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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중·일 노골적 해상위협, 한반도 바다가 위태롭다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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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환경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9.19 남북 군사합의서 체결 이후 군사분계선(MDL)과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의 남북 군사적 긴장은 크게 완화됐다.

반면 한반도 인근 바다는 ‘세계의 경찰’ 역할을 포기하고 ‘자국 우선주의’로 돌아서려는 미국의 정책 기조와 중국, 일본 해군의 작전반경 확대에 따른 우발적 무력충돌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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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이지스구축함 서애류성용함이 2014년 하와이에서 열린 림팩훈련에 참가, 훈련해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해군력을 증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경제력과 군사력 측면에서 한국을 압도하는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무작정 건함(建艦) 경쟁을 벌일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전력증강 없이 한반도 인근 해역을 방어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전략적 입지가 넓지 않은 상황이다. 자칫하면 동아시아 바다를 잃어버린 채 망국의 길로 걸었던 조선 말기로 되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중국, 일본의 ‘파상공세’에 포위되는 한국

중국은 함정과 항공기를 동해로 파견, 무력시위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일본 후지TV는 방위성 발표를 인용해 중국 해군 052D급 구축함 1척과 054A급 호위함 2척이 같은달 23일 오후 9시쯤 대한해협을 통과했다고 밝혔다. 이들 함정은 같은달 16일 대한해협을 북상, 동해에 진입했다. 함교에 붙어있는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가 미국의 이지스 구축함과 비슷해 ‘중국판 이지스’로 불리는 052D급은 YJ-18 초음속 대함 미사일(사거리 540㎞), HHQ-9 대공 미사일(사거리 120㎞), CJ-10 지상공격용 순항미사일(사거리 1500㎞ 이상)을 장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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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해군 항공모함 랴오닝호가 시운전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휘젓고 다니는 중국 정찰기의 비행 영역은 갈수록 넓어지는 추세다. 지난해 8차례에 걸쳐 동해상까지 비행했던 중국 정찰기는 같은달 23일 울릉도와 독도 사이를 지나 울릉도 동북방 111㎞ 지점까지 북상했다. 중국 군용기의 KADIZ 진입은 모두 월말에 이뤄지고 있다. 우발적인 침범이 아닌, 정례적인 훈련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함정과 항공기를 함께 동원하는 작전을 정례적으로 실시, 동해에서의 영향력 강화를 꾀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동해에서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하면 북극과 북태평양에 대한 접근도 용이해진다.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일본의 배후를 공략, 일본 해상자위대를 견제하는 효과도 거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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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상자위대 프리깃함 기리사메(왼쪽)함과 아사유키함(오른쪽)이 미군과의 합동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일본은 한국 해군을 압박하며 남해와 동해상에서의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말 해상자위대 P-1 초계기가 동해상에서 조난당한 북한 어선을 구조하던 해군 광개토대왕함의 추적레이더에 조사를 당했다고 주장한 이후 일본 초계기는 지난 1월까지 수차례에 걸쳐 해군 함정 주변을 저공위협 비행했다. 한국보다 질적, 양적으로 우위에 있는 해상자위대를 앞세워 한국 해군을 연안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과 일본의 해상 무력시위로 한국 해군이 연안으로 밀려나면 한반도 유사시 제주도 남방 해상교통로는 물론 독도, 이어도 방어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돌파구 마련이 절실한 실정이다.

◆의지만으로는 부족…반전 카드 필요

정부는 해양주권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5일 해군사관학교 제 73기 졸업 및 임관식에 참석해 “주변국을 둘러보면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 4대 군사강국이 자국의 해양전략을 힘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해군력을 확충하고 있다”며 “정부는 해군의 역량이 강화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며, 해군과 함께 우리의 바다를 끝까지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와 군의 의지만으로는 한반도 주변 해역을 수호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해군이 기존에 운용중인 함정들 중 호위함과 유도탄고속함 등 상당수의 함정은 여전히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의 대북 군사대비태세 유지에 투입되고 있다. 먼바다에서 활동할 수 있는 구축함은 10척 미만으로, 중국과 일본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도 어려운 실정이다. 7조원을 투입해 국내 기술로 6척이 건조될 ‘미니 이지스함’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은 2020년대 후반에야 전력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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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상자위대 P-1 초계기가 미 해군 P-8A 해상초계기와 함께 활주로에 전시되어 있다. 미 인도태평양사령부 제공


반면 헬기모함 4척과 이지스구축함 6척, 구축함 30여척 등으로 4개 호위대군을 구성한 일본은 2023년까지 호위함을 47척에서 54척으로, 이지스구축함을 6척에서 8척으로 늘릴 예정이다. 아시아 태평양에서 가장 강한 해군력을 확보한 일본은 미국 외에는 견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일본이 아시아의 해상교통로를 장악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에 맞서 중국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1만t이 넘는 055급 구축함을 포함, 매년 10여척의 함정을 건조하고 있다. 하지만 항공모함 전투단 구성 및 운영을 포함한 첨단 장비 운용 능력과 함대의 전투 기술을 확보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중국이 인공섬을 만들며 남중국해를 자국의 내해(內海)로 만들려는 것도 일본에 뒤지는 해군력을 만회하려는 시도다.

일본도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연계를 꾀하며 남중국해 주도권 경쟁에 뛰어들 태세다. 7일 지지(時事) 통신은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 2척이 6일 베트남 다낭에 입항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2~5일에는 판 반 장 베트남 국방차관 겸 총참모장이 가와노 가쓰토시 일본 통합막료장(합참의장)의 초청으로 방일, 이와야 다케시( 방위상 등을 만나 중국 견제를 염두에 둔 해상안보협력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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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선이 지난 1일 미 해군의 호위를 받으며 소말리아 아덴만을 항해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남중국해가 갈등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면 한국도 해상교통로 방어를 위해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의 협공으로 한국 해군이 한반도 연안에 발이 묶인다면 중동에서 올 선박들을 지킬 수 없다.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필요성이 높아지는 대목이다.

해군은 창설 100주년이 되는 2045년까지 전쟁 억제력을 확보한다는 ‘해군 비전 2045’를 추진 중이지만 실효성은 미지수다. 중국과 일본도 같은 기간에 해군력을 강화할 것이므로 격차를 줄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항공모함을 비롯한 소수의 첨단 대형 함정과 다수의 소형함정으로 해군 구조를 구성, 최소한의 전쟁 억제력을 확보하자는 주장도 있었으나 중국, 일본 해상 전투 기술의 급속한 발달과 예산의 제약 등으로 실효성을 잃고 있다.

대안으로는 타국과의 해군 협력 강화가 거론되나 쉽지 않은 선택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해군력을 보유한 나라는 일본이다. 한일 군사협력 강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지만, 국민 정서와 상호 불신 등으로 실현 가능성은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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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대형수송함 독도함이 미 해군 강습상륙함 본험리차드함과 함께 동중국해에서 합동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미국과의 해상협력 강화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 해군의 팽창을 경계하고 있다.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있지만, 일본이 아시아의 바다를 완전히 장악하는 것도 잠재적인 불안 요소다. 한미 해상안보 협력을 강화, 중국과 일본을 견제하면 동아시아 해군력은 힘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 갈등과 분쟁의 위험도 낮아진다.

이를 위해서는 평상시에 한반도 인근 해역에서 다양한 종류의 합동훈련을 강화해야 한다. 한미 해군 인적교류와 기술 공동개발 등도 필요하다. 남북 화해 기류와 별도로 미국과의 대규모 해상연합훈련 등을 실시, 중국과 일본의 해상위협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군 소식통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있는 상황에서 한미 동맹은 훌륭한 억제력”이라며 “해군력 증강과 함께 한미 연합 전력을 과시하는 등의 다각적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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