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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처음처럼’도 안 마신다는 공안검사 출신 황교안의 ‘좌파 저지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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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막전막후 255

80년대 독재·기득권 수호 시각으로 현 정국 인식하는 듯

“좌익척결 우익보강” 외치며 ‘처음처럼’ 소주도 안 마셔

‘대화와 타협의 정치’ 사라지고 여야 극한대치 불 보듯

검찰개혁·공정경제·선거제도 무산 위기···개혁연대 필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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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3월 하늘이 미세먼지로 뿌옇습니다. 국내외 정세도 캄캄합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은 결렬됐고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는 어린아이들을 인질로 붙잡고 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먹구름을 하나 더 불러왔습니다. 황교안 대표는 4일 아침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했습니다. 전당대회 다음날인 2월 28일 상견례에 이어 사실상 첫 번째 최고위원회의를 연 것입니다.

황교안 대표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앞으로 자유한국당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지 비전과 운영 방향을 밝혔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먼저 제가 몇 가지 말씀드리도록 하겠다. 이제 취임한 지 며칠 지났지만 자유한국당의 앞으로의 비전과 운영 방향에 대해서 간단하게 큰 방향만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다.

저는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주력해야 될 가장 중요한 일은 첫째는 경제를 살리는 일이다. 둘째는 민생을 일으키는 일이다. 셋째는 우리 안보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 당에 주어진 현실이고, 가장 큰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이런 사명을 완성하기 위해서 첫째 우리 자유한국당이 싸워 이기는 정당이 되도록 하겠다. 둘째는 대안을 가지고 일하는 정당이 되도록 하겠다. 셋째는 미래를 준비하는 정당, 이 세 가지 목표를 설정해서 세부 과제를 몇 가지 말씀을 드림으로서 큰 틀의 말씀을 오늘 대신하고자 한다.

첫째는 싸워 이기는 정당이 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 첫 번째 과제는 좌파독재 저지 투쟁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것을 위해서 필요한 경우에 조직도 만들고 지속적으로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이 정부의 좌파독재를 끊어내는 이런 노력들을 가열차게 하겠다.

둘째는 문재인 정권의 실정을 국민들에게 바로 알리는 그런 과제를 수행하겠다. 이를 위해서 문재인 정권의 ‘경제실정백서위원회’를 출범시켜서 각종 경제지표의 심층 분석은 물론 광범위한 현장실태 조사와 또 경제주체별 인터뷰 등을 통해서 이 정권의 경제 정책의 폐해를 낱낱이 고발할 것이다. 이것을 토대로 해서 ‘대국민보고대회’를 열고, 구체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하겠다.

셋째는 싸워 이기는 정당을 위한 과제, ‘강한 자유한국당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을 과감하게 개혁하겠다. 그래서 정책 역량을 강화하는 여러 소그룹, 공부 모임도 활성화해 나가고자 한다.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당원을 교육시키는 시스템을 구축해서 우리 당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소통전문가, 전략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

둘째는 대안을 가지고 일하는 하는 정당을 만들겠다. 이것을 위해서는 경제 대안, 안보 대안, 민생 대안 등으로 간단하게 설명 드리겠다. 경제 대안 정당이 되기 위한 과제로 ‘2020 경제 대전환 프로젝트’를 즉각 추진할 계획이다. 현 정권의 소득주도성장과 좌파 포퓰리즘 경제 정책에 맞서서 우리 당의 새로운 성장 정책과 또 구체적 실현 방안을 제시할 것이다. 또한 성장과 민생의 균형 발전 방안도 함께 가급적 조속히 찾아내도록 하겠다.

아울러서 문재인 정권의 굴욕적 가짜 평화 정책을 대체하는 당당하고 투명한 평화 정책을 안보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완전한 북핵 폐기까지 가는 여러 길들이 있다. 거기까지의 평화 로드맵을 만들고 이에 맞춰서 이 정권의 안보 무장해제 저지 투쟁을 벌이겠다. 정당 차원의 한미동맹 강화 외교에도 힘을 쏟는 우리 자유한국당이 되도록 하겠다.

국민의 힘든 삶을 해결해 드리는 민생 대안도 마련해 나가겠다. 먼저 미세먼지 대책이다. 대중국 외교 노력을 포함한 특단의 미세먼지 대책을 마련해서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그런 대안을 만들어 가도록 하겠다. 현장 중심의 ‘중산층·서민경제 특별위원회’를 만들어서 민생 정책을 발굴하고, 실천 방향을 제시하도록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어 가겠다. ‘중소기업 근로자특위’ 또 ‘청년 일자리 시스템’ 등 정책 사각지대를 커버하는 족집게 대책들도 운영해 나가도록 하겠다.

세 번째는 미래를 준비하는 정당이다.

이 과제의 첫 번째 과제는 청년과 여성을 우리 정당에서 정말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하게 하는 청년과 여성을 위한 정당으로 혁신하는 것이다. 입당 경로를 다양화하고, 당이 헤드헌터가 되고 기획사 역할까지 담당해서 청년과 여성인재를 발굴하고 당의 기둥으로 세워감으로써 우리 자유한국당이 함께 일하는 이런 정당이 되도록 하겠다.

두 번째 과제는 4차 산업혁명과 블록체인 시대에 걸맞은 개방형 시스템 정당을 만들어 가도록 당을 변화시켜 나가겠다. 블록체인 기반 정당 시스템을 더욱 확장해 나가고 또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전문가, 정말 우리 목표는 굉장히 크지만 많은 사람들을 당에 영입해서 적극적으로 미래를 준비해 나가도록 하겠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과제는 총선과 대선 승리를 준비하는 그런 정당이 되도록 하겠다. 당의 운영 시스템을 신속 대응, 민심 대응, 현장 대응 중심으로 과감하게 개편해서 내년 총선에 대비해 나갈 계획이다. 최고위원회 현장 회의 이것을 정례화하고 또 상임위별 현장 점검을 상시화하고, 우리 목표는 예를 들면 ‘100만 서포터스’를 확보해서 같이 하는 이런 일꾼들을 만들어 가는 노력들도 하고자 한다. 이들과 함께 국민 속으로 들어가서 당 운영을 정착시켜 나가도록 하겠다.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서 수권 정당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겠다.

지금 대략적으로 앞으로 우리 정당의 운영 방향, 우리는 어떤 정당이 될 것인가에 대한 모습을 그렸지만 이런 큰 비전을 중심으로 해서 앞으로 정말 나라와 국민을 살리기 위한 일하는 정당, 말이 아니라 행동하는 정당, 변화시키는 정당, 그러면서도 우리의 목표는 큰 미래를 향해가는, 국민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정당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을 해 나가도록 하겠다. 추가되는 여러 목표들과 또 과제들은 기회가 닿는 대로 추가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다.



어떻습니까? 내용이 꽤 길지만 핵심은 문재인 정부를 ‘좌파 독재’로 규정한 것입니다. 자유한국당의 당면 과제로 ‘좌파독재 저지 투쟁’을 선언한 것입니다.

저는 회의 직후 황교안 대표의 발언을 읽어보고 약간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설마 했던 걱정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황교안 대표의 정체성은 ‘공안검사’입니다. 황교안 대표는 노태우 정부 공안정국 시절인 1980년대 말 서울지검에서 공안부 검사를 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도 대검찰청 공안 3과장, 대검찰청 공안 2과장, 서울지검 공안 2부장을 지냈습니다.

아, 또 있네요. 법무부 장관을 하면서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청구한 것도 공안검사의 이력에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히 ‘공안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안(公安)은 ‘공공의 안녕과 질서’라는 의미입니다. 공안검사는 체제의 수호자입니다. 그러나 독재정권은 체제와 정권을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 시절 공안검사는 체제 수호를 명분으로 정권을 수호했습니다.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 경찰에서 조작한 간첩 사건을 그대로 기소하고 재판에서 유죄를 받아냈습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에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노동법 위반 혐의를 걸어 수많은 학생, 노동자들을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법률가가 아니라 정권의 하수인이요, 기득권 세력의 수호자였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정부 시절 공안검사들은 그 나름대로 자부심이 꽤 강했습니다. 검사 중에서 실력이 있는 사람들을 공안부로 발탁했습니다.

서열도 공안부가 가장 높았습니다. 서울지검의 경우 1차장이 공안, 2차장이 형사, 3차장이 특수를 맡았습니다. 참고로 지금 서울중앙지검에서는 1차장이 형사, 2차장이 공안, 3차장이 특수 분야를 담당합니다.

당시 공안검사들은 대체로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1980년대 어느 연말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들이 서울지검 출입 기자들과 서초동 음식점에서 송년회를 빙자해 폭탄주 대결을 벌인 일이 있습니다. 맥주잔에 양주를 따라서 얼음통에 담근 뒤 맥주를 가득 채워서 한 사람이 한 잔씩 마셨습니다. 안강민 공안 1부장, 최병국 공안 2부장 시절입니다.

서울지검 출입 기자였던 저는 국가보안법을 놓고 공안검사들과 말싸움을 자주 벌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지 않고 어떻게 ‘적을 이롭게 할 목적’을 알 수 있느냐는 것이 저의 근본적인 의문이었습니다. 공안검사들은 “그 사람이 살아온 행적과 그가 한 행위로 얼마든지 목적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공안검사들의 주장이 궤변이라고 생각합니다.

황교안 검사는 공안부에 있으면서도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고 말수가 별로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냥 위에서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는 성실한 검사였습니다. 특히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신앙이 깊은 검사로 제 기억에는 남아 있습니다.

그랬던 ‘황교안 검사’가 세월이 흐른 뒤 법무부 장관이 되는 것을 보고 저는 별로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한 사람이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라면 공안검사를 법무부 장관에 앉힐 수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국무총리가 되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는 것을 보고 더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가 자유한국당에 입당해 대표에 출마해서 당선되는 것을 보고 정말로 놀랐습니다.

저는 검사도 얼마든지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적 마인드를 갖췄기 때문입니다. 애국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독재나 권위주의 정권 시절 공안검사 시각이나 기독교의 선과 악 이분법적 사고로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은 좌파와 우파, 흑과 백, 하나님과 악마로 구분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더구나 공안검사들은 경찰과 안기부의 고문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피의자가 간첩이나 사상범이라는 이유로 법률가로서의 양심을 포기했던 사람들입니다. 폭탄주를 돌리며 ’좌익척결, 우익보강’이라는 구호를 외치던 사람들입니다. 소주 ‘처음처럼’ 글씨를 신영복 교수가 썼다는 이유로 ‘처음처럼’ 소주를 마시지 않던 사람들입니다.

황교안 대표가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꺼낸 ‘좌파독재’라는 한 마디는 황교안 대표가 가진 인식의 한계에 대해 많은 것을 드러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3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공안검사 황교안’이 돌아온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을 제1야당 대표가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을, 문재인 정부의 국정을 ‘좌파’, 또는 ‘좌파독재’라고 규정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국민 대다수는 문재인 정부를 ‘좌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념적으로는 ‘중도 보수’, ‘중도’, 많이 가봐야 ‘개혁 진보’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부를 좌파라고 공격하는 사람들은 ‘기득권 세력’입니다. ‘태극기 부대’입니다. ‘수구 세력’입니다. 황교안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을 ‘좌파’라고 부름으로써 스스로 기득권 세력, 태극기 부대, 수구 세력이 된 것입니다.

황교안 대표는 지난 2월 28일 최고위원회에서 상견례를 할 때만 해도 온건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통합을 얘기했고 민생경제를 얘기했습니다.

그랬던 황교안 대표에게 며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3월 3일은 일요일, 기독교의 주일이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황교안 대표도 예배를 보고 기도를 하고 목사님들을 만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좌파독재’라는 말이 튀어나온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좌파라는 하나님의 계시라도 받은 것일까요?

어쨌든 이제부터가 걱정입니다. 황교안 대표는 4일 문희상 국회의장이 마련한 초월회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5일에는 봉하마을에 가서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에 참배합니다. 하지만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황교안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을 앞으로 어떻게 대할까요? ‘좌파독재’ 논리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좌파독재의 수괴’입니다. 정국은 ’강 대 강’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큰일입니다. 검찰개혁을 위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 및 검경수사권 조정, 국정원 개혁, 공정경제를 위한 공정거래법 및 상법 개정, 선거제도 개편 등 대부분의 현안이 물 건너간 것 아닐까요? 혹시 청와대에서 여야 대표 회담을 요청해도 황교안 대표가 거절하는 것 아닐까요?

황교안 대표가 ‘좌파독재 저지 투쟁’을 자유한국당의 비전과 운용 방향으로 설정한 이상,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의 선택지는 확 좁아질 것 같습니다. 당장 개혁입법 연대를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선거법 개정안과 개혁입법을 묶어 국회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자유한국당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설적으로 ‘패스트 트랙’이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복원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얘깁니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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