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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60세 이후에도 일하는 시대” 전원합의체 12명 모두 상향 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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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노동 가동연한 65세로 연장]대법, 30년만에 판례 바꿔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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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稼動年限)을 만 60세로 유지할지 치열한 공방이 있었고, 각계에서 다양한 의견을 제출했습니다.”

21일 오후 2시 4분경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전원합의체 재판장인 김명수 대법원장은 선고 결과를 말하기 직전 이렇게 밝혔다. 지난해 11월 29일 공개변론 등을 통해 주요 쟁점과 사회적 파급효과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거쳤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어 김 대법원장은 “만 60세를 넘어 만 65세까지 육체노동자가 일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다수의견입니다”라고 말했다. 가동연한을 기존보다 올려야 한다는 데는 전원합의체 12명 전원이 동의했고, 그중 9명이 만 65세를 새 기준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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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균수명 연장에 따른 사회 변화가 주요 근거


김 대법원장 등 9명의 다수의견은 ‘평균수명 연장’을 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을 5년 더 늘린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로 들었다.

1989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가동연한을 만 60세로 결정할 당시 평균수명은 남성 67세, 여성 75.3세였다.

그러나 가장 최근 통계인 2017년엔 남성 79.7세, 여성 85.7세로 평균수명이 10세 이상 늘어났다는 것이다. 국민이 ‘더 오래 사는 시대’가 됐고, 이에 따라 ‘일하는 나이’가 과거보다 더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평균수명 연장으로 정년이 늘어나고, 정년 뒤에도 일하는 노인인구가 증가하는 사회구조적 변화에도 주목했다. 다수의견은 “1989년 판결 당시 기능직 공무원 중 주로 육체적 업무를 하는 철도원, 토목원 등의 정년이 만 58세였는데, 2013년 이후에는 대부분 만 60세로 연장됐다”며 유사직군의 정년을 언급했다. 또 한국의 2011∼2016년 실질 은퇴 연령은 남성 72.0세, 여성 72.2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다수의견에는 우리나라의 경제규모와 산업구조 지표 등을 검토한 내용이 반영돼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989년 6516달러에서 지난해 3만 달러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생계를 보장하는 노인을 65세 이상으로 정하고 있는 만큼 65세까지는 육체노동자가 일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 “일본은 1960년대부터 67세까지 인정”

다수의견 중 박상옥 김선수 대법관은 핵가족화와 1인 가구 증가가 급격하게 진행되는 한국 사회의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법관은 이번 사건의 주심이다.

두 대법관은 “가장이 모든 가족을 부양하고 은퇴 후에는 자식에게 부양을 받던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면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노후는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갈수록 확대되고, 경제활동 기간도 자연스럽게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두 대법관은 2015년 기준 60∼64세 국민 중 본인 및 배우자가 생활비를 부담하는 비율이 86.3%에 이를 만큼 고령자들이 경제활동을 할 이유가 크다고 판단했다. 이어 “일본은 1960년대부터 가동연한을 67세로 인정하고 있다”고 했다.

김 대법관은 공개변론 때 “(가동연한이 상향된) 방향으로 사회가 발전하는 게 진보 아닐까요”라고 말하는 등 36차례나 질문을 했다.

○ ‘만 63세’, ‘만 60세 이상’ 의견도

조희대 이동원 대법관은 가동연한을 ‘만 63세’로 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두 대법관은 “일반적인 법정정년 및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2018년 기준 63세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며 만 65세로 가동연한을 정하는 건 사회 변화에 비춰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김재형 대법관은 대법원이 가동연한을 일률적으로 60세나 65세 등으로 정하는 건 옳지 않고 ‘만 60세 이상’으로만 정한 뒤 개별 사건마다 다르게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확정되지 않은 손해배상 소송 하급심에서 배상금액을 늘려야 한다는 판결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사고 피해자가 미성년자여서 1심에서 배상 금액을 계산할 때 기존 가동연한을 기준으로 삼았다면 2심에서 배상 금액이 늘어날 수 있다.

이호재 hoho@donga.com·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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