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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한국엔 주모, 英엔 에일 와이프 [명욱의 술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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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고급 주막의 모습을 그린 신윤복의 주사거배. 문화재청 제공


한국의 사극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술 장인이 있다. 때로는 푸짐한 국밥과 막걸리를 갖다 주기도 하며, 정감 있는 느낌을 전달했던 캐릭터, 바로 주막의 ‘주모’다. 흥미로운 것은 유럽에서도 주모와 유사한 직업이 있었다.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영국을 중심으로 가장 많이 활동한 영국의 주모, ‘에일와이프’(Alewife)다. ‘에일’(ale)은 본래 상면 발효를 한다는 영국식 맥주, 그리고 ‘와이프’(wife)는 여성에 대한 일반명사다. 즉 ‘술을 빚는 여성’으로 우리의 ‘주모’(酒母)라는 어원과 굉장히 흡사하다. 그리고 이 에일와이프가 근무하던 곳은 ‘에일 하우스’로 맥주를 만들고, 역시 숙박업을 제공했던 ‘주막’과 같은 곳이다.

9세기부터는 영국 전역에 에일하우스가 생기게 되는데, 그 이유는 교회와 수도원이 세워지고 성지순례가 이루어지면서 순례자의 이동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그 통과지점에는 에일하우스가 있었다. 주막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한양으로 통하는 길목인 문경새재, 추풍령, 죽령 등에는 언제나 주막거리가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주막과 에일하우스의 매출을 주모와 에일와이프가 좌우했다는 것이다. 정선 아리랑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술이야 안 먹자고 맹세를 했는데, 안주 보고 주모 보니 또 생각나네.” 주모의 능력에 따라 주막의 매출이 좌지우지된 것을 알 수 있다. 영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좋은 술을 잘 빚고는 에일와이프는 그 맛과 향으로 남성들에게 아이돌과 같은 인기를 얻기도 했다.

14세기 후반, 국왕 리처드 2세는 이러한 에일하우스에 간판을 달라고 했는데, 이때 간판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빗자루’였다. 당시 청소는 여성의 업무라는 인식이 있었고, 술을 빚는 데 청결을 유지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하지만 산업이 커지고 호황기를 맞자 술을 잘 빚는다는 존경과 인기는 질투로 뒤바꿔버린다. 거기에 맥주를 빚는 수도원과 경쟁을 하는 구도가 되다 보니 에일와이프는 조금씩 마녀의 모습으로 그려져 버리고, 빗자루가 그들의 상징이 된 것이다. 이렇게 수 세기를 향유한 에일 와이프는 주류산업이 노동집약적이며 산업화 시대로 이어지면서 천천히 그 명맥이 사라지게 된다.

한국의 주막도 상징이 있었다. 술을 거르는 소쿠리인 ‘용수’를 걸어놓기도 했고, ‘갓모’를 씌우기도 했다. 상업이 발달한 19세기까지 24시간 주막인 ‘날밤집’, 서서 마신다는 선술집 개념의 ‘목로주점’, 티켓 판매대처럼 팔뚝만 나와서 술을 따라준다는 ‘팔뚝집’ 등 다양한 주막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주막에서 술을 빚지 못하게 됨에 따라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음식과 술, 숙박이 모두 함께 있는 한국형 호텔 문화가 여기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가까운 일본은 이러한 길목에 료칸이라는 시스템으로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러한 주막 문화가 사라진 것이 지극히 아쉬울 뿐이다.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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