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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사우디 왕실의 수상한 투자…英언론에 손 뻗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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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출신 개인 투자자가 영국 일간지 지분을 잇달아 다량 매입하고 나섰다. 지분 매입자가 현재 사우디 정부 소유 투자회사에서 일하는 직장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우디 왕실이 우회적으로 언론 인수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26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사우디 출신 개인투자자 술탄 모하메드 아불리다엘(42)은 지난해 말 런던에서 발행되는 무가지 ‘이브닝 스탠다드’의 주식 30%를 최대주주 레베데프홀딩스로부터 3300만 달러(약 369억 원)에 사들였다. 이브닝스탠다드는 1827년 런던에서 창간된 신문으로 발행부수는 86만 부 정도다.

이에 앞서 아불리다엘은 2017년에도 레베데프홀딩스가 보유했던 일간 인디펜던트의 지분 30%를 인수했다. 레베데프홀딩스는 러시아 정보기관 KGB 출신 사업가 알렉산더 레베데프가 운영하는 회사다.

아불리다엘은 현재 사우디 정부의 투자은행 NCB캐피털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아랍뉴스 등 신문을 발행하는 사우디 리서치앤드마케팅그룹(SRMG)의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SRMG는 지난해 아불리다엘이 지분을 사들인 인디펜던트와 아랍어, 터키어, 페르시아어 등 4개 언어의 웹사이트 구축 계약을 체결했다.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발표한 지난해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사우디는 조사 대상 180개 국가 가운데 169위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사우디 왕실이 간접적인 투자로 유력지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왕실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의 기사에 일정 부분 개입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다.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살해당하자 인디펜던트 임직원들은 사우디의 영향력 행사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기도 했다.

아불리다엘이 왕실 출신은 아니며 상속받은 재산으로 지분을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절대 군주국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돈세탁 장소로 널리 알려진 케이만군도에 세운 회사를 통해 신문사 지분을 인수한 것도 이런 의혹을 키우고 있다. 폴 페럴리 영국 하원의원은 “이브닝스탠다드의 소유구조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투자자와 해당 매체 경영진 등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카이로=서동일 특파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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