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신림동 몰리는 2030
사상 최대 채용에 학원가 장사진
대형 고시학원들 빌딩 건립 계획
‘청년에 고용뽕 주나’ 얘기도 나와
일부 “공무원연금 늘어 세금 부담”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노량진 윌비스학원에서 강의실 앞자리를 잡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이 학원은 강의실 자리를 착주일에 한 번씩 선착순으로 결정한다. 600명이 들어가는 대형 강의실에서 칠판이 보이는 중앙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최승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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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도 눈에 띄었다. 고교 2학년인 송유정(18)양은 “대학도 좋지만 이른 나이에 공무원을 시작하는 게 낫다는 조언을 받았다”며 “학교 수업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8월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 일반 공채는 2011년부터 학력이 폐지돼 18세 이상이면 합격이 가능하다. 경찰시험을 1년 준비했다는 김기선(25)씨는 “1주일에 한 번 열리는 추첨을 위해 매주 새벽에 나온다”며 “다른 취업준비생과 밤새워 공부하다 보면 자극을 받는다”고 말했다. 학원 관계자는 “추운 날씨에 줄 서는 걸 막아보려고 온라인 등록제도 시행해 봤지만 서버가 다운되거나 공정성 시비가 일기도 했다”며 “새벽에 기다리는 학생들이 합격률도 좋아 1주일에 한 번에 몰아 줄을 서게 한다”고 말했다.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노량진 윌비스학원에서 강의실 앞자리를 잡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이 학원은 강의실 자리를 착주일에 한 번씩 선착순으로 결정한다. 600명이 들어가는 대형 강의실에서 칠판이 보이는 중앙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최승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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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에서는 현재 고시촌 주변에 대형 학원들이 10층 이상 대형 건물들을 올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지역은 2021년 경전철과 신림~봉천터널이 개통되는 개발 호재도 맞물려 있다. 공인중개사 이충열(65)씨는 “사시 준비생이 빠져나간 자리를 공무원·경찰 준비생이 채워줬다”며 “원룸 수요는 아직 건재하다”고 말했다.
노량진과 신림동에 이같이 학생들이 몰려든 건 공무원 채용 인원이 지난해 갑자기 늘어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경찰공무원은 보통 1년에 두 차례씩 한 번에 1000~2000명씩 뽑는다. 지난해 9월 갑자기 3000명을 추가 채용하면서 수험 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노량진의 한 강사는 “시험에 계속 떨어져 포기했던 30대 직장인도 지난해 말 시험에 합격했다”고 말했다.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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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직 공무원은 국회 예산 심사 과정에서 1만4000명 증원으로 조정되긴 했지만 공공기관까지 채용을 늘리면서 전체 공직 규모도 커지는 추세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3일 “공공기관 올해 신규 채용을 2만3000명에서 2000명 더 늘리겠다”고 밝혔다. 서미영 인쿠르트 대표는 “공무원·공기업 채용이 국내 고용을 이끌고 있다”며 “사회가 불안하고 취업이 어려울수록 청년층은 고용 안정성이 있는 직장만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을 빗대 ‘고용뽕(고용+마약)’이라는 말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급격하게 공무원을 늘리면 향후에 연금에도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오정근 금융·ICT융합학회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무원연금 충당 부채가 675조3000억원으로 집계돼 발표됐다”며 “무분별하게 공공부문을 확대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 꼴이 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금충당부채는 현재 수급자 및 미래의 연금 수혜자들에게 장기간에 걸쳐 지급해야 할 연금액을 기대수명 등 조건에 따라 현재 가치로 산출한 부채 추정액으로 앞으로 70여 년에 나눠 갚을 돈이다.
경찰 출신인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은 “무인 시스템으로 경비 인력이 주는 데다 정보·보안 파트도 줄이자는 말이 나오는 마당에 무작정 인력을 늘리는 건 반대”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행정안전부 국정감사에서 “공무원 증가가 공공서비스 만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한 권 의원은 인위적인 증원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채용 폭이 크게 줄어 오히려 불만이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방처럼 안전 분야나 사회복지사와 같은 노인 복지와 관련된 공무원 증원은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청년 실업률을 완화하기 위한 일률적인 채용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진호·최연수·임성빈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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