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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노인기준 상향’ 명분 얻었지만… 복지혜택 늦추면 반발 커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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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노동 가동연한 65세로 연장] ‘연령기준 복지’ 199개 영향 미칠까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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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노동자가 일할 수 있는 나이를 현재 만 60세에서 만 65세로 더 높여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은 보험금 지급기준을 비롯해 정년 연장 논의까지 우리 사회 전반에 연쇄적인 파장을 몰고 온다는 점에서 중대한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판례 변경으로 보험업계가 당장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갔고, 각종 복지 제도를 손질할 필요성이 높아지게 됐다. 정부에서도 노인 기준을 현재 만 65세에서 만 70세로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 자동차 보험료 인상 불가피할 듯

가장 가깝게는 자동차 보험료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 보험엔 사고로 상대방을 다치거나 숨지게 했을 경우 이를 보상하는 ‘대인배상’ 항목이 포함돼 있다. 이때 보험금은 상대방이 일할 수 있는 나이를 토대로 산정한다. 현행 표준약관에는 이 나이가 만 60세로 규정돼 있다. 금융당국과 보험업계는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조만간 표준약관 개정을 논의할 예정이다.

보험개발원은 대인배상액 산정 시 일할 수 있는 나이를 만 65세로 높일 경우 자동차 보험금 지출이 연간 1250억 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따라 인상될 자동차 보험료는 약 1.2%포인트 수준이다. 화재배상책임 등도 같은 이유로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단, 개인연금보험은 계약 당시 약관이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번 판결의 영향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만 60세부터 보험금을 받기로 계약했다면 기존 가입자가 동의하지 않는 한 수령 시점을 늦출 수 없다는 얘기다.

○ 노인 기준 상향 조정 탄력 받나


이번 판결은 정부가 시동을 건 노인연령 상향 논의에도 불을 지필 것으로 보인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워크숍에서 “노인 연령 기준을 현행 만 65세에서 만 70세로 단계적으로 높이는 것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6년 초고령사회(만 65세 이상 인구 비율 20% 이상) 진입에 대비해 생산가능인구(현재 만 15∼64세)를 늘려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취지다. 정부는 노인 연령을 만 70세로 올리면 2040년 생산가능인구가 2943만 명에서 3367만 명으로 424만 명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노인 연령 기준은 복지 혜택과 직결된다. 정부 복지포털 ‘복지로’에 따르면 노인 연령과 관련된 복지 서비스는 총 199종에 이른다. 기초연금(월 25만 원) 수급과 지하철 무료 이용, 장기요양보험 적용, 임플란트 건강보험 적용,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무료 접종 등 대다수 제도가 만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다.

정부는 급격한 노인연령 상향은 사회경제적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보고 단계적인 접근법을 염두에 두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노인 연령 기준을 일률적으로 올리는 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송준헌 저출산위 미래기획팀장은 “박 장관의 주문처럼 노인 기준을 일률적으로 올리는 방식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개개인의 경제 상황과 욕구를 기반으로 연령 기준을 융통성 있게 적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 국민연금 수령 시점도 영향 받나


국민연금 수령 시점은 노인 연령 기준이 거론될 때마다 불거지는 ‘뜨거운 감자’다. 지난해 8월 국민연금 제도개선위원회는 국민연금 수령 시점을 2043년부터 만 67세로 늦추는 방안을 권고했다가 거센 반대 여론에 부닥쳤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내가 보기에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며 진화했을 정도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공개한 국민연금 제도 개편안에서 수령 시점을 늦추는 내용을 뺐다.

20, 30대는 이날 대법원 판결에 대해 “국민연금 수령 시점도 늦추는 것 아니냐”며 불안감을 나타내고 있다. 노인 연령 기준을 올리면 국민연금 수령 개시 연령도 현행 만 62세(2033년에 만 65세로 상향 예정)에서 만 70세 이후로 늦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정부나 국회가 당장 국민연금 수령 시점을 늦추자고 나설 가능성은 낮다. 다만 연금 보험료 인상에 대한 국민적 저항도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2057년으로 예상된 기금 고갈을 늦추려면 연금 수령 시점을 늦추는 것 외에는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과 독일은 10년 내에 국민연금 수령 시점을 만 67세로 늦추는 데 합의한 상태다. 덴마크는 2030년부터 수령 시점을 만 68세로 미루기로 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김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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