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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패들턴’, 평범한 두 사내의 특별한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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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 드라마 ‘패들턴’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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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마크 듀플라스)과 앤디(레이 로마노)는 이웃에 사는 고독한 중년들이다. 서로를 제외하면 친구도 없고, 가족과도 소원한 두 사람은 함께 피자를 먹고 옛날 쿵푸 영화를 보고 가끔 운동을 하는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간다. 매일 똑같은 그들의 삶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마이클이 말기암으로 시한부 진단을 받으면서부터다. 남은 시간이 6개월이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이클은 더 고통스러워지기 전에 삶을 끝내기로 결심하고 유일한 친구 앤디에게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해줄 것을 부탁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패들턴>(Paddleton)은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두 사내의 특별한 마지막을 그린 작품이다. 미국 인디 영화의 서브 장르인 멈블코어의 대표주자 듀플라스 형제가 기획한 작품답게, 극도의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고유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불치병, 안락사 등 극적인 소재를 사용하는데도 담담한 일상성이 두드러지고, 평범한 대화 안에 남다른 성찰이 돋보인다. 이 작품의 개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 마이클과 앤디가 즐겨 하는 게임이자 제목이기도 한 패들턴이다.

패들턴은 원래 있는 경기가 아니라 마이클과 앤디가 패들볼을 변형해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공 놀이로 만든 게임이다. 라켓을 사용해 벽에 공을 튕기고 멀리 떨어진 드럼통 안에 집어넣으면 된다. 그 외에는 특별한 규칙도 종료 시점도 따로 없다. 혼자서 해도 무방하고 게임을 끝내고 싶을 때는 그냥 멈추면 되는 이 단순한 공놀이는 마이클과 앤디의 단조로운 일상, 더 나가 이 작품의 간결한 스타일과 그대로 닮아 있다. 하지만 버려진 자동차 극장의 스크린 앞에서, 자기들만 알고 있는 게임을 반복하는 마이클과 앤디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다 보면, 그 하잘 것 없어 보였던 삶이 누군가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시간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온다.

마이클과 앤디는 안락사 결정 뒤에도 이전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죽기 전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하나하나 실현하거나 특별한 여행을 떠나거나 하는 것은 그들의 스타일이 아니다. 마이클의 버킷리스트가 있다면, “난 이 일로 달라지는 게 없으면 좋겠어. 피자도 계속 만들고 영화도 계속 보고 패들턴도 계속하고 싶다”는 것뿐이다. 마이클과 앤디는 죽음도 삶과 다르지 않게 자신만의 방식대로 소화한다.

국내에서 ‘존엄사법’으로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나면서 임종문화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이달 초 <서울신문> 여론조사에서는 ‘우리나라에서도 안락사 허용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80%를 넘어서기도 했다. 이 신문은 이런 결과가 “사회 변화에 따른 독거 가구 증가와도 연관이 있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어떻게 살 것인가’ 못지않게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문제도 중요해진 세상이다. 기성 사회는 삶과 죽음 모두 특정한 기준을 정해놓고 거기에서 벗어난 방식은 이상하게 바라본다. <패들턴>은 삶도 죽음도 ‘정상’ 혹은 ‘표준’과 달랐던 두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그런 시선에 의문을 제기한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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