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이데아 2019 ② 학생 3인의 일상
학생 3명 통해 본 무너진 교실
학교=출석 찍으러 가는 곳 인식
공부 잘해도 수능 걱정에 불면증
친구 만나러 학교 간다는 초등생
“공부하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어”
‘목동 모범생’ 성진이…“250일만 더 하면 끝이다”
대형 입시학원 강사가 매일 아침 성진이에게 보내주는 '모닝 메시지'. 성진이는 이 메시지를 읽으며 잠에서 깨 학교와 학원, 집을 오간다. [성진 군 제공] |
서울 양천구 목동의 A고등학교에 다니는 성진이(18·가명)는 오늘도 오전 6시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가 오는 소리에 눈을 떴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대형 입시학원의 강사. 성진이는 매일 같은 시각, 그의 문자를 받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이 강사는 “오전 8시 40분에 시작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영역을 제대로 치르려면 6시에 일어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며 매일 학생들을 문자로 깨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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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이는 이른바 ‘전국권 등수’를 따질 정도로 학업 성적이 좋다. 하지만 내면 풍경은 다르다.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교재를 달달 외울 때는 이게 영어 시험인지 암기 시험인지 모르겠다. 외국 살다 온 애들도 학원 와서 나랑 똑같이 EBS 교재를 외우고 있다. 이게 뭐 하자는 건지, 회의감이 든다. 이제 250일 정도 남았다. 그때까지만 공부하고 손 떼자는 마음뿐이다.”
서울 양천구 목동엔 곳곳에 학원거리가 조성돼 있다. 강남·노원구와 함께 '교육 특구'로 손꼽히는 이 곳은 서울대 입학생이 많기로 유명한 '명문고'가 밀집돼 있지만 그 이면엔 공부에 고통받는 학생들이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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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그저 학원 수업 전에 거쳐 가는 장소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스타 강사 강의에서 최대한 앞자리에 앉기 위해 우리는 평일에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주말에는 새벽부터 줄 서는 수고를 마다치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학원에 가기 위해 학교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역설적인 생각도 들곤 한다.”
강의 등록을 위해 대기하는 학생들로 북적이는 학원. 성진이는 목동 유명학원에서 진행되는 '일타 강사' 수업의 경우 1~2시간 전부터 학생들이 줄을 서 있는 것이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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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발적 존버’가 된 정운이네 가족
영등포구 도림동 빌라에 사는 초등학교 6학년생 정운이(12·가명)는 아침 8시쯤 일어난다. 눈을 뜨면 부모는 이미 출근한 뒤다. 정운이 아버지는 건설 일용직, 어머니는 텔레마케터다. 이른 아침 출근해 오후 8시도 넘어 퇴근한다.
이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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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이는 수업 시간이 가장 괴롭고, 급식 시간이 가장 즐겁다. 오늘 수학 시간에는 원뿔의 정의에 대해 배웠는데, 칠판에 그려진 아이스크림콘 모양 그림 말고는 기억나지 않는다. 필기는 물론 하지 않는다. 가방 안에는 연필은 물론이고, 교과서도 없다. 책은 주로 집에서 라면 받침으로 사용한다.
학교에는 왜 가냐고 물었다. “학교 말고는 갈 데가 없고, 친구들도 모두 학교에 있으니까요. 또 밥도 주고, 놀 것도 있어서요.” 정운이는 “공부는 누가 하라고 한 적도, 해본 적도 없고, 재미도 없어서 내가 할 일이 아니다. 내가 공부한다고 뭘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고 말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도 정운이는 여전히 혼자다. 누워서 스마트폰을 하다가 돈이 있는 날에는 편의점에서 라면으로 저녁을 때운다. 엄마나 아빠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잠드는 날도 1주일에 두세 번은 된다.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다. 정운이가 두 살 되던 무렵 아빠가 다니던 회사가 망하고, 엄마가 벌이에 나서면서 정운이가 방치되기 시작했다. 한 달 수입은 250만~300만원. 넉넉하진 않지만, 극빈층도 아니다. 정운이 어머니는 “경제적 여력이 아니라 그냥 여력이 없어 이렇게 된 것 같다”며 “아이의 미래까지 고민할 여유가 없다. 하루하루 ‘존버(무조건 버틴다)’ 정신으로 산다”고 말했다.
(※청소년 심리 상담 전문가인 김현수 성장학교 ‘별’ 교장(정신과 전문의)이 다수의 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
성북동·대치동 ‘두 집 생활’ 민준이의 하루
올해 고3이 된 민준이(18)는 벌써 수능 걱정에 불면증을 앓고 있다. 민준이는 원래 서울 성북동에 살았지만, 2년 전 강남구 대치동으로 이사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성북동 집에서 지내고 어머니와 단둘이 소형 오피스텔을 얻어 생활하고 있다. 월~금요일에는 대치동살이를 하다가 주말에는 성북동 집으로 돌아간다.
서울 대치동의 학원가 풍경. 민준이는 월~금요일엔 대치동에서, 토요일과 일요일은 본가인 서울 성북동에서 지내는 '두 집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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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준이 어머니(41)는 매일 성북동과 대치동을 오간다. 이른 아침 민준이를 학교에 데려다준 뒤 성북동 집에 가서 집안일을 하고, 하교 시간에 맞춰 민준이를 픽업해 학원에 보낸다. 민준이 어머니는 원래 카페를 운영했지만, 입시 뒷바라지에 전념하기 위해 지금은 매니저를 고용했다.
강남과 강북을 오가느라 온 가족은 지쳐 있고, 어머니가 하던 일까지 미뤄둔 상황이 민준이에게는 큰 부담이다. “이 생활을 1년을 더 할 수는 없다. 무조건 수능 한 방으로 SKY에 가야 한다. 다른 옵션은 없다.” 민준이는 오늘도 이렇게 말하며 스스로를 다그친다.
탐사보도팀=유지혜·정진우·하준호 기자 wisepe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에서 [교실이데아 2019] 학부모 선호도 높은 초등학교, 서울대 진학률이 높은 고등학교를 인포그래픽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news.joins.com/article/2341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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