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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인간의 집착과 욕망 앞에 구원은 없다… 이정재 주연 ‘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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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사바하’에서 박 목사 역을 맡은 이정재가 이단 종교 단체를 추적하는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불교에서 주문의 끝에 붙어 ‘원만한 성취’를 의미하는 ‘사바하’처럼, 이 영화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평생의 믿음이 거짓이 되는 순간, 그 감정의 폭발을 향해 나아간다. 낯설고 기괴하지만, 한국 엑소시즘 영화의 시작을 알린 ‘검은 사제들’(2015년)을 연출한 장재현 감독 작품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불교적 세계관과 각개전투식 서사 구조를 초반에 이해하긴 힘들다. 신흥 종교 ‘사슴동산’의 나한(박정민)과 저주받아 버려진 쌍둥이들의 이야기는 개연성을 쌓으며 하나로 연결된다. 선과 악을 구분하는 건 의미가 없다. “불교에는 악이 없다. 선이 악으로, 악이 선으로 변하기도 한다. 작품 속 인물들도 그렇다”는 장 감독의 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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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정재는 “장재현 감독은 자기만의 독창성을 관객에게 설득시키는 데 능하다”고 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래서 더 낯설게 다가온다. 카메라는 피범벅이 된 자궁 속 태아, 불안에 떠는 동물의 눈처럼 시종일관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를 담는다. 빠른 템포의 편집도 공포를 자극한다. 물론 장대한 세계관을 압축하다보니 개연성을 잃는 경우도 많다. 다소 어려운 종교 용어들도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

그만큼 장 감독은 집요하게 영화의 세계관과 관점을 배우들에게 주입했다. 27년 차 배우 이정재(46)에게도 신흥 종교를 조사하는 속물적인 박 목사 역할은 쉽지 않았다. 더 껄렁껄렁했으면 하는 바람에 NG도 많이 냈다. 결국 장 감독이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대본을 읽는 모습을 휴대전화에 담아 연습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18일 만난 이정재는 “감독에게 직접 연기해보라고 한 적은 처음”이라며 웃었다.

박 목사는 관객을 이끄는 안내자이자 화자다. 외제차를 타고 담배를 피우며, 종교를 가리지 않고 이단을 고발해 수고비를 챙긴다. ‘암살’(2015년) 이후 모처럼 현대극에 도전한 그에게도 박 목사는 “해볼 만한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그는 “작품 선택의 기준이 ‘새로움’이 됐다. ‘신과 함께’에서 염라대왕까지 했는데 더 해볼 캐릭터가 있더라”며 웃었다.

그의 말대로, 영화는 “쓸쓸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파국으로 치닫는 이들 앞에 신의 구원은 없었다. 인간의 집착과 욕망만이 남았을 뿐. 미스터리한 정비공 역할을 맡은 배우 박정민의 존재감이 돋보인다. 쌍둥이 역할로 1인 2역을 소화한 이재인에게서는 ‘검은 사제들’의 박소담, ‘곡성’(2016년)의 김환희가 떠오른다. 15세 이상 관람가.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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