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사단 수색대대 장병이 13일 개인화기를 전방으로 겨눈 채 비무장지대(DMZ) 수색작전 투입 도중 경계를 서고 있다. 육군 제공


◆3중 4중 감시망, “접근하면 100% 탐지”

GOP 철책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올라선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철책 너머 북서쪽에 설치된 하얀색 팻말이었다. 기자를 안내한 대대장 소병훈 중령은 팻말에 대해 “북한이 남쪽으로 굴착한 제1땅굴”이라며 “1974년 11월에 발견한 것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땅굴 중 유일하게 비무장지대(DMZ) 안에 있는 땅굴”이라고 설명했다.

북한군이 땅굴을 만들어 침투를 시도할 정도로 이 지역은 북한군의 기습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하는 곳이다. GOP 대대에서는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통해 휴전선 일대 상황을 24시간 주시하며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과학화 경계시스템은 감시, 감지, 통제시스템으로 구성된다. 철책 북쪽 1㎞까지 감시할 수 있는 중거리카메라와 최대 400m를 살펴볼 수 있는 근거리카메라 40여대로 구성된 감시시스템은 대대가 담당하는 약 10㎞의 철책을 빈틈없이 감시한다.

기존에 병사들이 경계근무를 서던 초소에는 감시카메라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감시카메라는 사람이나 동물의 움직임을 인식하면 대대, 중대 상황실에 경보를 울린다. 사람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기능도 갖췄다. 소 중령은 철책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들을 가리키며 “카메라 오작동 시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수리팀을 운영중”이라고 설명했다.

안개가 끼면 감시에 일부 제한이 발생하는 것을 보완하고자 대대 차원에서 감시 레이더를 가동하고 있다. 열상감시장비를 비롯한 다른 감시장비들도 운용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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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사단 상승대대 장병이 13일 도구를 이용해 철책 상부를 점검하고 있다. 육군 제공


대대에서는 하루 두 번 철책 점검을 실시한다. 간부를 필두로 장병 4명이 철책을 위아래로 살펴보며 이상 여부를 점검한다.

방탄복과 방탄헬멧을 착용한 채 장병들을 따라가며 철책을 자세히 살펴보니 광망이 촘촘히 걸린 것을 볼 수 있었다. 과학화 경계시스템 중 감지 분야를 담당하는 광망은 광전류가 흐르고 있어 철책이 조금이라도 훼손되면 상황실과 지휘통제실에 경보를 보낸다. 경보를 받은 초동 대응 병력은 몇 분이면 해당 철책으로 달려가 현장을 눈으로 확인한다. 장병들이 순찰 도중 철책에 꽂힌 하얀색 돌이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던 과거 방식과 비교하면 훨씬 효과적이라는 평가다.

GOP에는 멧돼지 등 다양한 야생 동물이 서식한다. 장병들이 가장 싫어하는 동물은 맹수가 아닌 토끼와 너구리다. 날카로운 이빨로 철책을 갉아 광망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철책에 동물 기피제가 담긴 플라스틱 병이 매달려 있는 이유다. 철책 하단부에는 그물망처럼 생긴 보호망(치킨넷)을 설치, 야생동물의 접근을 차단한다. 통문에는 개폐센서가 부착되어 있다. 통문이 3㎝ 이상 벌어지면 경보를 울린다.

감시, 감지시스템이 수집한 정보는 대대 지휘통제실과 중대 상황실로 보내진다. 비디오 월(video wall)이 설치된 대대 지휘통제실은 각 부대의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상황발생 시 부대 지휘를 실시한다. 사단 및 군단에도 동일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해 후방의 지휘관이나 참모가 현장에 직접 오지 않아도 상황 파악이 가능하다. 중대 상황실은 감시카메라를 운영하면서 유사시 병력 출동 등을 담당한다. 과거에 상황실에서 볼 수 있었던 상황판이나 작전지도는 모두 모니터 화면으로 대체됐고, 지휘관이 접하는 정보도 과거와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데 도움이 된다.

유사시 신속한 대응과 기동순찰을 위한 차량도 배치되고 있다. 소초에는 소형전술차량과 5t 트럭 외에도 순찰용 산악오토바이가 운용중이다. 중대당 1대씩 배치된 산악오토바이는 988cc 엔진에 자동변속기를 장착했다. 실제로 탑승해보니 흔들림이 없었고 경쾌하게 움직여 험지 순찰 등에 적합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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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사단 상승대대 소속 장병이 북카페에서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고 있다. 육군 제공


◆근무시간 줄면서 병영문화도 변했다

과학화 경계시스템은 ‘말뚝근무’라 불릴 정도로 초소 경계만 진행하던 GOP 대대를 혁신적으로 변화시켰다. 기존에는 병사들이 하루 8시간 가량 경계근무를 했다. 초소에서 북한군 동향을 살핀 뒤 병영생활관으로 돌아와 쉬는 일이 반복됐다. 고도의 긴장감 속에서 경계를 서면서 피로가 쌓였다. 훈련을 제대로 실시하지 못해 전투력도 저하됐다.

하지만 과학화 경계시스템 도입으로 경계근무에 필요한 병력이 크게 줄어들면서 경계 이외의 업무나 여가시간 활용이 가능해졌다. 25사단 관계자는 “과학화 경계시스템 구축 뒤 장병들이 철책 근무를 마치고 훈련을 하거나 여가를 즐길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같은 변화는 GOP 대대의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날 방문한 GOP 대대 예하 0소초는 밝은 분위기 속에서 경계 임무와 여가 생활을 병행하고 있었다. 일부 장병들이 상황실에서 감시카메라를 주시하며 철책 경계를 하는 동안 다른 병사들은 생활관 앞에 설치된 농구장에서 활기차게 농구를 즐겼고, 체력단련장에서도 병사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운동에 열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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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사단 상승대대 장병들이 13일 일과 후 북카페에서 함께 공부를 하고 있다. 육군 제공


책을 좋아하는 병사들은 독서카페로 몰려들었다. 서가에는 고전과 소설, 4차 산업혁명 관련 서적, 국방부가 선정한 진중문고, 학습지 등이 가득 꽂혀있었다. 책상과 테이블, 의자가 구비된 카페 안에서 병사들은 독서 또는 공부를 하면서 자기계발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올해부터 일부 부대에서 시범적용중인 병사 대상 스마트폰 사용은 0소초에서도 이뤄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 위주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인터넷 강의나 운동 영상검색 등으로 사용 범위가 넓어졌다. 소초에 근무하고 있는 A 병사는 “가족과의 연락이나 드라마 시청, 운동의 종류나 방법 등을 검색하는데 (스마트폰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동료인 B병사도 “(스마트폰을 통해) 유튜브에서 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동료들과 함께 영어 공부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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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사단 상승대대 장병들이 일과후 스마트폰을 이용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육군 제공


병사들은 평일에는 오후 5시30분~10시, 휴일에는 오전 8시~오후 10시에만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장소는 생활관 등으로 제한되며, 통합보관된다. 이같은 특성을 고려해 스마트폰 사용 시간에만 데이터 무제한 방식의 요금제를 쓰는 병사들도 있다.

스마트폰 사용이 이뤄지면서 기존에 많이 이용됐던 사이버지식정보방이나 공중전화 사용은 감소 추세다. 소초에 근무하는 C병사는 “사이버지식정보방은 시간 등에서 제한이 많지만 공부를 하는 사람은 여전히 사용하는 것으로 안다”며 “공중전화 사용은 확실히 줄어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육군은 스마트폰 사용 과정에서 발생할 보안 문제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에는 ‘SECRET’이라 쓰인 특수 스티커가 부착되어 있어, 병사들은 영상통화를 해도 자신의 영상을 상대방에게 보낼 수 없다. 이 스티커를 제거하면 렌즈 부분에 ‘OPEN’이라고 표시가 되어 스티커 훼손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 도박 등 유해사이트 접속 금지도 강조되고 있다. 육군 관계자는 “대북 경계태세를 유지하면서 병영문화를 바꿔나가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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