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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김부겸 “아직 노무현 발뒤꿈치도 못 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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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대가 만난 사람]

정치인으로 돌아가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인터뷰





대구의 정치인 김부겸은 늘 부산의 노무현과 비교된다. 엎치락뒤치락하는 10여 명의 차기 대선 주자 반열에도 그의 이름은 꾸준히 올라온다. 1년 6개월 만에 행정안전부 장관에서 정치인으로 다시 돌아가는 김부겸을 만났다. 곧 있을 개각 때 교체 대상으로 거론 된다. 그는 고 노무현 대통령과 자신을 맞세우는 질문에 “노무현은 노무현이고 김부겸은 김부겸”이라면서 “대구의 김부겸은 아직 부산 노무현의 발뒤꿈치도 못 따라간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소신을 말할 때도, 대선 주자로서 부족함을 인정할 때도, 그의 입은 시원시원했다. 인터뷰는 2월 19일 오후 서울 세종로의 정부서울청사 행정안전부 장관실에서 진행했다. 김부겸은 ‘서울의 봄’이 열린 1980년 5월 1만여 명이 모인 서울대 광장에서 운동권 복학생으로 격정적인 연설을 하면서 첫 명성을 얻었다. 고 제정구 의원을 정치적 스승으로 삼아 제도정치권에 들어 와 2000년 이후 경기도 군포에서 세 차례 당선됐고, 2012년 민주당 사상 최초의 대구·경북(TK) 출신 직선 최고위원이 됐다. 탄탄한 경기 군포를 버리고 2012년 대구로 내려오면서 정치적 승부수를 띄운다. 대구 국회의원과 대구시장 선거에서 두 차례 낙선한 뒤, 2016년 대구 수성구에서 첫 더불어민주당의 깃발을 꽂는 데 성공한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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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두루 좋다는 그게 문제

곧 정치인 김부겸으로 돌아간다. 대구에서 김부겸은 실력 있고 깨끗하다는 탄탄한 평판을 얻었더라. 보수·진보 양쪽 두루두루.

“정치인이라는 게… 두루 다 좋다는 게 그게 문제지.”

부산의 노무현과 비교하면서 대선 주자로는 2% 부족하다고들 꼬집는다.

“솔직히, 나 자신이 아직 대권 주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교하는 것은 지나치게 과도한 기대다. 정말 부담스럽다. 노 전 대통령은 타고난 열정 덩어리고 치열했다. 자기 앞에 놓인 난관을 극복하면서 한 발짝 한 발짝 올라 간 사람이다. 나는 시류를 타는 행운을 누렸다. 엄중하게 책임지고 문제를 푸는 경험도 모자란다. 책임다운 책임을 지는 일은 행안부 장관이 처음이다. 정치 운명을 걸어본 것도, 수도권 3선 의원을 던지고 대구에서 다시 시작한 것 정도다. 노 전 대통령의 열정과 책임감, 불굴의 의지, 그런 것을 내가 흉내 낼 수 없다.”

(대구 사람들이) 김부겸의 그런 겸손함을 좋아하면서도, 더 과감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김부겸을 아쉬워한다.

“나는 대구·경북에서 아직 12분의 1 내 지 25분의 1(대구 지역구 12개, 경북 지역구 13개)에 불과하다. 티케이(TK) 지역에 선 박정희에서 박근혜로 이어지는 역사의 일체감이 여전히 뿌리 깊다. 대구에서 도 2개 이상의 당이 유의미하게 경쟁하는 시대를 이제 열어가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부산·경남의 민주주의 세력을 굳건한 한 축으로 되살려냈다. 그런 점에서도, 대구의 김부겸은 부산의 노무현 발뒤꿈치도 못 따라간다고 생각한다. 노 전 대통령처럼 나도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정치적 대의를 지향한다. 하지만 정치하는 스타일은 많이 다르다. 노 전 대통령이 지역주의에 직접 몸으로 맞서 싸웠다면, 나는 대화와 설득으로 대구 시민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내가 해야 할 정치는 ‘통합의 정치’이다. 김부겸의 정치철학 때문에 김부겸의 상품성 이 안 만들어진다면 어쩌겠나. 상품이 되기 위해 정치철학을 바꿀 수도, 갑자기 싸움꾼이 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김 장관은 자신의 정치적 선배로 두 사람을 존경한다고 했다. “한 분은 빈민 운동을 이끌었던 고 제정구 의원이다. 그분은 도인 기질이 있었다. 끝없이 자신을 명상하고 돌아보고…. 제정구의 정신은 나를 비움으로써 얻는, 가짐이 없는 자유였다. 다른 한 분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제도정치권에 들어온 뒤 20여년간 같이 지냈다. 노무현은 세상의 부정과 불의에 분노하고 끝내 굴복하지 않는, 그런 인간의 정신을 보여주었다. 두 분은 전혀 다르면서, 나한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제정구 전 의원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렇다. 벌써 20년이 됐다. 2월 9일 경남 고성 묘소에서 300명 이상이 모여 추모식을 했다. 어느 신문에 ‘제정구가 이제 역사가 됐다’고 썼더라. 우리 옆의 형님 같던 제정구가…. 20주기 때 제정구와 함께했던 사람들을 보면서, 한 인간의 아름다움이란 이런 거구나 싶었다.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면서, 열정으로 사람들을 감염시켰던 노무현은 그와는 또 다른 세계였다.”

서울에선 뿌리를, 대구에선 당을 보지 않으려 얼마 전 지역신문에 ‘신공항 광풍이 부는데 아무 입장 표명이 없다’고 김 장관 등을 비판하는 보도가 나갔더라. 김부겸의 확실한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대구의 정서와 기대가 깔린 것 아닌가.

“장관직에 있으면서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그래서 조심스럽다. 다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내 소신이 분명하다. 정부가 바뀌었다 하더라도 이미 합의된 원안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대구 통합공항의 경북 군위 이전은 김해공항 확장을 전제로 한 것이다. 만약 김해공항 확 장안이 깨진다면, 그게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힘을 주어서) 이건 분명히 하자. 내 입장은 기존 합의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김 장관과 결이 다른 사람이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 위원장이 된 것을 지적하는 소리가 들리더라.

“한 정치인이 한 지역을 배타적으로 장악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젠 당원들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 설사 내 생각과 다른 분이 뽑혔더라도, 당원들의 선택이라면 그분을 중심으로 잘 꾸려지도록 도와주는 게 내 역할이다. 어떻게든 내가 옳다고 밀어붙이는 것은 이제 아니다.”

거칠게 말하면, 때로는 문재인 대통령과 맞짱뜨는 모습을 대구 사람들이 봤으면 하는 것 같다.

“나설 일이면 당연히 나서겠다. 하지만 대구·경북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대통령의 선택 중에 그렇게 잘못된 게 있는가, 되물어보고 싶다. 당장 보기에 시원할지 몰라도, 장관이 대통령이나 총리한테 맞서는 것이 옳은가. 정부 안에서 엇박자를 내기보다 하나의 팀으로 책임지고 움직이는 게 더 중요한 국면이라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2년도 안 됐다.”

더불어민주당에 몸담은 티케이 정치인의 숙명인가.

“당에 가면 대구라는 우리의 뿌리를 보지 않으려 하고, 대구에 내려가면 우리 당을 보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나나 홍의락 의원이나…, 대구라는 뿌리를 지녔을 때 존재 의미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당원이면서 티케이 의원이다. 티케이를 단순히 군부 권위주의의 소산으로 폄하할 순 없다. 현대사를 관통하는 나름의 희생과 가치, 공동체의 책무, 이런 것이 어우러져 있다. 그런 것을 어떻게 한칼로 내 편 네 편을 갈라 이야기할 수 있겠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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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사투리 쓰는 사람 3명이던 시절부터

김 장관은 대구시장 선거(2012년)와 대구 국회의원 선거(2014년)에서 두 차례 낙선한 뒤인, 2015년 두 권의 책을 냈다. 잡지식 전기 <경계를 경계하다>와 대담집 <공존의 공화국을 위하여>다. 3선 내리 당선된 수도권 지역구(경기 군포)를 포기하고 보수정당의 텃밭 대구에 당시 민주당 기호를 달고 출마해, 연거푸 좌절하던 때였다. <경계를 경계하다>의 소개 자료에서는, 당시 김 전 의원을 “진보와 보수, 호남과 영남의 경계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면서 삶을 앓았던 한국 정치사의 경계인”이 라고 말했다. <공존의 공화국을 위하여> 에서는 “정신적 스승인 제정구로부터 투쟁의 정치를 접고 상생의 정치를 하라는 간곡한 권유를 받았고” “1990년대 경상도 사투리 쓰는 자가 딱 세 명이던 민주당에 몸담는다”고 김 장관을 소개했다.

‘한국 정치사의 경계인’이란 표현이 와 닿는다. 대구 목소리와 당의 목소리 사이 간극이 클 텐데.

“대구의 목소리를 많이 듣는다. 정서적으로 섭섭한 것이 많지 않겠나. 오랫동안 누렸던 한국 사회에서의 지위가 바뀌는 거니까….그래도 유튜브 가짜뉴스에서 전하는 것 같은 잘못된 팩트에 대해서는 조목조목 아니라고 설명해준다. 그러면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자리를 피하거나 얼버무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신뢰는 얻은 것 같다.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대구 친구 한테서 전화가 오면, 이제는 좀 어른스럽게 대응하자고 말한다. 정치가 미숙하다, 정책이 현장에 안 맞다, 이런 비판은 좋다. 그런데 감정적으로 그냥 나는 문재인 정부 싫어, 이런 식은 아니지 않냐고 되받아준다. 문재인 정부가 실패하고 대구·경북이 잘되는 길이 있겠나. 그런 길은 없지 않나. 대한민국에서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가치조차 받아들이기가 그렇게도 어렵냐고 하소연한다.”

답답함이 많겠다.

“아이고, 그렇지 뭐. 이렇게 산 지 오래됐으니까, 굳은살 박여서 웬만하면 웃고 넘어간다. 그렇다고 여기서 입맛에 맞는 소리 하고, 저기서 딴소리할 수는 없지 않나. 그 정도 일관성과 공동체에 대한 사랑은 지켜야 할 것 아닌가. 그것조차 놓쳐버린다면, 무엇을 바라고 정치를 하겠나. 그 정도의 오기는 있다.”

2차 공공기관 이전 이뤄져야

행안부 장관 이야기를 해보자. 최근 지방경찰제 합의를 끌어냈더라.

“정부 내 합의를 한 것이다. 이제 첫발을 뗀 셈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도 함께, 입법 절차까지 잘 마무리되기를 기대한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13만~14만 명에 이르는 단일 경찰조직의 적절한 권한 분산이 이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방분권과 관련해 ‘불 꺼진 혁신도시’를 비판하는 지적이 많다.

“2차 공공기관 이전을 해야 한다. 사실, 지금의 혁신도시 정책은 엉거주춤하게 진행되다 멈춘 격이다. 사람들한테 혁신도시에 더 머무르라고 도덕적으로 요구할 수는 없다. 교육과 문화적 기회, 삶의 질을 높이는 지역 내 투자와 이주민들이 지역사회와 어울릴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는 어느 한 세력, 한 집단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자체장과 중앙의 정치인, 중앙정부, 언론이 합심해야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정치적 소신인가.

”우리 국민, 특히 젊은이들은 불공정을 도저히 못 참는다. 우리 사회에서 대표적으로 불공정한 제도를 꼽으라면 바로 선거 제다. 선거를 치르면 제1, 2당은 평균 30% 지지를 받는다. 그런데 40% 이상 의석을 가져간다.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효과적으로 해소할 방법이 무엇인가.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대표자들로 구성되는 의회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독일이 통일을 이루 고 그 뒤 갈등을 극복해내는 과정을 보면, 결국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선거제도의 승리다. 그 나라에서 훌륭한 인격자를 대표자로 뽑아서 그런가? 아니다. 우리도 그런 정치제도를 만들어놓고 정치인들을 훈련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정치가 나온다.”

현재 제1, 2당이 반대하거나 미온적이다.

”반대한다기보다 서로 핑퐁 치는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의석을 늘릴 수밖에 없는데, 그 이야기를 차마 먼저 꺼내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길거리에서 요구 사항을 놓고 싸울 수는 없지 않나. 감당할 수 없는 사회 갈등을 제도화하는데 이보다 더 획기적인 제도가 없다. 자유한국당 의 새 지도부가 들어서면 충분히 대화가 될 거라고 기대한다.”

포항 지진, 제2의 세월호가 되었을지도

장관 재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포항 지진 때 하루 뒤로 잡혀 있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연기를 대통령과 교육부 총리께 제안한 일이다. 그대로 강행하면 포항의 6천 명 수험생과 포항 시민 사이에 “국가가 우리를 내버려두고 간다”는 상실감이 클 것 같았다. 또 하나의 세월호가 될 수 있겠다는 섬뜩한 예감이 들었다. 다행히 국민이 모두 조금씩 불편을 감수하면서, 큰 혼란 없이 사태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국민과 중앙정부, 지방정부 사이의 좋은 상생 모델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는 최근 광화문광장 설계안을 놓고 ‘절대 안 된다’ 식의 입씨름이 오갔다.

“내가 원래 ‘절대’ 같은 어법은 잘 안 쓰는데… 서울시가 조정안 만든다 했으니, 그것 보고 이야기하자. 괜히 오해만 부를 수 있다. 이걸로 싸움 붙이지 말고, 이만큼만 하자.”(웃음)

마지막으로, 정치인 김부겸의 시대정신을 물었다. “좋든 싫든, 임팩트가 있든 없든, 공존과 통합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 말고 당면한 난제를 풀 방법은 없다. 그리고 권력, 돈, 기회를 가진 쪽에서 먼저 양보해야 한다.”



(대구 시민의 목소리)

“우리 문디인가” 혹은 “2% 부족”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인터뷰를 하면서 50대 진보·보수 성향 두 사람의 도움말을 들었다. ‘정치인 김부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 아래 그대로 전한다.

진보 성향 대구 시민 대구에서 김 장관만 한 여권 인물이 없다. 수도권 3선 의원 포기하고 자기 결단으로 내려와 대구에 깃발을 꽂았다. 친화력도 탁월하다. 김 장관 덕분에 더불어민주당원들도 여럿 기초의원에 당선됐다. 하지만 아쉬움도 크다. “김부겸이가 우리 ‘문디’(문둥이의 대구 사투리)인가” 하는 의구심이 남아 있다. 한 번 낙선하고 떠나간 유시민 전 장관보다는 낫다 하나, 이 사람이 정말 대구에 뼈를 묻을지 확실한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가진 게 많고 똑똑하고 대구에 빚진 것도 없으니까, 오히려 더 아래로 못 내려가는 것 아닌가 싶다. 현안이 있을 때마다 확실한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다. 문 대통령과도 때로 맞장 뜨는 모습을 보고 싶다. 욕먹더라도 맨 앞에서 대구 사람 설득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보수 성향 대구 시민 진보와 보수를 떠나, 대구에서의 김 장관 이미지가 괜찮다. 뚜렷한 흠이 없다. 보수 쪽에서도 그만한 인물이면 뽑아줄 만하다고 대체로 생각한다. 그만큼 대구에서 김 장관의 지지 기반은 탄탄하다. 자유한국당에 대한 실망감이 여전히 크고, 대구 수성구에서 김 장관과 맞붙을 경쟁자도 없다. 대구시장으로 출마해도 당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다만 대선 주자로는 2% 부족한 느낌이다. 자유한국당에 실망한 정서가 김부겸 지지로 이어진 거지, 김부겸 열성 지지층이 적극적으로 김부겸을 만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부겸의 갈 길이 멀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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