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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정년, 연금받는 나이, 노인 복지혜택 줄줄이 늦춰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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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상] 대법 "평균수명 늘고 사회급변" 육체노동 정년 65세로 상향

일할 수 있는 나이를 만 60세에서 65세로 높인 대법원 판결은 정년(停年) 연장 논의에서부터 국민연금 등 노후 복지의 기준 나이를 높이는 문제 등 사회안전망의 기본 틀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만약 정년이 연장돼 5년 더 일하게 된다면 60세 정년에 맞춘 노후 복지 시스템이 5년씩 뒤로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령층의 퇴직이 미뤄지면 청년 고용절벽이 더 가팔라질 수도 있어 일자리를 놓고 '세대 전쟁'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업의 인건비 부담 이슈도 불거질 수 있다.

◇대법원 "평균 수명 증가 등 반영했다"

대법원이 이날 판결로 지난 1989년 육체 노동자 가동연한을 만 55세에서 만 60세로 올린 이후 30년 만에 입장을 바꿨다. 법원은 직종별로 가동연한을 달리 계산한다. 변호사·법무사·목사는 70세, 개인택시 운전사는 60세, 미용사는 55세였다. 직장인의 경우 회사가 정한 정년을 가동연한으로 쳤다. 60세는 정년이 명확하지 않은 직종 등의 가동연한으로 가장 넓게 쓰이는 기준이었다.

하지만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60세로 묶어놓은 가동연한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 판결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14%)로 진입했고, 평균 수명(2017년 기준)도 남자 79.7세, 여자 85.7세라서 30년 전(남자 67세, 여자 75.3세)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대법원도 이날 판결에서 "1989년 당시와 비교해 사회·경제구조와 생활 여건이 급변해 기존 가동연한을 유지할 수 없다"면서 "각종 사회보장 법령에서도 국가가 적극적으로 생계를 보장해야 하는 노인의 기준 연령을 65세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고 했다.

만 65세 정년 연장 논의 촉발될까

우리나라는 2013년 개정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 고용법)'에서 정년을 의무화하는 규정이 처음 만들어졌고, 2017년부터 전면 시행됐다. 대법원이 가동연한을 55세에서 60세로 올린 뒤 정년 법제화까지 28년이나 걸렸다. 이번 대법원 판결도 법 개정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송홍석 고용노동부 고령사회인력정책관은 "정년 연장을 한 지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았고,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게 많기 때문에 당장 법 개정에 나서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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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연장이 청년층 일자리를 감소시킬 수 있고, 사회 전체에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세대 간 일자리 양극화 추이와 과제' 보고서를 보면, 20대 임금근로자 수는 2007년 367만명에서 2017년 355만9000명으로 3.0% 감소한 반면, 50대는 225만2000명에서 415만3000명으로 84.4%나 늘었다. 경영계는 "정년연장은 신규 채용을 위축시켜 가뜩이나 어려운 청년고용을 더 나빠지게 할 우려가 있다"는 입장이다.

◇국민연금 연령 상향 논의 이어질 수도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정년 연장이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년이 연장되면 근로자들의 은퇴 후 소득 공백 기간이 줄어들고, 고갈돼 가는 국민연금 등에 숨통을 트여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60세가 정년인 지금은 은퇴 후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 '소득 공백'이 발생한다. 연금수령 개시 나이가 65세가 되는 2033년(1969년 이후 출생자)이 되면 월급도 국민연금도 없이 살아야 하는 기간이 5년이나 된다. 그런데 정년이 늘어나 65세까지 일할 수 있으면 이 같은 공백을 메울 수 있다.

반면 정년 연장이 되면 각종 연금 지급 시기가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민연금 기금 조기 고갈 사태가 우려되는 만큼 "정년이 연장돼 돈 버는 기간도 늘었으니 연금 받는 시기를 늦추자"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국민연금제도 개선안 마련 과정에서 연금 지급 연령을 장기적으로 67세까지 늦추는 방안이 거론됐었다. 이 밖에 기초연금 수급 시기, 노인복지법상 경로 우대 혜택을 볼 수 있는 연령도 지금의 만 65세에서 늦추자는 의견이 강해질 수도 있다.

☞가동연한

건설직 노동자, 가사도우미 등 주로 육체 노동자가 일을 해서 소득을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연령의 상한이다. 각종 사고로 사망하거나 큰 장애를 입었을 경우 법원이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배상액 산정시 일실수입(사고가 없었다면 벌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입)을 따지게 되는데 가동연한이 높아지면 인정되는 배상액도 올라간다.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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