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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방통위원장 해명에도 ‘https 차단’ 반발 끊이지 않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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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2월 16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https 차단 정책 반대 촛불시위의 참가자들. /유튜브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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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NI 차단’(이하 https 차단)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집단적 항의까지 이어지는 형국이다.

지난 2월 16일 서울역 앞에서 약 300명(주최 측 추산)이 참여한 촛불시위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인터넷 검열은 시대를 역행하는 일’, ‘야동 차단 내걸고 접속기록 들여다보겠다고?’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집회를 열었다.

규제를 반대하는 청와대 청원도 25만명을 넘겼다. 2월 21일 이효성 방통위원장이 직접 나서 “꼭 필요한 조치만 취할 것이며, 더 나은 방법에 대해 의견을 주시면 경청하고 논의하겠다”고 밝혔지만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정책 발표 후 방송통신위원회는 여론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설명자료를 내고 “해외 불법사이트 차단은 통신·데이터 감청과 무관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방통위가 이번에 도입한 SNI(Server Name Indication) 필드영역을 활용해 접속을 차단하는 방식은 ‘암호화된 통신내용을 열람 가능 상태로 전환하는’ 감청과 무관하다는 설명이다.

■ https 차단 1년 전부터 준비했건만…



https 보안접속 차단사실이 확인된 것은 지난 2월 11일이지만 관련 당국은 오랫동안 준비해 왔다.

<주간경향>이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방통위 개인정보보호윤리과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정보문화보호팀 사이에 오간 공문을 보면 지난해 4월 26일 방심위는 https 보안접속 차단을 시행하는 경우 종전의 차단 안내 페이지(warning.or.kr)에 연결되지 않는 것을 ISP업자(KT, SK 등)들로부터 확인해 방통위가 연결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방심위 측은 지난주 <주간경향>과 통화에서 “https 차단을 하면 아무런 연결표시 없이 접속끊김만 나온다”는 <주간경향> 지적에 대해 “현재 종전의 워닝페이지와 연결해 나올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답했다. 입수 공문으로부터 새로 밝혀진 것은 1년 가깝게 이 작업은 진척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악화된 여론에 방통위는 감청과 무관하다는 내용을 담은 설명자료를 내놨다.

실제 방통위의 이번 조치가 헌법적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는지 여부는 헌법재판을 받아봐야 한다.

그런데 자료가 제대로 설명을 내놓지 않은 부분은 또 있다.

설명 자료 말미엔 ‘불법사이트 접속 차단에 대한 해외 현황’이라는 자료가 붙어 있다.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32개국, 아시아, 남미, 호주 등 국가들도 법원 명령에 의해 접속차단하거나, 인터넷서비스 제공사업자에게 접속차단을 요구하는 법적 의무가 있다고 되어 있다. 자료에는 이 정보의 정확한 출처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

“MPA 캐나다에서 캐나다 통신규제기관인 CRTC에 제출한 보고서(2018년 3월)”라고만 적혀 있다.

<주간경향>은 탐문 끝에 해당 보고서를 입수했다.

보고서에 언급된 통신사업자에게 차단 요구가 시행된 적이 있는 나라는 42개국이었다.

그런데 차단요청 사유 대부분은 국내와 사뭇 달랐다.

대부분 copyright act, 즉 저작권 관련이었다.

게다가 정부기관이 인용할 만한 공신력 있는 문서라고 보기도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캐나다 정부는 통신의 자유를 내세우면서 접속차단 조치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보고서의 요지는 이렇다. 전세계 42개국에서도 저작권 위반과 관련해 문제되는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으니 캐나다영화협회(MPA Canada)가 정부도 관련 조치를 도입해달라는 민원 건의 문서다. 캐나다 정부가 그 민원을 받아들였을까. 받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관계자는 개인 견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사실 저 문서는 주로 저작권 침해행위를 둘러싼 효과적인 대응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것인데 방통위의 이번 조치를 두고 벌어지는 논란은 ‘사생활 침해’에 대한 것이어서 사뭇 다른 맥락이다. 인용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실제 보고서를 둘러싼 논쟁이 그 후 여러 달에 걸쳐 진행됐다.

보고서 초안에 대해 캐나다 오타와대 법학과 마이클 가이스트 교수는 “문서에서 차단조치로 저작권 침해행위가 줄어들었다고 하는데 행위의 정의가 불분명하며, 캐나다의 디지털 비즈니스 모델 중 온라인 비디오 서비스는 현재까지 성공적인 모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나 법원 명령에 의한 웹사이트 차단은 합법적인 콘텐츠, 웹사이트, 서비스에 대한 ‘오버블로킹(over-blocking)’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저작권 침해행위를 줄이기 위해 행정명령 또는 법원 판단으로 사이트 차단조치를 취하는 것은 실효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많다는 지적이다.

방통위가 인용한 캐나다 MPA 보고서에는 다른 흥미로운 대목도 담고 있다.

이른바 저작권 침해로 차단된 악명 높은 사이트 목록이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 최소 3개 국가에서 19개 국가까지 차단된 적이 있는 유명 저작권 침해 사이트들이다.

이들 사이트는 한국에서는 어떤 취급을 받았을까.

<주간경향>은 하나씩 접속해 보았다.

토렌트 사이트(파일공유 사이트)로 방심위에서 2014년 차단조치한 비트스눕(BitSnoop)이나 파이어릿베이(PirateBay)처럼 국제적 논란을 일으키고 오래전 사라진 2~3개 사이트를 제외한 대부분은 접속되었다.

<주간경향>은 이들 사이트 중 하나에서 최근 개봉된 영화 <주먹왕 랄프2>의 실시간 영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방통위는 “심의와 관련된 사항은 방심위의 소관”이라고 넘겼다.

박종훈 방심위 저작권침해대응단 전문위원은 “방심위의 차단조치는 권리침해 신고를 누군가 했을 때 심의를 거쳐 이뤄진다”며 <주간경향>이 확인을 요청한 사이트의 경우 “저작권자나 콘텐츠 제공 사업자 중 누구도 신고한 적이 없기 때문에 한 번도 지금까지 심의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 저작권 침해 사이트, 왜 방치됐나



이번 조치 이후에도 불법영상들이 유통되던 기존의 유명 한글 토렌트 사이트들은 건재한 편이다.

방심위는 지난 2월 11일 총 895개 사이트를 차단했다고 밝혔다.

앞서 방통위 설명자료에 따르면 그 중 대부분은 도박 관련 사이트(776개)이고 다음은 음란사이트(96개)였다.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2월 21일 청와대 청원 답변에서 “성인이 합법적으로 무엇을 하든, 무엇을 보든, 국가가 관여해서도 안 되고, 관여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불법도박은 다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해자를 지옥으로 몰아넣는 불법촬영물도 다르다. 삭제되고 차단되어야 한다”고 했다.

경향신문

https 검열 반대 청와대 청원에 대해 2월 21일,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유튜브에 개설된 ‘대한민국 청와대’ 코너에 출연해, 답변하고 있다. /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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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치에 왜 이렇게 거센 반발여론이 나오는 것일까.

불법도박을 못하고 불법촬영물을 못보게 돼서?

앞서 악명 높은 사이트들을 ‘음란성’이란 잣대로 들여다보면 역설적으로 건전(?)하다.

한국에서 불법으로 되어 있는 음란물, 포르노가 외국에서는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발은 한국 정부의 음란물 단속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포르노 영상은 처음부터 불법이었다.

포르노 영상의 유통은 웹하드→토렌트→실시간의 순으로 중심축이 이동해 왔다.

토렌트를 통한 다운로드 등으로 공유·소지는 과거 아동청소년법 위반으로 처벌받았다.

반면 실시간 감상의 형태는 적발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

그렇게 이용되던 ‘실시간’ 사이트들이 이번 조치에 포함되어 전면적으로 막힌 것이다.

오병일 진보넷 활동가는 “행정기관으로서 방심위의 차단조치와 구분해 불법성 여부 판단은 사법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도박이나 몰카처럼 특정인에게 피해를 주는 영상을 불법으로 막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며 “문제는 현재 방심위가 근거를 삼는 관련법에서 종전의 ‘19금’ 에로영화 수준을 넘어서는 모든 음란물을 해외는 불법이 아닌 데 비해 한국은 불법으로 규정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보통신 자유운동단체 오픈넷의 이사를 겸하고 있는 강정수 메디아티 대표도 “음란물과 성폭력물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며 “표현의 자유 침해로 귀결될 수 있는 심의를 시스템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검거하는 경찰력을 강화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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