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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이광석의 디지털 이후](2)콘텐츠 소비 대중 빨아들이고 각자의 취향에 가두는 ‘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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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문화산업의 대중권력

경향신문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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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보수 노동에 수없는 노력 들이며

문화 노동 주력군이 된 크리에이터

이들을 이용하는 MCN ‘우후죽순’

경기침체와 만성적 실업 상황에서

플랫폼에 노동력이 과하게 몰리고

그림자 노동하는 청년들도 늘어나

이용자 취향 장악한 ‘알고리즘’은

자극적인 맞춤형 콘텐츠를 노출해

편견·관성을 내재화하고 재생산


동영상 소비 패턴이 크게 달라졌다. 이제 우리 국민 절반 이상이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를 이용하고 있다. 평균 2시간 이상, 유튜브에 가장 오래 머물고 있다는 통계도 발표됐다. 요새 청(소)년들은 텔레비전을 시청하지 않아도 유튜브를 거르는 일은 없다. 우리 아이들은 장래 가장 선호하는 직업으로 1인 ‘크리에이터’를 꼽는다. ‘크리에이터’ 혹은 ‘스트리머’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알려진 것처럼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에서 동영상을 제작해 올리는 이들을 지칭한다. 방송 유명인들조차 유튜브에서 잔뼈를 키워 ‘셀러브리티’의 반열에 오른 이들의 가속 성장과 영향력에 긴장한다. 그러니 정치인, 문인, 기성 유명 연예인 모두 유튜브 방송을 말하고 찍는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봐도, 우리의 유튜브 동영상 제작문화는 사회적 열병 수준이다.

대중의 일상 창작과 전문적인 문화 생산 사이 경계가 허물어진 지 오래다. 문화산업 전문 직군에 의해 생산된 문화 상품들은 물론이고, 아마추어들 또한 문화 창작 영역에서 거대한 생산 가치를 만들어내고 대중문화 취향까지 좌우하고 있다. 엘리트주의적 관찰자 시점에서 아마추어 대중이 뭔가 제작하는 것을 기특하게 여기던 시절을 이미 넘어서고 있다. 더 이상 대중 창작이 주류 문화 생산의 보완물이 아닌 것이다. 이제 대중의 활동은 직업으로서 문화노동계만큼이나 문화콘텐츠 시장과 문화산업의 주요 부문이 됐다. 그 가운데 유튜브란 플랫폼은 어느새 프로와 아마추어 생산물 모두를 품는 콘텐츠 제작의 거대한 용광로가 되었다.

■유튜브의 ‘신’문화산업

호주의 문화산업정책 전문가로 국내에도 여러 번 초대된 존 하틀리(John Hartley)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영국식 ‘창의산업’ 분류법을 참고해 ‘창의시민(creative citizen)’이란 문화노동자 범주를 고안해낸 적이 있다. 보통 문화산업 부문이라 한다면 우린 주로 이에 연계된 전문 산업 직종을 떠올린다. 한데 하틀리의 명민함은 이제까지 분류 범주에 더해 문화산업 바깥에 머무르던 소비 대중의 활동을 핵심 산업 부문 안으로 끌어들이며 발휘됐다. 그는 이제까지 야전에서 그저 콘텐츠 소비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름 없는 대중을 ‘창의시민’ 문화노동자층으로 적극 흡수해 생산의 동력으로 포괄해야 한다는 파격 논리를 펼쳤다. 말 그대로 이는 전 국민의 문화산업 노동자화라는 ‘극한 직업’ 구상이다.

국내 ‘유튜브 열광’은 마치 하틀리식 ‘창의시민’ 구상을 우리 스스로 닦달하는 꼴이다. 정부나 기업 입장에서는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코 푸는 격이다. 하지만 그 정도에 만족할 리 없다. 여세를 몰아 정부와 산하기관들은 크리에이터들에게 제작 지원은 물론이고 관련 공모전에 큰돈을 마구 풀고 있다. 점점 크리에이터는 문화노동 주력군이 되고, 국가 문화사업이자 문화경제 부흥 논리에 한류처럼 편입되어 간다.

문화산업계는 창의 대중을 문화시장에서 노동자들로 공식화하는 데 더 큰 욕망을 지닌다. 아예 연습생을 양성하거나 스카우트하거나 해외 지사를 꾸리는 전문 크리에이터 기획사들이 흔해졌다. 소위 MCN(Multi Channel Network·다중채널 네트워크)이 몇 년 전부터 공식적으로 생기면서 이들이 전문경영 기획사들로 나서고 있다. 기획사들은 우후죽순처럼 생겨 국내에 그 숫자가 수백개에 이르고, 더 큰 시장 이익을 위해 중국과 베트남 등 동남아에 진출하고 있다. 한 기획사에는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만명의 크리에이터들이 등록돼 있고, 이들은 보통 내부 연습생 과정을 거친 후에 하루에 보통 10여시간 방송을 진행하는 전직 크리에이터로 길러진다. 이 신생 크리에이터 양성소들은 기존 연예기획사의 조직문화와 유사한 문화노동의 위계 시스템을 갖추면서 전문 업종으로 분화하고 있다.

기획사의 배경 없이 인터넷방송을 행하는 대다수는 자신이 만든 콘텐츠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그 누구도 강제하지 않는 무보수 노동을 벌이며, 더 많은 ‘구독’ 신청을 받기 위해 수없는 노력을 감내해야 한다. 물질적 보상을 얻지 못하면 대개 관심, 관계, 주목, 인기, 명성 등 정서적 보상과 보답에 자위하는 데 머문다. 물론 간혹 선택된 그/그녀가 만든 콘텐츠 가치와 스타성은 광고와 연동된 클릭과 별풍선 등으로 보상받지만, 그와 같은 금전적 보상이나 명성을 얻어 ‘스타’의 반열에 오르는 일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유튜브 유명인의 지위는 연예기획사에 매인 그 수많은 이름 모를 연습생들이 겪는 경쟁과 비애에 견줄 만큼 스스로를 혹사해야만 뭇 아마추어 크리에이터들에 앞서 자신의 기회를 부여잡을 수 있다. 아마추어의 대중문화라 할 만한 것들은, 그렇게 유튜브 플랫폼 논리에 길들여지고 자본주의 문화산업의 전장처럼 바뀌고 있다.

■만성 실업과 플랫폼 노동력 유입의 상관성

유튜브 플랫폼의 인기가 지구적 보편 현상이라고 하지만, 왜 우리 사회에서 이제 와 더욱 과열 조짐을 보일까? 일단은 척박한 노동 환경에서 방송연예계만큼 직업적 성공 신화가 함께 결합해 과잉 열풍이 이는 듯싶다. 침체된 고용시장과 불안하고 위태로운 미래는 더욱더 청(소)년의 온라인 활동을 부채질한다. 흥미롭게도 디지털 플랫폼들은 자본주의 경기 불황기에 신규 창업하거나 활성화되는 경향이 크다. 가령 2011년 미 경기 침체기에 우버 자동차공유 플랫폼은 당시 실업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누구나 프리랜서 운전자가 될 수 있다”는 슬로건을 갖고 시장에 뛰어들어 돌풍을 일으킨 전력이 있다.

국내 시간제 ‘알바’노동, 배달서비스, 원룸 등을 연결하는 플랫폼 앱이나 대중의 콘텐츠 생산노동 플랫폼의 성장세도 다르지 않다. 이들 플랫폼은 장기화하는 경기 침체와 만성 실업 상황에서 더 큰 활황을 보인다. 정규직의 꿈에서 점점 멀어지고 시급노동으로 불안하게 남아도는 ‘잉여’ 노동 시간들은, 소셜 플랫폼에서의 글, 댓글, 좋아요, 맞팔, 멘션, 이모티콘 등 각종 데이터 활동은 물론이고, 수많은 편집과 보정을 거친 동영상 콘텐츠 제작을 위해 소모된다. 청년의 불안정 노동 상황이 악화할수록 자발적으로 플랫폼에 접속해 그들에게 남겨진 자유 시간을 ‘그림자노동’처럼 쓰는 경우가 더 늘어난다. 몇몇 ‘마이크로 셀러브리티’의 성공담을 제외하곤 그들의 자발적인 플랫폼 참여가 문화산업을 떠받치는 무급노동으로 쉽게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유튜브 등 플랫폼들은 경기 불안과 대량 실업으로 길거리에 내몰린 위태로운 노동력을 탄력적으로 흡수하면서 시장 기회를 노린다.

■‘관련’ ‘맞춤’ ‘추천’ 영상과 알고리즘 편견

초창기만 하더라도 유튜브는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영상미디어 감각이나 동영상 매개형 커뮤니티 감각을 배양하는 미디어 플랫폼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알려진 것처럼, 유튜브는 사업을 개시한 지 채 2년도 못돼 엄청난 가격에 구글에 인수됐다. 그 후 검색엔진으로 성공했던 구글식 알고리즘 기술 체계가 유튜브 플랫폼에 새롭게 응용됐다. ‘알고리즘’이 특정의 정보를 분류, 선택, 조직, 연결하는 자동화된 명령어 체계라 본다면, 이 기술을 통해 구글은 광고주를 매칭해 수익을 챙기는 일뿐만 아니라 이를 도모하기 위해 이용자의 콘텐츠 이용과 소비를 표준화하는 데 적극 활용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사이 유튜브로 음악을 스트리밍해서 보고 듣는 습관이 몸에 밴 사람이 많다. 여기에는 구글이 지닌 맞춤형 알고리즘의 위력이 깔려 있다. 이용자는 본인이 소비하는 동영상들의 검색어, 시청 방식, 장르, 종류, 빈도, 시간에 따라 좀 더 개인 취향에 맞춘 연관 동영상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이용자의 자발적 클릭과 검색 행위가 기계학습(머신러닝)된 알고리즘 기제와 연결되고, 이로부터 특정 조합의 자동화된 추천 콘텐츠 목록을 제시한다. 몇 년 전부터 유튜브는 자동재생(오토플레이) 기능을 서비스에 추가하면서 중간 광고를 제외하곤 연속해 각자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원 없이 소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테면 넷플릭스가 콘텐츠 이용자가 원하는 문화코드, 장르 취향, 영상미, 내러티브 등을 자체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영상 제작 방식을 완성했다면, 유튜브는 이렇듯 동영상 소비 패턴의 자동화로 전 세계 이용자들의 의식 흐름과 취향을 사로잡았다.

문제는 투명한 듯 보이는 이 자동 알고리즘 장치에 편견과 관성을 내재화하고 재생산하는 문화검열 자동화 기제를 꽁꽁 숨겨두고 있다는 데 있다. 유튜브는 개인 동영상 소비 패턴을 계산하고 가입자의 누적 기록을 분석해 정확하고 신속하게 ‘관련’ ‘추천’ ‘맞춤’ 등 개별 취향의 콘텐츠 목록을 보여주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내가 남긴 기록을 통한 연관 추천 동영상들의 발굴에 있어서 탁월하다는 얘기다. 반대로 이는 치명적 약점이기도 한데, 나와 다른 취향으로 자동 추천이 널뛰거나 내 취향 바깥에서 일어나는 아주 다른 급격한 변화를 관찰하기가 아주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홍준표의 ‘TV홍카콜라’를 시청하는 이들과 유시민의 ‘알릴레오’를 택하는 이들은, 애써 찾지 않는다면 플랫폼에서 서로 볼 일이 없다. 우리는 같은 플랫폼에 접속하지만 불운하게도 이 드넓은 콘텐츠의 세계에서 서로 다른 취향의 방들에 갇힌다. 더군다나 ‘자동재생’ 기술은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동영상만을 연속 소비하도록 이끌면서 더욱 자신의 취향을 고정된 틀에 가둘 확률이 커졌다. 유튜브가 세상을 보는 거의 유일한 창이 되는 우울한 현실에서 이는 더 심각한 일이다. 추천 알고리즘이 누군가 이미 갖고 있는 취향의 확장성에 도움이 되겠지만, 색다른 취향으로 월경하는 일을 처음부터 귀찮은 일로 만든다면 말이다. 취향의 경로 의존이 높아진다면, 누군가 힙합에 미치다 ‘강성’ 헤비메탈을 찾는 것 같은 우발성은 크게 줄 수 있다.

■막말·‘가짜뉴스’ 친화적인 알고리즘 추천?

제이넵 투페키(Zeynep Tufecki) 같은 테크노정치 이론가가 경고했던 바처럼, 유튜브의 알고리즘 편견은 본질적으로 이용자들을 오랜 시간 플랫폼에 붙들어두려는 과잉 욕망으로 유발된다. 투페키 교수는 유튜브가 이용자의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해 ‘극단’의 자극적인 맞춤형 콘텐츠나 ‘가짜뉴스’를 자주 노출한다고 주장한다. 전 유튜브 추천 시스템 담당자였다가 해고된 기욤 샤스로(Guillaume Chaslot)가 가디언지 등 언론에 폭로한 내용도 그의 주장을 확증한 적이 있다.

최근 유튜브에서 극우 성향 국내 정치 콘텐츠들이 성황이라 한다. 인기 채널은 조회 수 200만이 넘고, 보통 유명인은 수십만명의 구독자 수를 자랑한다. 그에 비해 진보 색채의 크리에이터들의 활동이나 구독률은 저조하다. 실제 취향의 알고리즘 편견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유튜브 ‘인기영상’ 코너의 추천에도 ‘가짜’ ‘혐오’ ‘막말’ ‘B급’ 정서의 콘텐츠들이 자주 보인다. 정황이 이렇다면, 우리네 극우의 유튜브 팽창 현상은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이 극단의 정서를 선호하는 후광효과 탓일까? 당장 극우의 유튜브 성공을 알고리즘 탓으로 돌리기엔 관련 사회 변수도 많고 입증도 어렵다. 차후 정밀 분석이 필요한 대목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구글과 유튜브 등 플랫폼자본이 운용하는 알고리즘 추천 방식에 대해 우리 모두가 잘 모른다는 데 있다. 마치 이는 우리에게 ‘암흑상자’ 같다. 우리 모두 자발적으로 문화노동을 하고 그에 콘텐츠를 공급하려는 열정에 비해 이 알고리즘 기계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에 대해 너무 무감하다. 게다가 이 글로벌 플랫폼이 기술 설계에 대한 본원적 문제 제기나 설명 청구조차 쉽지 않은 치외법권 영역에 있는 점도 문제다. 유튜브 플랫폼이 우리 사회에서 취약 노동을 흡수하고 절연된 취향에 가두는 블랙홀이 되었다면, 하루속히 이 거대한 문화권력에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제하는 일이 우선이다.

▶필자 이광석

경향신문

이광석은 테크놀로지, 사회, 문화가 서로 교차하는 접점에 비판적 관심을 갖고 연구와 집필 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대학원 디지털문화정책 전공 교수로 일한다. 주요 연구 분야는 테크노문화, 미디어·아트 행동주의, 커먼즈, 노동과 테크놀로지에 걸쳐 있다. 대표 저서로 <데이터 사회 비판> <데이터 사회 미학> <뉴아트행동주의>,<사이방가르드> <디지털 야만> 등이 있고, 기획해 함께 쓴 책으로 <사물에 수작 부리기> <불순한 테크놀로지> <현대 기술·미디어 철학의 갈래들> 등이 있다.


이광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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