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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이슈 [연재] 중앙일보 '김식의 야구노트'

[김식의 야구노트] 20초 안에 공 던져라, 수비 위치 이동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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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에 또 혁신’ 내건 메이저리그

맨프레드 커미셔너 부임 후 박차

NBA보다 고연령 팬층에 위기감

로봇심판·7이닝제 등 파격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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롭 맨프레드(오른쪽) MLB 커미셔너가 지난해 3월 텍사스 -휴스턴 의 개막전에서 유스 아카데미에 참가한 어린 선수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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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이저리그(MLB)가 최고의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지난 1월 ‘2018년 MLB가 야구로 번 돈이 103억 달러(약 11조7000억원)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MLB 수입은 16년 연속 늘었다. 그런데 회계장부와 달리, 현장에서는 위기감이 감돈다. 매년 경기 규칙이 바뀌는 데다, 이에 따른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MLB 사무국 수장인 롭 맨프레드(61) 커미셔너가 그 중심에 있다.

2019 MLB 시범경기에서는 ‘20초 피칭 룰’이 적용되고 있다. 초구를 던진 투수는 2구째부터, 포수로부터 공을 받은 다음 20초 안에 던져야 한다는 규정이다. 지난해 MLB 투수들의 인터벌(투구와 투구 사이 시간)은 평균 24.1초였다. 맨프레드가 커미셔너로 부임한 뒤 마이너리그에서 20초 룰을 실험한 결과, 경기 시간이 15분 정도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

세 차례 시범경기에 등판한 류현진(32·LA 다저스)은 “20초 룰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부분의 투수는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투수의 루틴이 흔들릴 뿐 아니라, 시간이 아닌 이닝 단위로 승부하는 야구의 틀을 깨는 것이기 때문이다. MLB 사무국은 20초 룰을 올해 정규시즌부터 적용하기 위해 MLB 선수노조와 협의 중이다.

이 밖에 투수도 타석에 들어섰던 내셔널리그에도 지명타자 제도가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또 투수는 최소 3명의 타자를 상대해야 한다는 규칙이 생길 예정이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 유행하고 있는 탱킹(다음 해 신인 드래프트 상위 지명권을 얻기 위해 일부러 최선을 다하지 않는 전략)을 막기 위한 방안도 모색 중이다. 지금까지 와는 정반대로 승률이 높은 팀에게 상위 지명권을 줘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 자란 맨프레드는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1998년 MLB 사무국에서 일했다. 맨프레드는 버드 셀릭 전 커미셔너의 신임을 받았던 COO(최고운영책임자)였다. ‘셀릭의 오른팔’로 불렸던 맨프레드는 양적 성장을 이끌었던 셀릭과는 다른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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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미국야구 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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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프레드가 커미셔너에 취임한 뒤 처음으로 한 말은 “경기 시간을 줄여야 젊은 팬들이 늘어난다”였다. 2016년 기준 MLB 팬의 평균 연령은 57세로 미국프로풋볼(50세), 미국프로농구(NBA·42세)보다 훨씬 높다.

맨프레드는 “내가 10세 때인 1968년 8월 10일 뉴욕의 양키스타디움에서 MLB 경기를 처음 봤다. 우리 가족에게 최고의 여행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가족 단위로 야구장을 찾는 풍경은 이제 미국에서도 드문 일이 되고 있다.

온라인게임과 유튜브 등을 즐기는 유소년 팬들은 야구를 지루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는 게 맨프레드의 1차 목표였다. 이를 위해 공수교대 시간제한, 고의볼넷을 수신호로 대체, 감독·코치의 마운드 방문횟수 제한(경기당 6번) 등의 규칙을 도입했다.

맨프레드의 전략은 단지 물리적 시간 단축이 아니다. 내셔널리그도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하면 공격력이 좋아져 경기 시간이 늘어날 것이다. MLB는 KBO리그와 반대로 투고타저(投高打低) 심화로 고민하고 있다. 팬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맨프레드는 반대 옵션을 선택하는 것이다.

심지어 맨프레드는 “수비 시프트를 금지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5년 그가 처음 이렇게 말하자 “수비 위치는 감독·코치의 고유 권한이다. 커미셔너가 강제할 수 없다”는 반박이 나왔다. 그런데 지금은 기류가 달라졌다. 시프트가 없다면 수비수의 이동 시간을 줄일 수 있고, 득점력을 높일 수 있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맨프레드는 이 밖에도 미국 독립리그를 통해 7이닝 경기, 로봇심판 도입 등의 파격적인 실험도 진행 중이다.

미국 스포츠 중 가장 보수적이라는 MLB는 맨프레드 시대를 맞아 시끌시끌하다. 단기적으로는 규칙 개정을 통해 콘텐트를 개선하고, 장기적으로는 미래 고객을 확보하려는 몸부림이다.

MLB는 선수 노조와 협력해 2015년부터 3년간 3000만 달러(약 340억원)를 유소년 야구에 지원했다. 어린이들이 플라스틱 방망이와 공으로 쉽게 야구를 즐길 수 있는 ‘플레이볼’ 프로그램도 보급했다.

2017년에는 리틀야구 월드시리즈가 열리는 펜실베이니아주 윌리엄스포트에서 피츠버그-세인트루이스의 ‘MLB 리틀리그 클래식’ 경기가 열렸다. 리틀야구 선수들이 MLB 선수들과 직접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입장 수입을 상당 부분 포기하면서 오히려 400만 달러(약 45억원)를 들여 경기장을 보수해 이런 이벤트를 열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미국에선 야구 열기가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야구를 즐기는 미국인이 2015년 1370만 명에서 2018년 1590만 명으로 증가했다. 장기적 하락 추세에서 극적으로 반전한 것이다. 맨프레드는 호황에 만족하지 않고 냉정하게 현실을 진단했다. 끊임없이 혁신안을 내놨고, 이해 관계자들을 설득했다. 이런 노력이 쌓이면서 MLB의 명성은 높아지고, 수익은 늘어났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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